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고, 싫고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이 있다. 뜻은 명확하다. 보다 폭넓은 맥락에서 이것은 일종의 음과 양을 나타낸다. 초콜릿을 좋아해도 이 때문에 살이 찌는 것은 싫다. 이번 주제는 '외국인이 한국 생활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종이 한 장 차이'를 얘기하고자 한다.

내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외국인이 많지는 않았다. 당시엔 해운대 방면 지하철도 없었다. 퇴근길에는 걸어 집에 갔다. 나는 자그마한 동네에 살았는데, 보쌈집 바깥쪽 의자에 앉아있곤 하던 한 노인을 알게 됐다. 보쌈집은 그의 딸이 운영하던 것이리라. 그는 나무벤치를 즐겨 찾았는데, 이런 그의 앞을 지나쳐가곤 했다. 어느날 그가 나를 불러세웠다. 그는 돼지수육과 양배추를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우리는 함께 한참을 먹고 마셨다. 그는 영어를 잘 몰랐고, 나 역시 한국어를 제대로 못했다. 아무렴 어떠랴. 우리는 친해졌다. 그는 무슨 말을 한 뒤 웃었고 나는 무슨 뜻인지 몰라도 그의 얼굴에서 의미를 읽어낼 수 있었기에 함께 따라 웃었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다. 아마 우리 할아버지를 떠올렸기 때문이 아닐까. 할아버지는 농부였다. 잘 모르더라도 뭔가는 느낄 수 있었다. 힘든 노동으로 생긴 마디 굵은 손과 주름살 많은 갈색 얼굴, 깊은 눈을 통해…. 그가 나를 왜 좋아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늘 친절했다. 그곳은 망미동이었다.

한동안 실업자로 지냈던 한국인도 생각난다. 훗날 그는 버스기사로 취업했다. 그 이후 거의 만나지 못했다. 그는 베트남전 참전용사였는데, 전쟁에서 돌아온 뒤 일거리가 시원찮았다. 그는 늘 술자리로 나를 불렀다. 그는 영어를 잘 몰랐지만 존 덴버의 노래는 부를 줄 알았다. 우리는 밤늦도록 술을 마시며 존 덴버의 '컨추리 로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우리는 가진 돈이 별로 없었으며, 나는 택시비도 없어 걸어서 집에 간 적도 많았다. 이따금 내가 그런 밤들을 어떻게 견뎠을까 의아하기도 하지만 그를 다시 만나도 나는 미소를 보낼 것이다. 그는 가진 게 없었지만 열성적으로 살았으며, 대부분 미소와 포옹으로 일관했다. 그가 내 이름을 'MI-kul' 정도로만 알고 있다 해도 우린 친구였다.

이제는 더이상 이런 분들을 만나기 어렵다. 구세대와 신세대 간 잃어버린 무엇 때문이 아닐까. 요즘 멋진 헤어 스타일과 옷차림을 한 젊은세대는 이해심이 별로다. 약속을 하고, 약속을 지키고 눈으로 사람을 보고 자신이 정말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것은 돈의 많고 적음과는 무관하다. 더는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모두 낚시꾼 같은 허풍을 떤다. 물론 이는 사실과 다르다. 나는 진실한 사람을 좋아한다. 나는 여러분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를 짜맞추려한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종이 한 장 차이'다. 이는 구세대와 신세대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구세대가 이뤘던 어떤 것들을 잃어가고 있다. 나는 이게 싫다.

마이클 스필러·경성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번역=오광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