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행 - 시민사회 각계 인사들이 24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 앞에서 시국회의를 열고 정리해고 문제를 조속하게 해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 작년 해고자 중 20%만 취업, 대부분 하청업체…질 추락

- 노동청 알선 취업 2명 불과, 구인구직행사에 참석자 0명

- 부산시, 지원책 마련 미미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후 부산시와 사측, 지역 경제계는 해고 노동자들의 재취업 지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24일 현재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은 200일째 고공 농성 중이고, 해고 노동자 95명은 여전히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만약 이들이 구조조정 후에도 비슷한 급여와 복리후생을 보장하는 업체에 재취업할 수 있다면 이렇게 목숨을 건 투쟁을 벌일까. 고용사정이 어려운 부산에서 400개의 괜찮은 정규직 일자리가 날아갔다. 해고 노동자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으며 부산시와 부산고용노동청은 이들을 위해 어떤 대책을 시행했을까.

한진중공업 사태를 해결할 열쇠는 결국 '일자리'다. 해고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책임지지 못하면, 이제 파국을 막을 방법은 없다. 정치적 개입, 충돌 일변도의 혼란을 막기 위해 기본적 논의로 돌아가야 한다는 지적도 이런 이유에서 나온다.

■정규직이 실업자·하청업체로

	저지 - 부산 영도구 주민자치협의회 관계자들이 24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앞에서 '3차 희망버스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고용노동청은 지난해 말 구조조정된 한진중공업 노동자 400명 중 58명만 재취업했다고 24일 밝혔다. 이는 실업급여 지급 현황으로 파악한 자료다. 복직투쟁 중인 95명과 산업재해로 퇴사한 5명을 제외하면 약 20%만 재취업에 성공했다.

재취업한 58명 중 자영업을 택한 2명과 사업장 규모가 확인되지 않는 6명을 제외하면 대부분 한진중공업보다 규모가 작은 회사에 입사했다. 300인 이상 사업장은 10명, 100~299인 1명, 50~99인 13명, 10~49인 12명, 10인 미만 14명이다. 58명 중 한진중공업과 비슷한 수준의 기업에 재취업한 이들은 300인 이상 사업장 10명가량인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 고용의 질이 크게 추락했다.

재취업하지 못한 구조조정 대상자들은 길게는 5~6개월, 짧게는 1개월가량 실업급여에 의존해 살고 있다. 이들의 실업급여액은 대체로 하루 4만 원이다. 정리해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파업을 벌인 일부는 '불법파업' 일수가 평균 임금산정 과정에서 빠져 하루 실업급여액이 3만1104원까지 낮아졌다.

'6·27 합의' 이후 희망퇴직한 안모(39) 씨는 "울산에 조선소 하청이 많아서 알아보고 있다. 몸이 힘들고 돈이 적겠지만 원청에 가는 것은 아예 생각도 못하고 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실직자 지원책 '속 빈 강정'

	충돌 - 24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앞에서 시국회의에 참석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와 이를 저지하는 영도구민들이 충돌하고 있다. 박수현 기자 parksh@kookje.co.kr

부산시와 고용노동청은 지난달 노사합의 후 실직자 고용지원대책을 최우선으로 한다며 한진중공업 노·사, 경총, 조선업협의회 관계자가 참석한 고용현안협의회를 개최했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STX조선해양 등 부산·울산·경남 주요 6개 조선사 인사·노무부서장 등을 중심으로 고용현안협의회를 구성했다고도 했다.

그러나 부산시나 고용노동청의 실직자 지원 실적은 미미하다. 정리해고 노동자 가운데 고용노동청 알선으로 재취업한 사람은 지금까지 2명에 불과하다. 이는 관이 갖가지 그럴싸한 지원책을 내놨지만 실제 한진중공업 실직자들이 희망하는 조선사들은 구인 수요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고용현안협의회에 참여한 주요 6개 조선사도 마찬가지다.

