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지역 국립대 학생들의 요구는 선명하고 단순했다. 그리고 절박했다. 취재 중 만난 부산대 경영학과의 한 재학생(23)은 "과외를 4개까지 뛴 적이 있다. 등록금 마련을 위해서였다. 취업을 위한 인턴이나 동아리 활동도 포기했다.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같은 대학 무역학과 서원욱(26) 씨는 "나도 과외를 3개까지 했는데 평일 저녁에 거의 매일 두 건씩 다녔다. 솔직히 힘든 시간이었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터진 '기성회비 사태'는 국공립대생들을 행동에 나서게 하고 있다. 부산대 김인애(22) 총학생회장은 "이번 법원 판결을 계기로 기성회비 폐지 운동, 나아가 등록금 인하 운동을 전국 국공립대생들과 함께 펼칠 것"이라 밝혔다. 그렇다면 '국공립대의 기성회비 징수 행위는 법적 근거가 없으니 학생들에게 반환하라'는 지난달 27일 법원 판결이 어떻게 국공립대의 등록금 인하 또는 반값등록금 현실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일까.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연덕원 연구원은 "판결 자체도 중요하지만, 판결의 취지를 이해하고 살려야 한다"고 요약했다.

연 연구원은 "크게 보면 이번 일은 정부가 국공립대 교육에서마저 학생들에게 '수익자 부담원칙'을 고수하다가 그게 쌓이고 쌓여 터진 것"이라고 풀이했다. 국공립대학들 처지에서는 등록금을 올리려 해도 정부는 국비(공립대는 지자체 지원 예산)로 지원해주는 수업료는 못 올리게 하면서도 다른 공적 지원금은 늘리지 않았다. 그러니 국공립대는 편법으로 기성회비를 계속 올렸고 그것이 지속적으로 학생 부담을 가중시키면서 학생들의 소송을 불렀고, 결국 이번 판결로 터져나온 것이다.

따라서 판결 취지를 살린다는 것은 "기형적인 기성회비 구조를 혁신하면서 학생의 등록금 부담을 줄이는 데까지 가야만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지 않고 교육과학기술부의 방침처럼 단순히 일반회계와 기성회회계를 통합하는 식으로 간다는 것은 미봉책밖에 안 된다는 얘기다.

국회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민주통합당 안민석 의원도 "단계적으로 기성회비는 폐지하고 수업료는 일정 범위 안에서 현실화하되 정부 재정지원을 늘려 반값등록금을 실행하는 것"이 해결방안이라 밝혔다. '국공립대'라는 지위와 구조에 걸맞게 국가 지원을 늘려 교육의 공공성을 높이는 것이 요체라는 것인데, 이번 기성회비 사태를 접한 국공립대 시간강사부터 학생, 교육전문가들도 비슷한 의견을 표명했다.

매우 중요한 점이 하나 더 있다. 이번 기성회비 사태를 서울·수도권이 아닌 '지역의 시각'으로 보면서 대응할 필요성이다. 부경대 박맹언 총장은 "매년 비수도권의 우수 인재 5만 명이 대학 진학을 위해 수도권으로 빠져나간다. 이 탓에 지역의 대학교육은 더 큰 곤경에 빠진다. 국공립대들도 이 점에선 별 대응책이 없고 그 여파는 사립대로 번진다"고 지적했다.

이런 폐단을 바로잡을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뭘까? 바로 싼 등록금 또는 반값등록금이다. 상대적으로 좋은 교육여건을 갖추고 있는 국공립대의 등록금이 더 내려간다면 인재를 끌어들일 수 있다. 그렇게 국공립대를 활성화시켜 대학 간 경쟁과 협력을 높이면 그 영향은 지역 사립대에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부산 지역 국공립대들의 인식이다. 법인화된 서울대를 제외하면, 주력 국공립대가 거의 '지방'에 있다는 점은 기성회비 판결로 촉발된 국공립대 등록금 인하 요구가 지역대학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