복산약품 엄상주 명예회장은 고향인 경남 하동군의 중증장애인 가족 노후주택을 매년 1채씩 지어주는 '사랑의 주택' 운동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9월 하동읍 마곡마을에서 열린 '사랑의 주택 1호' 입주식.

- 성광벤드 안갑원 회장, 양산지역 학교 등에 후원금
- 금양수산 천금석 대표·성진수산 이성규 대표, 각각 사천·통영에 장학금
- 복산약품 엄상주 명예회장, 하동 '사랑의 주택' 기증운동
- 금성수산 김진호 대표, 통영 홀로노인 생활비 지원
- 기업별 선행 영향력 한계…시스템 만들면 시너지 효과

경남 출신 부산 기업인 사이에 일고 있는 고향 사랑 운동이 관심이다. 동남권 상생 실천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란 관측 때문이다. 민간차원의 이 같은 운동이 확산되면 부산과 경남지역 주민의 동질성을 회복, 행정경계를 넘어선 광역경제권을 구축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봇물 잇는 고향 돕기 운동

경남 양산시 중부동 삼동마을 출신인 (주)성광벤드 안갑원(왼쪽 네번째) 회장이 지난 1월 장애인복지기금으로 1억 원을 양산시에 전달한 뒤 나동연(왼쪽 세번째) 시장과 악수하고 있다.

고향의 인재 육성에 힘을 보태는 경남 출신 부산 기업인이 급증하고 있다. 양산시 중부동 삼동마을 출신인 (주)성광벤드 안갑원 회장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 만 졸업한 뒤 고생 끝에 성공한 탓에 돈이 없어 배우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이에 안 회장은 2008년 양산시 인재육성장학재단에 5000만 원을 기탁했으며 경남외국어고에는 10년 넘도록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모교인 양산초등학교의 식당과 화장실을 보수해 주는 가 하면 축구부 발전기금 등으로 매년 수백만 원씩을 후원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안 회장은 지난 1월 양산복지관 건립에 따른 장비와 물품구입을 위해 써달라며 장애인복지기금 1억 원을 양산시에 기탁하기도 했다. 양산시는 이런 안 회장의 고향 사랑에 보답하는 차원에서 2009년 양산시민대상을 수여했다.

또 금양수산 천금석 대표는 지난해 12월 사천시 동서장학회에 장학기금 2000만 원을 기탁했으며 성진수산 이성규 대표는 통영시에 인재육성기금 1000만 원을 전달했다.

고향 불우이웃돕기도 잇따르고 있다. 복산약품 엄상주 명예회장은 '여강 엄상주 복지회' 기금으로 고향인 하동군의 중증장애인 가족 노후불량주택을 매년 1채씩 지어주는 '사랑의 주택' 기증 운동을 벌이고 있다. '사랑의 주택'은 지난해 9월 첫 결실을 맺었다. 5240만 원의 사업비를 투입, 하동읍 두곡마을 사병용 씨 집을 건평 50㎡, 1층 규모로 말끔하게 새로 지었다. 또 금성수산 김진호 대표는 홀로사는 노인의 생활 지원을 위해 지난해 통영시에 900만 원을 기탁했다.

■동남권 상생운동 승화 기대

이 같은 부산 기업인의 고향돕기는 농촌지역 경제 활성화, 나아가 동남권 상생에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먼저 자매결연 등을 통한 농특산물 구매 운동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체결과 시장 개방으로 어려움을 겪는 농촌이 회생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장학금 전달 등 지역 인재 육성 기금 조성은 인재 유출을 방지하는 효과로 이어지고 있다.