지난주 고용노동청은 경남 진해고용센터에서 한진중공업 퇴직자를 위한 '구인·구직 만남의 날' 행사를 열었다. 그러나 퇴직자는 단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참여 기업 9개 모두가 조선소 협력업체(하청업체)였기 때문이다. 한진중공업 희망퇴직자 김모(30) 씨는 "4자 협의체(시, 고용노동청, 노·사)가 말하는 건 결국 '하청으로 들어가라, 비정규직이 되라'는 것이다. 하청업체는 혼자 힘으로도 충분히 들어갈 수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고용노동청 관계자는 "고용현안협의회에 참여한 6개 조선사 가운데 SPP조선을 제외하고는 채용 계획이 없다"며 "퇴직자들은 3000만~5000만 원가량 연봉을 주는 원청업체에 재취업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부산시는 물밑에서 희망버스 반대여론 만들기에 급급할 뿐 고용 지원은 뒷전이다. 부산시 관계자는 "한진중공업 퇴직자들의 재취업 현황은 잘 모르겠다"며 "부산시와 노동청, 노·사가 모여 한마음고용지원센터를 운영하려고 하는데 노측이 다음 달로 미루자고 해 개소가 늦어졌다"고 해명했다.


# 한진중 이재용 사장·고공농성 200일 김진숙 지도위원 인터뷰

이재용 한진중공업 사장과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은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만나거나 대화하지 않았다. 둘이 조금씩 마음을 돌려야 '희망의 버스'로까지 번진 이번 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 이에 본지는 이 사장과 김 지도위원에게 한진중 사태의 해법을 직접 물어봤다.


■이재용 사장 - "안정되면 해고자 우선 채용"

- 사정상 정리해고 철회 어려워…내려와서 진지하게 대화를

-김 위원이 크레인에 오른 지 200일이 됐다.

▶의사표현 충분히 하지 않았는가. 그만 내려와야 한다. 남의 회사 시설물을 장기간 무단 점거하는 것은 법치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리해고 철회 투쟁을 하는 95명도 힘들겠지만 1400명의 회사 직원, 2000여 명의 협력업체 직원 모두를 생각해야 한다.

-직접 대화할 생각은.

▶전화 통화한 적은 없지만 노조 집행부를 통해 여러 가지 회사 입장을 전달하고 있다.

-정리해고 철회할 생각은 전혀 없나.

▶근로기준법 25조에 따라 회사가 안정을 찾으면 해고 노동자를 우선 채용할 생각이다. 지금은 사정이 좋지 않다. 당장 수주했다 하더라도 여러 가지 준비작업으로 6개월가량 일손을 놓고 있어야 한다. 회사도 최대한 고민해 내린 결론이다. '법적으로 결정 난 사안이지만 투쟁만 하면 승리할 수 있다'는 선례를 노동계에 남겨서는 안 된다.

-정리해고자 100명도 도저히 복직이 안 되나.

▶그렇다. 된다면 문제를 어렵게 끌고 가지 않았을 것이다.

-김 위원에게 하고 싶은 말은.

▶자발적으로 내려올 수 없나. 강제로 끌어내릴 생각은 없다. 상황을 길게 끌고 간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내려와서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자.


■김진숙 지도위원 - "비정규직 자리 불과… 신뢰 못해"

- 크레인 위에서도 대화 가능, 희망버스 안 막으면 피해 없어

-내려와서 이야기하자고 제안한다.

▶내려가면 할 수 있고, 여기서는 못하나. 먼저 나에게 신뢰를 준 뒤 요구해야 한다. 2003년 당시 사측은 고 김주익 열사에게도 똑같이 이야기했다. "일단 내려와서 대화하자"고.

-어떤 신뢰를 말하나.

▶'6·27 합의'만 들이밀고 있다. 기본적인 것부터 하나씩 바꿔나가며 믿게 해달라. 용역을 철수시키고, 해고 조합원들에게 조합 사무실로 가는 길을 열어라.

-해고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겠다고 한다.

▶그건 정리해고 인정하라는 것 아닌가. 뻔하다. 비정규직 자리다. 2006년 부산지하철 매표소 노동자 투쟁 때 부산시가 취업 보장하겠다고 했는데 모두 비정규직이었다. 어떻게 믿겠는가.

-희망버스로 피해 보는 주민도 있다.

▶전국의 시민이 자발적으로 왔다. 막지만 않으면 이들이 부산 경제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

-200일 됐다. 정말 안 내려올 건가.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20년 지기가 여기서 죽었고 내 손으로 땅에 묻었다. '영웅심리다. 외부세력이다'고 비판하기 전에 진심을 헤아려 달라. 누구보다 내려가고 싶다. 정리해고만 철회하면 청소하고 내려가겠다.

-이 사장에게 하고 싶은 말은.

▶언제까지 끌고 갈 건가. 2003년 사태를 재현하고 싶은가. 진심으로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