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엔 일부 문제아들 전유물, 이젠 앳된 소녀들까지 "×발"
- 말하면서 욕 한두개 씩은 기본, 욕설 애플리케이션도 큰 인기
- 어른들에 막말 패륜논란 속출
맞벌이 생활을 하는 김모(여·42·부산 수영구 남천동) 씨는 지난 주말 중학교 1학년 아들 때문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들은 집에 놀러 온 친구와 인터넷 게임을 하고 있었다. 김 씨는 간식을 챙겨주려고 아들 방으로 가다가 문밖에서 섬뜩한 대화를 들었다. "저 ×새퀴 ×나 재수 없네", "×미 저런 ×새끼는 영구 차단해야 한다", "×발 ×됐다" 등.
아들과 친구의 말 한마디에 욕이 두세 개씩 들어가는 건 기본이었다. 생전 처음 듣는 욕도 있었다. 김 씨는 한동안 충격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김 씨는 "평소 직장에 다니느라 아들과 이야기할 시간이 별로 없었다. 물론 우리 때도 욕을 쓰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며 "겨울방학 동안 뭔가 대책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고 걱정했다.
청소년에게 욕이 일상화된 것은 새로운 사실도 아니다. 부산의 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최모(47) 교사는 "아이들에게 욕은 이제 욕이 아니다. 또래가 쓰는 은어일 뿐이다"며 "욕은 청소년들의 일상어처럼 변했다"고 한숨을 쉬었다.
예전에는 속칭 '문제아'라 불리는 몇몇 아이들이 자신을 과시하거나 친구에게 겁주려고 욕을 했다면, 지금은 대부분의 초·중·고교생이 습관적으로 욕을 내뱉고 있다. 욕을 할 때도 거리낌 없고, 들을 때도 괘념치 않는다. 최 교사는 "학생들이 조례 등 조용한 시간에는 조심하지만, 조금만 시끄럽거나 자유로운 상황이 되면 교사가 바로 앞에 있어도 욕을 섞어 이야기한다"고 전했다.
이미 위험 수위를 훌쩍 넘은 10대들의 언어습관은 연일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다. 최근에는 '지하철 막말녀' 동영상이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동영상 속 10대 여성은 지하철 전동차 안에서 훈계하는 할머니에게 "나한테 (말) 걸지 마. 괜히 왜 말 걸다가 욕먹어. 그러니까 사람 봐 가면서 건드려"라며 대들었다. 또 "모르는 인간이 말 거는 거 ×나 싫어"라며 욕도 했다.
이 밖에도 앳된 소녀가 중년 남성을 밀치며 "이 ×× 같은 ××야"라고 소리치는 장면 등 욕설에 빠진 청소년이 등장하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종종 떠돌고 있다.
청소년끼리 흥분을 못 이겨 서로 욕하다 대형 사고를 치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지난달 21일 부산경찰청에 적발된 10대 디도스(DDoS) 해커들은 인터넷 게임을 하다 상대방이 욕했다는 이유로 부산 사하구 한 아파트 전체 통신망을 마비시키기도 했다. 화나면 욕하고, 욕하다가 자제력이 떨어지면 사건을 일으키는 것이다.
웬만한 청소년들이 갖고 다니는 휴대전화도 욕으로 얼룩지고 있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욕 앱(애플리케이션)'에는 적나라한 욕설이 100개가 넘는다. 이 중 하나를 골라 화면을 치면 해당 욕이 녹음된 음성으로 나온다. '이 시베리아 십장생아' '족구하라 그래' '이 벌레 먹은 개나리야' '시밤바' 등 교묘하게 '금칙어'를 피한 욕들이 줄줄이 쏟아진다. 이 앱은 출시 일주일 만에 13만 명이 내려받았고, 만 17세 이상만 'OK'를 누르라는 안내문이 나오지만 무시하면 그만이다.
이처럼 청소년 언어습관이 심각한 상황에 이르자 대통령까지 나섰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7월 27일 국무회의 때 "청소년 언어 사용 실태를 파악해 대책을 수립,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부산교육청 관계자는 "청소년의 욕 사용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면서 여성가족부와 교육과학기술부 등이 함께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인터넷 등 각종 매체의 욕설을 규제하고 건전한 인터넷 문화를 조성하는 일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 욕·유행어를 변형한 비속어도 온라인 장악
- 그들만의 언어로 사용 하다보니 한글맞춤법 서툰 중고생 수두룩
- "정부·교육청 대책 안일" 지적
청소년 대부분은 자기가 쓰는 욕의 의미를 모른다. 이 때문에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욕의 뜻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자신의 입에서 얼마나 천한 말이 나오고 있는지를 인식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비속어들은 해석이 불가능한 경우가 허다하다. 청소년들이 욕을 교묘히 가리거나, 유행어를 변형시켜 만든 비속어들이 이미 인터넷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장악했다.