더욱이 부산에는 성공한 경남 출신 기업인이 많아 고향돕기 운동을 체계적으로 추진하면 파급효과는 엄청날 것으로 기대된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창업주까지 포함하면 경남 출신 부산 기업인은 최소 60%를 넘을 것으로 부산상공회의소 측은 분석하고 있다. 이들 기업인의 고향 사랑 운동이 경남지역 18개 시·군 읍면동으로 확산되면 부산과 경남지역 주민 사이의 이질감은 급속히 해소되고, 부산과 경남을 하나의 광역경제권으로 묶는 발판이 조성될 수도 있다. 부산시 관계자는 "동남권 상생을 위해 부산과 경남지역 갈등을 우선 해소해야 하며, 기업인과 같은 민간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체계적으로 추진할 시스템 구축이다. 현재 부산 기업인의 고향 사랑은 개별 기업별로, 산발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한 기업의 선행이 인근 지역이나 다른 기업으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운동이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데 한계가 있는 것이다. 부산발전연구원 오재환 지역재창조연구실장은 "기업인의 고향 돕기는 지역 갈등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농촌 경제 활성화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등 도시와 농촌이 '윈-윈'할 수 있는 운동"이라며 "기업인의 고향사랑이 부산과 경남의 상생운동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체계적으로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강병중 넥센타이어 회장

- 진주 이반성면 인재 20여년째 후원
- 개천예술제 행사 등도 지원

강병중(73·사진) 넥센타이어·KNN 회장은 고향의 인재육성에 대한 애착이 각별하다. 경남 진주시 이반성면이 고향인 강 회장은 30대에 이반성중 이사장을 맡았을 정도다. 강 회장은 학생 감소로 1999년 이반성중이 인근 일반성면의 반성중과 통합되자 장학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강 회장이 지난해 고향에 지급한 장학금은 모두 5900만 원. 진주 반성중에 1500만 원, 진주외고에 2000만 원을 전달했다. 또 대학에 진학한 이반성면 출신 학생들에게 2400만 원의 장학금을 줬다.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강 회장이 이반성면 출신 학생들에게 지급한 장학금은 10억 원에 이른다.

강 회장이 장학사업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은 가정 형편 탓에 어렵게 대학을 졸업한 젊은 시절의 경험 때문이다. 그는 고학을 하느라 동아대 법대를 6년 만에 졸업했다. 강 회장은 "자유당 때 토지개혁으로 상당히 많았던 전답을 몰수당한 이후에 가세가 급격히 기우는 바람에 고등학생 때부터 참 어렵게 공부를 했다"며 "그 때 성공을 하면 어렵게 공부하는 학생을 돕겠다고 생각했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또 강 회장은 고향을 돕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에만 1억2000여만 원을 내놓았다. 진주시에 이웃사랑성금 3000만 원을 기탁했고, 진주 개천예술제 행사에 3000만 원 등을 후원했다. 앞으로 진주지역의 문화예술 및 학술 활동 지원 등으로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 장복만 동원개발 회장

- 통영 동원고 신축에 300억 출연
- 명절마다 고향과 고성에 성금

동원개발 장복만(70·사진) 회장의 고향사랑은 유별나다. 장 회장이 모교인 동원고(옛 통영제일고)와 동원중(옛 통영동중)에 쏟는 정성 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동원교육재단과 동원송촌학당 이사장을 맡고 있는 장 회장은 10년 전 모교가 재정난에 처하자 재단을 아예 인수했다. 이어 장 회장은 2010년 학사 신축을 위해 300억 원을 쾌척해 화제가 됐다. 신축 학사는 통영시 광도면 죽림리 일대 12만8139㎡에 건축 면적 7601㎡, 총면적 2만6146㎡ 규모로 오는 6월 완공 예정이다.

장 회장은 장학금으로도 매년 6000만 원 가량을 내놓고 있다. 지난해 서울대에 진학한 2명에게 4년간 학비를 전액 지급하며 연·고대와 지방 국립대 입학생에겐 1년치 등록금을 수여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장학금을 받는 학생은 연간 60여 명, 10년간 700여 명에 이른다.

뿐만 아니다. 장 회장은 기초생활수급자를 돕기 위해 지난 1월 설을 앞두고 통영시에 3000만 원, 인근 고성군에 2000만 원을 기탁했다. 장 회장은 앞으로 설과 추석 때마다 통영시와 고성군에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정기적으로 낼 계획이다.

장 회장이 이처럼 고향에, 결손가정과 장학사업에 애착을 보이는 것은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 장 회장은 초등학교 2학년 때 모친이 세상을 떠났고, 배고픈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장 회장은 "서러운 어린 시절을 보낸 만큼 가정환경 때문에 학업을 중단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