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합대 승격 뒤 캠퍼스 찾던 부산대 총장 만나 지원 약속
- 50만평 부지 무상 제공 중재, 건축 자재 지원·진입로 닦아
- 메리놀 병원 확충안에 공감, 대한원조처 계획 의해 착공
- 장병 월급 1% 공사비 지원
- 부산시민, 공덕비 세워 기려
'부산대 60년사'와 '메리놀병원 50년사'를 보면 6·25 전쟁 전후 부산에서 활동한 리차드 위트컴 미군 군수기지사령관(준장)이 베푼 선행이 자세히 소개돼 있다. 한국 국민이 전쟁의 상처를 빨리 치유하도록 교육 및 의료사업에 관심을 보였다.
■부산대 장전캠퍼스 초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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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3년 11월 부산역전 대화재 이후 위트컴 장군이 현재의 중구 동광동 대동맨션 아래쪽에 이재민을 위한 천막촌을 마련했다.
강석환 부산타워 대표·클리프 씨 제공 |
1946년 9월 부산 서구 충무동에 단과대학으로 개교한 부산대는 1953년 종합대학으로 승격되지만 마땅한 캠퍼스 부지를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윤인구 부산대 초대 총장은 1954년 6월 8일 위트컴 장군과 만나 함께 해법을 찾았다. 이날 충무동 캠퍼스를 찾은 위트컴 장군은 "새 캠퍼스 조성에 필요한 25만 달러 상당의 건축자재를 대한미군원조처(AFAK)를 통해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힘을 얻은 윤 총장은 부산을 돌며 부지를 물색한 끝에 금정산 동쪽 기슭의 전 일본인 소유 다카세 농장 일대를 새 캠퍼스 부지로 확정했다. 위트컴 장군은 경남도시자와 이승만 대통령을 설득해 부지 165만 ㎡(50만 평)를 부산대에 무상으로 제공했다. 이곳이 현재 부산대 장전캠퍼스다.
당시 전차 및 버스 등 대중교통의 종점이었던 온천장(현재 부산은행 온천동지점 자리)에서 부산대 무지개문까지 간선도로를 건설하는 것도 시급한 문제였다. 위트컴 장군의 지시로 미 제434공병부대가 온천장~부산대 간 길이 1.6㎞의 진입도로를 닦아 1955년 4월 개통시켰다.
이 밖에 대학원, 도서관, 박물관 같은 장전캠퍼스 건물이 준공된 데는 "위트컴 장군의 헌신적인 기여가 있었다"(92쪽)고 '부산대 60년사'는 기록했다.
■메리놀병원 신축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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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역전 대화재 이주민들이 위트컴 장군의 은혜를 기리기 위해 세운 공덕비.위치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김재호 부산대 교수 제공 |
1950년 4월 부산 중구 대청동 4가 현 부산가톨릭센터 자리에 메리놀수녀병원이 문을 열었다. 개원 이래 활발한 의료사업을 수행하던 메리놀수녀회는 6·25 전쟁 종전 이후 입원 시설과 전문의료인력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시설 확충 계획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평소 병원에 관심을 두고 많은 도움을 줬던 위트컴 장군과 대한미군원조처의 지원 아래 현재 병원 소재지에 지상 3층, 16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을 세우기로 했다. 1954년 7월 29일 기공식과 함께 공사에 들어갔다.
특히 위트컴 장군은 병원 신축이 공사비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자 휘하 미군 장병들에게 월급의 1%를 공사비로 내게 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위트컴 장군 공덕비
1953년 11월 부산역전 대화재가 발생하자 위트컴 장군은 추위에 오갈 데 없는 이재민을 위해 천막촌을 직접 짓고 군수물자를 제공했다. 이 바람에 위트컴 장군은 미국 의회 청문회에 서는 등 군인으로서의 위기를 맞았다. 부산시민들은 위트컴 장군에 대한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 공덕비를 세웠다. 공덕비 사진을 최근 입수한 김재호 부산대 문화콘텐츠개발원장은 "공덕비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