욕설과 인터넷 비속어에 점령당한 청소년들은 한글 맞춤법 실력도 크게 떨어졌다. 욕과 은어를 일상어로 사용하다 보니 초등학생 수준의 맞춤법도 모르는 중·고교생이 속출하고 있다.
이처럼 청소년 언어가 심각하게 오염됐지만 정부와 교육청의 대책은 너무 안일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문제점은 인식했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특화 프로그램은 없었다는 것이다. 최근 여성가족부와 교육과학기술부가 내놓은 대책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4일 ▷학교문화 선진화 사업 확대(2010년 150개교→2011년 300개교) ▷학교생활규정에 '공공규칙' 내용 강화 ▷'Wee 프로젝트(We + Emotion + Education) 운영 내실화를 대책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학교문화 선진화 사업은 폭력적 졸업식 문화를 바꾸자는 취지의 정책이며, Wee 프로젝트는 학교 교육청 지역사회가 협력해 위기학생 상담과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학생안전망 구축 사업이다. 큰 틀에서는 관계가 있을지 모르지만, 보여주기식 재탕 정책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25년 경력의 하호근(51) 국어교사는 "우리나라에는 성에 관련된 욕이 많다"며 "학생들이 욕의 의미를 안다면 조심스러워할 것이다. 제대로 뜻을 가르치고 교육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 청소년 인터넷 비속어
▶즐/조용히 꺼지세요 ▶쩐다/한 가지 일에 능통하다, 대단하다 ▶돋네/소름이 돋네▶솔까말/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십장생/10대도 장차 백수를 생각해야 한다 ▶십오야/15세만 돼도 앞날이 캄캄하다 ▶십덕후/야동 마니아▶병맛인/병신 같은 맛 ▶이뭐병/이건 뭐 병신도 아니고 ▶조낸/매우 ▶특공대/특별히 공부도 못 하면서 머리만 큰 사람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 ▶ㄷㅊ/닥쳐 ▶현시창/현실은 시궁창 ▶열폭/열등감 폭발 ▶려차/욕설 영어단어를 한글자판으로 친 것 ▶레알/진짜
# 청소년 10명 중 7명 매일 욕설 사용
- 욕하는 대상 친구 형제 후배 순
- 절반은 "욕설 나쁜건가" 무감각
- 인터넷 게임 때 가장 많이 사용
청소년 10명 중 7명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욕설을 사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여성가족부는 지난해 10~11월 교육과학기술부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전국 청소년 6712명을 대상으로 실태 조사한 결과 73.4%가 매일 한 차례 이상 욕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9일 밝혔다. 청소년 3명 중 1명은 습관적(12.8%)이거나 자주(18.8%) 욕을 했고, 41.8%는 가끔 욕을 썼다. 욕을 전혀 하지 않는 청소년은 5.4%에 불과했다.
실태 조사 자료를 보면 청소년이 욕하는 대상은 친구가 70.3%로 가장 많았고, 형제(11.7%)와 후배(8.4%) 등이 뒤를 이었다. 청소년 대부분은 특별한 이유 없이 습관(53%) 등으로 욕을 했고, 욕의 의미를 아는 경우는 27%에 그쳤다. 욕설 의미를 모를수록 욕을 더 자주 하고, 함부로 사용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청소년 47%는 욕할 때 '별 느낌이 없다'고 답해 욕설을 습관적으로 쓰고,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는 실태를 여실히 보여줬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욕설 사용 원인을 ▷일상적 문화 ▷자기 방어기제 ▷친구 간 유대·친근감 표시 ▷입시·학력경쟁 스트레스 해소 등을 꼽았다.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욕에 노출되는 청소년이 많았다. 청소년의 56%(온라인 게임 52.2%, 인터넷 44.6%, 휴대전화 33.8%, TV 10.6%)가 디지털 미디어를 이용할 때 욕을 경험했다. 또 디지털 미디어로부터 신조어나 욕설, 폭력적 언어를 모방하는 사례가 많아 청소년 언어생활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욕설 습득 경로는 친구(47.7%) 인터넷(26.4%) 영화(10.2%) 형제(4.4%) TV(4.3%) 부모(2.1%) 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