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국세청과 질긴 악연으로도 유명하다.

한때 대권 후보로 거론됐던 박 명예회장은 정치색 짙은 국세청 세무조사로 하룻밤 새 야인으로 외국을 떠돌아야 했다.

국내로 복귀하고 나서는 DJP 공조 덕에 국무총리까지 올랐지만 7년 전 세무조사의 악몽이 되살아난 탓에 사임, 다시 공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악연의 시계추는 1993년 5월 31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구지방국세청은 3개월간의 정기법인 세무조사를 통해 포철(현 포스코)과제철학원·계열사·협력사가 730억원, 박 명예회장이 63억원의 세금을 탈루했다고 발표했다. 박 명예회장은 수뢰와 횡령 혐의로 대구지검에 고발조치됐다.

국세청은 조사과정에서 이례적으로 박 명예회장의 가족 전체에 자금추적을 했다. 협력사 32곳으로부터 받은 56억원 리베이트, 타인 명의의 부동산·주식 등을 통한증여세 누락이 구체적 혐의였다. 박 명예회장의 본인·자녀·친인척 등이 관리해온 총재산액이 360억원에 이른 것도 공개했다.

이런 조사는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됐다는 게 국세청 주변의 중론이다. 김영삼 대통령이 정치 보복 차원에서 당시 추경석 국세청장에게 세무조사를 지시했고 국세청이 공격적인 조사를 벌여 박 명예회장의 흠집을 냈다는 것이다.

세무조사 직후 일본에 머물던 박 명예회장은 귀국하지 못한 채 3년6개월을 일본, 미국, 홍콩 등을 떠돌아다녔다. 이 기간에 박 명예회장은 경제적 어려움과 깊은 외로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재산은 상당 부분 압류조치됐다.

국내로 돌아와 은인자중하던 박 명예회장은 이후 15대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정계로 복귀했다. 자민련총재를 맡다 김대중 정부 시절이었던 2000년에는 국무총리로 발탁돼 화려하게 재기하기도 했다.

박 명예회장은 1998년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국세청 동원 모금의혹 사건이 불거지자 국세청을 겨냥해 '천인공노할 범죄'라며 앞장서 비난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5년 된 해묵은 앙금이 원인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그러나 국세청의 세무조사는 박 명예회장의 앞길을 다시 막았다.

박 명예회장이 국세청의 증여세 등 부과처분 취소소송 재판 중에 역삼세무서가 제출한 '부동산 구입자금 조사내역'이 불씨였다.

이 기록에서 박 명예회장은 1989~1990년 타인 명의의 가·차명계좌에 있던 11억1천만원으로 강남구 역삼동 카센터 부지 등 3건의 부동산을 사들인 것으로 확인됐다. 자금세탁과 뇌물 상납 혐의도 포착됐다.

비난 여론이 들끓자 박 명예회장은 결국 총리직을 사임할 수밖에 없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