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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일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찾은 시민들이 망원경을 통해 암각화의 '숨은 그림'을 찾고 있다. 이 암각화는 연중 8개월 가량 사연댐 물에 잠긴다. 김성한 기자 |
18일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반구대마을. 수위가 내려갔다는 얘기를 듣고 반구대 암각화를 보러왔다는 김상태(46·부산 금정구) 씨의 눈에 실망의 빛이 역력했다. 망원경으로 봐도 바위 표면의 이물질과 절리·균열로 인해 그림이 선명하지 않았다. 반구대마을 주민 이상락(76) 씨가 그간 경위를 들려줬다. "댐이 생기기 전엔 암각화 아래에서 목욕도 하고 놀았어. 그땐 암각화 높이가 수면에서 10m 가량 떨어져 있었는데 동네에서 '귀신같은 그림'이라고들 했지. 암각화 위로 바위가 빗물을 막아주고 옆에는 병풍처럼 돌이 쳐져 바람을 막아 수 천년을 훼손 없이 버텨온 거야. 그런데 지금은 1년 중 8개월은 물에 잠기니 훼손이 심하지."
이날 사연댐의 수위는 52.1m. 암각화는 사연댐 수위 52.5m부터 하단부가 잠기기 시작해 56.5m가 되면 완전 침수된다. 사연댐은 높이 60m의 록필댐(rockfill-dam)으로 수문이 없다. 따라서 수문 설치는 암각화 보호의 1단계 조치다. 비록 식수난 해결을 전제했지만 울산시가 수문 설치에 찬성한 것은 의미있는 입장 변화다.
■물고문 당하는 국보
반구대 암각화 보존 문제가 이슈가 되면서 최근 정부 여당의 고위 인사들이 잇따라 현장을 찾았다.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물론 국무총리, 국회의장, 여당 대표까지 현장을 방문해 참담한 실상을 목도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암각화가 무너지면 큰일" "저렇게 놔두는 것은 수치"라며 보존대책을 촉구했다. 그러나 돌아가고 나면 그뿐, 대책은 겉돌았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지난 3월 14일 현장을 답사한 후, 전문가 의견을 토대로 응급처방전을 제시하기도 했다. 급한 대로 암각화 주위에 임시제방을 쌓고 수위를 낮추자는 방안이었으나, 문화재 원형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파묻혔다.
지금까지 논의된 보존 방안은 크게 3가지. ▶사연댐 수위 조절안(현 60m→52m)과 ▶암각화 주변 차수벽 설치안 ▶터널형 유로 변경안이 그것. 울산시는 차수벽 또는 유로 변경안을 주장해왔으나, 결국 원형 보존을 중시한 문화재청의 안을 수용하기로 했다.
수문 설치와 동시에 암각화 자체 보존 방안 마련도 시급하다. 지난해 3월 열린 '암각화 보존 공청회'에서 경주대 도진영 교수는 "암각화 조각 부위의 평균 심도는 1.5㎜ 정도로 얕아 안정성이 우려된다"면서 "완전한 보존대책이 수립되기 전이라도 박리나 균열 부위에 임시 접착 처리 조치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울산시는 오는 24일 공주대 연구팀에 의뢰한 '반구대 암각화 암면 보존방안 학술연구용역' 중간보고회를 갖는다.
■울산 식수 문제 해결이 변수
울산의 주식수원은 시가 직접 관리하는 회야댐과 한국자원공사에 운영하는 사연댐, 대곡댐, 대암댐 등 4개 댐이고 총저수량은 8450만t에 달한다. 이와함께 낙동강 원수를 1일 평균 6만~8만t 끌어쓰고 있다. 이 원수를 회야와 천상 정수사업소에서 매일 33만t씩 정수해 110만 시민에게 공급하고 있다.
