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경쟁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으로 큰 도전에 직면한 한국 반도체 산업이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대규모 재정 지원을 바탕으로 전방위 ‘반도체 재건’에 나선 일본의 사례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 나왔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음. 연합뉴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는 14일 이런 내용의 ‘일본 반도체 산업정책 동향과 시사점’ 보고서를 발간했다.

코트라 관계자는 “이번 보고서는 공급망 재편, 기술 패권 경쟁, 경제안보 이슈가 부각되는 글로벌 환경 속에서 일본이 반도체 산업 쇠퇴를 극복하고 재도약을 추진하는 정책 흐름을 분석했다”며 “이를 통해 우리 정부와 기업에 필요한 시사점을 도출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코트라에 따르면 일본은 1990년대까지 세계 반도체 시장을 선도했지만 버블 경제 붕괴와 기술 전환 대응 부진 속에서 일본 기업들의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10% 미만으로 하락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2021년부터 대규모 보조금을 투입해 TSMC, 마이크론 등 주요 글로벌 반도체 기업을 유치하는 한편 키옥시아, 르네사스 등 자국 기업도 지원하며 자국 내 생산 기반을 빠르게 복원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울러 일본 정부와 8개 민간기업이 공동 출자한 기업 라피더스는 2027년까지 2nm(나노미터) 첨단 로직 반도체 양산을 목표로 하고 미국 IBM, 벨기에 IMEC 등과의 공동 연구도 진행 중이다.

보고서는 “일본이 생산 능력 회복뿐 아니라, 자국이 강점을 보유한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산업 역량을 이용해 글로벌 공급망에서 존재감을 높이고 이를 경제안보에 활용한다”고 평가했다.

또 “일본이 정부 펀드인 산업혁신투자기구(JIC)를 활용해 포토레지스트, 차세대 반도체 기판인 플립칩 볼그리드 어레이(FC-BGA) 등 핵심 소재 기업을 인수하면서 기술 유출을 사전에 차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보고서는 “일본의 정책 추진 사례를 통해 한국도 반도체 산업을 경제안보 핵심 전략 산업이자 ‘생존 전략’으로 인식하고, 정책적 지원과 기업·산업 생태계를 전략적으로 연계할 필요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투자 세액공제 중심인 단기 세제 혜택을 넘어서 보조금·대출·인프라 등 실효성 있는 중장기 재정 지원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기업 측면에서는 정부와의 공동 전략을 통해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역량 구축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산업 생태계 측면에서는 국적과 규모에 구애받지 않는 실용적 맞춤형 지원과 기능 중심 생태계 구축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지역 단위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과 함께 반도체 기능별 생태계 구축을 균형 있게 구성해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한-일 간 상호보완적 협력 가능성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강경성 코트라 사장은 “일본의 사례는 ‘반도체 산업을 국가의 명운이 직결된 전략산업’으로 인식하고 종합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점이 핵심”이라며 “우리 반도체 산업이 처한 구조적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의 강력한 지원과 기업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