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의 위기관리시스템에 구멍이 뚫렸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에서 화물연대 파업까지 국민적 저항이 증폭되고 있지만 조기경보와 갈등해소를 조율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중앙통제장치)는 전혀 가동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와 시민단체에선 "참여정부가 '아마추어'란 비판을 받았다면 현 정권은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는 '태평 정부'"라고 비판했다.

화물연대의 파업만 하더라도 이미 한 달 전에 예고됐지만 정부는 속수무책이었다. 화물연대 조합원 6000여 명은 지난 5월 10일 부산역 광장에서 열린 '화물운송 노동자 결의대회'에서 "정부가 경유가 인하와 화물운송 운임에 대한 표준요율제(최저임금제)를 도입하지 않으면 6월 중순 파업에 돌입하겠다"고 경고했다. 정부에 한 달의 시간을 준 것이다. 화물연대는 또 지난달 29일 총파업을 재차 경고한 데 이어 30일에는 대산석유화학단지에서 운송거부 찬반투표를 실시했다. 이달 10일에는 현대차 카캐리어분회를 비롯한 대형 사업장에서 부분 파업이 현실로 나타났다. 수 차례 정부에 경고장을 전한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반응과 위기를 감지하는 경보는 느렸다. 파업을 사흘 앞둔 지난 10일에서야 표준운임제 도입 검토와 운송료 협상 지원을 약속했지만 화물연대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파업을 하루 앞둔 12일에는 뒤늦게 화주들을 불러 '운송료 인상'을 재촉했지만 역시 성과는 없었다. 운수산업노조 김종인 위원장은 "화물연대 파업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심각한 영향을 알기 때문에 파국을 막으려 노력했으나 정부는 아직도 심각성을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경실련 오태석 사무국장은 "참여정부는 시민·사회단체의 여론을 중요하게 들었지만 현 정부와는 소통이 안된다. 특히 강부자·고소영 내각은 서민들의 불만을 이해하지 못하고 태평성대를 누리는 듯이 시국을 인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촛불시위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광우병 논란이 일어날 가능성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 채 한미 정상회담 직전 쫓기듯이 미국과 쇠고기 협상을 타결했다. 촛불집회가 시작된 뒤에도 교사를 동원해 10대를 설득하면 시위를 진정시킬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촛불에 담긴 민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 이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20%대까지 추락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위기의 강도를 느끼지 못하고 '대증요법'에만 매달리는 듯하다. 쇠고기 추가협상 발표가 대표적 사례다. 경성대 안철현(정치외교학) 교수는 "국정을 이끌려면 정부의 위기관리나 조기경보 기능이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그러나 광우병 파동과 화물연대 파업에 나타난 정부의 대응과정을 보면 어느 것 하나 작동하지 않았다"며 "정책 입안능력까지 의심될 만큼 무능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