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3년 부산역전 대화재 때 군법 어겨가며 군수품 풀고 병원 짓는데도 물자 등 지원
- 한국인과 결혼·UN공원 안장
- 그의 삶 재조명 작업 활발
1953년 11월 부산역전 대화재 때 군법을 어기고 군수물자를 이재민에게 나눠줘 미국 의회 청문회에 불려간 리차드 위트컴(1894~1982) 부산 미군군수기지사령관(준장)의 공덕을 재조명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위트컴 장군은 청문회에서 "전쟁은 총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나라 국민을 위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라고 말해 의원들의 기립박수와 함께 많은 구호금까지 받고서 부산으로 돌아왔다. 위트컴 장군의 은혜를 입은 부산시민들은 위트컴 장군의 공덕비를 세웠다. 안타깝게도 현재 공덕비 사진만 있을 뿐 비석 존재 여부와 위치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부산대 김재호 문화콘텐츠개발원장(전자전기공학부 교수)과 용두산공원 부산타워 강석환 대표는 "UN의 이념인 인류애와 평화를 몸소 실천한 위트컴 장군을 기려 현재 부산 남구에 조성 중인 UN평화기념관에 그를 기념하는 코너를 만들고 아름다운 선행에 관한 스토리텔링을 개발해 세계적인 관광상품으로 키워야 한다"고 10일 밝혔다. 김 원장은 "위트컴 장군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유튜브에 올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알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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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3년 부산역전 대화재 때
군수물자를 나눠준 위트컴 장군.
한국에 남아 전쟁 고아를 돌보다가 1982년 숨진 그는 부산 UN기념공원에 안장돼 있다. 강덕철 기자 |
특히 위트컴 장군은 부산대 장전캠퍼스 조성과 중구 메리놀병원 신축에 초석을 다졌다. '부산대 60년사'와 '메리놀병원 50년사'에는 이 같은 내용이 기록돼 있다. 그는 1954년 당시 윤인구 부산대 초대 총장의 열정에 감명을 받아 장전캠퍼스 부지 선정은 물론 25만 달러 상당의 건축 자재를 지원했다. 또 예하 공병부대로 하여금 전차 종점인 온천장에서 부산대(무지개문)까지의 진입로와 부지조성 공사를 하도록 도왔다. 부산 메리놀병원 신축을 위해서는 대한미군원조처(AFAK) 기금 조달과 함께 예하 부대원의 월급 1%를 병원 신축기금으로 헌금하도록 했다.
위트컴 장군은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퇴역 후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남아 전쟁 고아를 위해 고아원을 지었다. 한국인인 한묘숙(86·서울 한남동) 씨와 결혼했으며 1982년 7월 한국에서 숨졌다. 그리고 부산 남구 대연동 UN기념공원에 묻혔다. UN기념공원에 안장된 미군 유해 32기 중 장군은 그가 유일하다. 부인 한 씨와 위트컴 희망재단 관계자는 다음 달 12일 위트컴 장군의 기일에 맞춰 부산 UN기념공원을 방문할 예정이다. 주한미국영사관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1953년 부산역전 대화재= 1953년 11월 27일 오후 8시30분께 부산 중구 영주동 피란민 판자촌에서 불이 나 영주동 동광동 중앙동 일대와 부산역(당시 중앙동 소재)을 태우고 10시간 만에 꺼졌다. 29명의 사상자와 6000여 세대 3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