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진다는 세상 이치를 믿고 지난 25년간 버텨왔는데….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에게 미안하지."

경찰의 조작 사건으로 밝혀진 이른바 '신귀영 일가 간첩 사건' 당사자인 신귀영(71·부산 기장군) 씨. 신 씨는 아직도 15년3개월21일간의 억울한 옥살이에 대한 기억을 단 하루도 잊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옥살이와 출소 후 지난 10년간 국가를 상대로 벌여온 소리없는 외침, 그리고 간첩이란 누명을 쓰고 살아온 지난 25년간 가슴 속에 응어리진 사연을 한 올 한 올 풀어 놓기 시작했다.

1980년 2월 간첩혐의로 15년형을 선고받은 그는 원양어선 기관사로 일하던 1980년 2월 부산시경 대공분실로 연행돼 68일간 불법 구금 상태에서 고문과 함께 혹독한 조사를 받았다. 그해 5월 구속된 신귀영 씨는 재판에서 "고문에 의해 허위진술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신 씨와 사촌 서성칠(73·1989년 5월 복역 중 사망) 씨, 5촌 신춘석(69) 씨 등 3명은 간첩이란 누명을 뒤집어쓸 수밖에 없었다.

신 씨는 누명을 쓰고 감옥살이를 하게 된 것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가족이었다고 한다. 열살 난 큰딸과 여덟살 아들, 여섯살 막내딸 그리고 아내.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 통지서를 받아봤지만 입학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경찰에 잡혀가 구속된 그는 간첩 자식들이란 오명을 쓴 채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살아갈 가족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미어터졌다고 했다.

남편이 지난 25년 동안 짊어지고 온 짐을 벗게 됐다는 소식을 들은 부인 황욱희(63) 씨. 황 씨도 그동안의 힘든 삶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그녀의 가장 아픈 기억은 남편이 옥살이를 하던 어느 날 가게 앞길에 세워진 고급 승용차와 단란한 가족의 모습이었다. 바로 남편을 고문한 수사관과 그의 가족이었다고 한다. 더구나 남편을 고문한 경찰관이 모범경찰관으로 표창을 받는다는 소리를 듣고 '어떻게 세상이 이럴 수 있느냐'며 피눈물을 흘렸지만 허사였다.

신 씨는 "지금이라도 진실이 밝혀져 기쁘지만 너무 허무하다"며 "가족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재심을 통해 이번 사건이 제대로 밝혀지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