국토해양부 분석에 따르면, 사연댐의 수위를 60→52m로 낮춰도 당장은 취수에 큰 문제가 없다. 수자원공사 댐유역관리처 관계자는 "사연·대곡댐에서 하루 최대 17만 t을 취수하고 있으나, 상류 대곡댐에서 9만 t을 분담하므로 사연댐에선 실제 8만 t이 필요하다"면서 "수위를 낮춰도 공급에 별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울산시 상수도사업본부 관계자는 "2020년 이후 울산권에 하루 12만 t의 추가 용수가 필요하다"면서 국토부가 해결책을 강구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의뢰해 '대구·경북권 청정수원 확보 방안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진행 중이며, 경북 청도 운문댐에서 하루 7만 t을 가져오고, 공업용수댐인 울산 대암댐을 생활용수댐으로 전환해 하루 5만 t을 공급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대구시는 "운문댐에서 하루 20만 t(용량은 33만 t)을 가져오고 있지만, 혁신도시 및 경산지역의 미래 수요를 감안하면 남는 물이 없다"고 밝혔다.
■해결 과제와 전망
반구대 암각화가 온전히 보존되려면 정부관계 부처와 지자체간 물 문제 등이 풀려야 하고, 암각화 영구 보존을 위한 종합대책이 수립돼야 한다. 대구·경북권에서 운문댐 물을 못주겠다고 할 경우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울산대 정책대학원 이달희 교수는 "남강댐 물 부산 공급 추진 과정에서 보듯, 지자체에서 물을 내주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면서, "물 문제 해결을 위해 대대적인 시민 물 절약운동부터 펼쳤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울산환경운동연합 오영애 사무처장도 "암각화 보존은 물 수요관리가 병행되지 않으면 해결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반구대 암각화가 보존되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 울산시의 위상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은 "울산시가 물 절약 캠페인을 벌이며 문화재를 지키는 실질적인 노력을 통해 암각화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 세계가 주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포르투갈 암각화 보존위해 댐 건설 백지화
BC 13세기 람세스 2세때 세워진 아부 심벨(Abu Simbel)은 이집트 남부 나세르 호에 위치한 거대한 바위 사원이다. 1950년대 아스완 댐 공사로 수몰 위기에 놓이자, 유네스코를 비롯한 국제기구 등이 나서 보존운동에 벌였다. 국제사회의 관심 속에 이 사원은 전체 유적을 큰 블록으로 잘라서 65m 위로 들어올리는 데 성공, 원형이 보존됐다. 아부 심벨 사원은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몽고와 러시아 사이에 있는 투바자치국이 유명해진 것은 20 년전 사이안 협곡에 댐이 들어서면서다. 댐 예정지에서 암각화가 발견되자 당국은 대대적 조사를 통해 암각화 원형을 옮긴 다음 댐을 건설했다.
포르투갈 '코야계곡'의 암각화는 댐 수몰 위기에서 극적으로 되살아났다. 암각화 유적이 나타나자 정부는 댐 건설을 백지화 하고 유네스코와 협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그후 이곳은 관광 명소로 변했다. 코야계곡의 암각화 연구자들은 오는 10월 한국을 방문, 암각화 학술회의를 갖는다.
동북아역사재단 장석호 박사는 "댐과 물에 잠기는 암각화를 구한 사례는 이 밖에도 많다"면서 "울산 사연댐 역시 수문 설치(수위 저하)→원형 보존→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이뤄지면 명소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암각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원형 또는 원상 회복이며, 이 점에서 차수벽 설치나 유로변경 등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은 현재 148개 국에 걸쳐 890점이 등재돼 있으며, 국내엔 9점(일본 14점, 중국 39점)이 있다.
◇반구대 암각화 보존대책 일지
-1965년 울산 사연댐 준공(국내 최초 록필댐)
-1971년 반구대 암각화 발견(동국대 문명대 교수팀)
-1995년 국보 제285호 지정
-2003년 7월 울산시 보존대책 연구 용역 실시
-2007년 3월 울산시 차수벽 설치안 건의
-2008년 5월 암각화 전시관 개관
-2008년 8월 울산시 터널형 유로변경안 건의
-2009년 3월 문화재청 보존 방안 공청회
-2010년 1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목록 신청
-2010년 6월 24일 울산시 '암각화 암면 보존방안 용역' 중간보고(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