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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성녀 여사의 며느리인 오항선 할머니(맨 오른쪽)와 그 가족들. 오 할머니 왼쪽으로 첫째딸 권혜영, 장남 권혁우, 외증손자 조재용군, 며느리 이용순씨. 박수현기자 parksh@kookje.co.kr |
안중근 의사의 여동생 안성녀 여사의 며느리인 오항선(95·부산 남구 대연동)할머니도 여느 독립운동가 집안이 그러하듯 '가난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오항선 할머니의 시아버지인 권승복 선생은 군량미 조달과 비밀문서 전달의 임무를 수행한 독립운동가. 오 할머니가 첫 남편과 사별후 재혼한 권승복 선생의 아들 권헌(1910~1980년)도 1930~1940년대 인쇄소와 정미소를 운영하면서 독립군의 군량미를 조달했다.
오 할머니의 남동생 역시 만주에서 항일운동을 하다가 붙잡혀 자신이 지켜보는 가운데 감옥에서 총살당했고 아버지는 그 충격으로 자살했다. 독립운동을 인연으로 세 가문이 혼사로 묶인 것이다.
부귀 영화를 바라고 독립운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오 할머니 집안의 살림살이는 '팍팍'했다. '독립운동가'라는 자존심과 긍지는 가난을 해결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안성녀 여사의 손자인 권혁우(61)씨는 고등학교 중퇴 학력이다.
그가 가진 직업이라고는 1970년대 부산 남구 용당동 옛 세관 부지에 있던 합판 공장에서 보일러 일을 8년 하다가 80년대 초반 인도네시아에서 3년을 일 한 것이 전부. 이후 권씨는 건설 현장을 떠돌고 있다.
오 할머니의 집은 부산 대연동의 25평 빌라. 집 값 1억원 가운데 8000만원을 부산지방보훈청과 은행에서 대출받아 3년전 구입했다.
여기서 오 할머니와 권씨 내외, 권씨의 둘째 딸 등 4명이 살고 있다. 매월 대출금 이자로만 67만원 정도가 나간다. 여기에 이자를 갚기 위한 적금을 30만원씩 붓고 있어, 매달 100만원 가까운 돈이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권씨 집안이 정부에서 받는 돈은 보훈연금 140만원과 생활보조금 80만원 등 220만원. 대출 원금상환 및 이자와 20만~30만원씩 빠지는 공과금을 빼고 나면 항상 적자. 셋째 딸이 보태주는 50만원을 합쳐야 간신히 네 식구가 먹고 산다.
이런 형편에서 권씨가 자식에게 가지는 미안함은 크기만 했다. 장남 권순일씨와 2남 권순호씨가 사는 서울의 자취방은 5년 전 순호씨가 형과 같은 대학에 입학하면서 얻은 월세방. 방 1칸에 부엌이 딸린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20만원의 4평 자취방에서 안 의사 후예들이 어렵게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권씨는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셋째 아이를 장남과 일부러 같은 대학교에 보냈다"며 자식에 대한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비록 힘들게 살아왔지만 안중근 의사의 후예라는 자부심을 고이 간직한다는 자식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기운이 솟는다"며 물질적인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잃지 않은 자식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