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부산 강서구 명지주거단지 가로수가 흰불나방 유충 피해로 앙상하게 말라 있다. 곽재훈 기자

부산 강서구 명지주거단지 일대가 흰불나방 유충의 '습격'에 시달리고 있다. 벌레들이 가로수 잎을 갉아먹어 수백 그루가 고사하고 있으며, 인근 공사 현장 근로자들과 상가 주민들이 벌레에 물리는 등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흰불나방 유충은 지난해 7월 녹산국가산업단지 일대를 덮쳐 큰 피해를 낸 전력이 있는데도 올해 당국이 초기방제를 소홀히해 유충 번식을 사실상 방치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20일 오후 부산 강서구 명지주거단지 내 명지고교 신축공사장 앞 도로에 6~8m 간격으로 심어져 있는 왕벚나무 가로수들마다 까만 몸통에 흰털이 가득 뒤덮인 4~5㎝ 크기의 벌레 수십 마리가 달라붙어 잎을 갉아먹고 있었다. 이 때문에 가로수 나뭇잎은 가을을 맞은 듯 갈색으로 메말라 있었다. 또 인근에 주차된 차량의 지붕에는 벌레와 벌레의 배설물이 가득 쌓여있는 모습이 징그러워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심지어 일부 지역은 벌레가 가로수 인근 아카시아 나무 등으로 그 세를 확장하고 있었고, 상당수 가로수는 말라죽어가고 있었다. 동아대 조경학과 남정칠 교수는 "흰불나방 유충은 왕벚나무나 버즘나무 등 활엽수의 잎을 먹고 산다. 한번에 200~300개의 알을 낳기 때문에 초기방제가 이뤄지지 않으면 개체수가 급속히 늘어나 피해가 확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흰불나방 유충

현재 흰불나방 유충으로 인해 명지주거단지 내 2000여 그루 가로수 가운데 30~40%가 피해를 입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주거단지 외곽 바다 쪽 왕복 4차선 도로에 심어져 있는 2㎞ 구간의 가로수들과 롯데캐슬 아파트 지역 가로수들의 피해가 특히 심각했다. 이곳에서 상가를 운영하는 조영천(50) 씨는 "3~4일 전부터 갑자기 벌레들이 늘어나더니 멀쩡한 나무를 다 갉아먹고 있다. 보기 흉할 뿐만 아니라 바람이 불면 벌레들이 날아와 사람 몸으로 떨어져 미칠 지경"이라며 대책을 호소했다. 인근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노모 (52) 씨는 "식당에서 밥을 먹다 벌레들이 반찬에 날아들기도 한다"며 "종종 벌레에 물리기도 하는데 구청은 형식적인 방제만 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강서구청 녹산산업단지관리소는 지난 18일 야간부터 방제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이미 초기방제 시기를 놓쳐 애를 먹고 있다. 관리소 관계자는 "지난주 비가 오고 주말 국경일이 끼어 방제작업 시기가 늦어졌다"며 "주차 차량에 살충제가 묻을 경우 운전자들의 항의가 심해 방제작업도 원활하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