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시대 296점의 바위그림이 그려진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반구대 암각화 현장. 물에 잠겨 있는 1.9m 아래까지 그림이 그려져 있어 보전 대책이 시급하다. 국제신문 DB

- 정부, 운문댐 물공급 불가로 기존 합의안 유야무야 끝나
- 울산시·문화재청 갈등 재연…市 "보존 정책 포기" 정부 비난

국보 제285호인 울산 반구대암각화 보존해법이 또다시 원점으로 회귀했다. 정부 부처가 어렵게 마련한 대책이 경제 논리 앞에 무용지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경북 청도 운문댐 용수 공급과 사연댐 수위조절에 따른 암각화 보존이라는 큰 틀이 전제 조건으로 추진한 경북·대구권 맑은 물 공급사업의 경제성 결여로 판명나면서 무위로 돌아갔다.

결국 새로운 대안을 마련해야 할 판이다. 따라서 세계적 문화유산인 반구대암각화 보존대책은 원점에서 맴돌면서 또다시 울산시와 문화재청 간의 결론 없는 말싸움만 재연될 상황에 처했다.

■경제논리에 보존대책 원점 회귀

울산시 오동호 행정부시장은 최근 기자회견을 갖고 "울산권 맑은 물 공급사업과 반구대암각화 보존 대책 동시 추진은 정부의 운문댐 용수 울산 공급 불가 결정으로 차질을 빚게 돼 암각화 보존대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공식 선언했다.

최근까지 반구대암각화를 방문한 정부의 관련 부처는 보존 대책을 위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조만간 대책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전혀 다른 결론을 내려 울산시나 문화재청 모두 당황스러워하고 있다. 특히 기대를 모았던 국무총리실 주관의 정부대책협의는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한 채 표류하게 됐다. 여기에다 지난 3일 개최한 2차 정부대책협의회에서는 추후 협의 일정조차 잡지 못한 채 흐지부지 끝났다. 합의안이 유야무야된 이후 정부 부처 관계자들이 사실상 손을 놓고 있어 반구대암각화는 장기간 물속에서 자맥질이 불가피해졌다.

■새로운 대안은 있나

문제는 반구대암각화 보존대책이 울산시와 정부 부처간에 추가 협의를 갖더라도 지금의 합의안 외에 새로운 안을 도출하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울산시 관계자는 "정부는 지역 정치권과 시민단체,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암각화를 보존하고 식수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밝히고 있다"며 "하지만 폐기된 보존대책 외에 이해 당사자간 합의를 끌어내 새로운 대안 마련 쉽지 않아 고민"이라고 말했다.

앞서 울산시는 반구대암각화 보존대책으로 3가지 안을 문화재청에 제시했다. 이 중 울산시가 2차 정부대책협의회에서 강력히 주장한 유로변경안은 사연댐으로 유입되는 대곡천의 물길을 우회시키기 위해 수로 터널을 설치하는 게 골자다. 하지만 이 안은 문화재청이 주변 환경 훼손을 우려해 반대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반구대암각화와 주변 환경을 함께 보존하기 위해 사연댐의 수위를 낮춰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에 울산시는 암각화 보존에는 공감하지만 댐을 수위조절할 경우 식수난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식수대책을 선결조건으로 요구하고 있다.

결국 새로운 보존대책은 현재로선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양 기관은 대립각을 세우고 줄다리기만 할 가능성이 높다.

울산시 관계자는 "정부가 물 문제와 반구대암각화 보존대책을 동시에 이행하기로 합의한 상황에서 경북·대구권 물 문제를 이유로 암각화 보존대책을 표류시키는 것은 사실상 보존 정책 포기"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