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부산 강서구 녹산동 일대 농경지 일부가 지사천에서 흘러든 물로 인해 침수돼 있다. 박수현 기자 parksh@kookje.co.kr

부산 강서구 지사천의 흙탕물이 밤새 내린 비로 범람하면서 수확을 앞둔 10만 ㎡의 들판을 초토화시켰다.

농민들은 지사천과 논으로 연결된 용수로의 수문만 일찍 닫았더라도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15일 오전 부산 강서구 녹산동 장락마을 들판. 30여 명의 농민들이 누런 흙탕물을 뒤집어쓴 벼 이삭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밤새 100.5㎜(부산 가덕도 기준)의 폭우가 쏟아지면서 지사천 흙탕물이 수확을 앞둔 10만 ㎡의 논으로 흘러들었기 때문이다. 새벽부터 바가지를 들고 나오는 농민들도 있었지만 벼에 묻은 흙탕물을 씻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곳에서 벼 농사를 짓는 최학환(59) 씨는 "물이 빠지더라도 벼 줄기에 묻은 흙탕물 때문에 이삭이 마르고 여물지 않는다"면서 "작년에는 3200㎏(40가마)을 수확했는데 올해는 절반가량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지사천의 흙탕물이 동서 방향의 도로를 가로질러 논으로 흘러든 데 대해 농민들은 "명백한 인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락마을은 2006년까지 장마철이면 배수 펌프를 가동해 논에 가득한 물을 퍼냈었다.

그러나 지난해 5월 녹산~생곡 도로 확장공사 시공사인 D건설이 배수펌프 3대를 치우고 도로 밑으로 난 용수로에 배수 수문을 설치해 범람을 조절해왔다. 그런데 밤사이 내린 폭우로 지사천이 불어났는데도 용수로 수문을 닫지 않는 바람에 흙탕물이 저지대인 장락마을 논으로 유입된 것이다.

농민 강병식(60) 씨는 "새벽 5시30분부터 수차례 수문을 닫아라고 요구했지만 무시당했다"면서 "수문은 벼 이삭이 흙탕물에 모두 잠긴 오전 9시20분이 넘어서야 닫혔다"고 말했다. D건설은 수문을 닫아달라는 농민들의 요구를 받고서도 "오전 10시 녹산수문이 열리면 물이 금방 빠져 나간다"면서 늑장대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시농업기술센터 최웅기 농촌지도사는 "벼 잎에 묻은 흙이나 오물을 빨리 세척해 주지 않으면 수확량에 영향을 미치고 벼 잎이 죽는 도열병이나 곰팡이가 스는 잎집무늬마름병이 생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D건설 측은 이에 대해 "물이 범람한다는 연락을 받고 출동하는 과정에서 수문을 닫는 시간이 지연됐다"며 "정확한 피해 규모를 조사해 농민들과 협의를 하겠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