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법원이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체코 당국 간 신규원전 건설사업 최종 계약에 제동을 걸면서 한국의 원전 수주를 둘러싼 ‘법률 리스크’가 재확산 조짐을 보인다.

정부는 애초 7일로 예정됐던 서명식만 무산된 것일뿐 계약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계약 체결을 앞두고 정부가 위험 요인 분석에 소홀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안덕근(오른쪽)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6일(현지시간) 체코 프라하 도착 직후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황주호 한수원 사장. 산업부 제공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수원에 따르면 체코 브르노 지방법원은 지난 6일(현지시간) “프랑스전력공사(EDF)의 행정소송 본안 판결이 나올 때까지 한수원과 발주사인 체코전력공사(CEZ) 자회사 간 최종 계약 서명을 중지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EDF는 지난해 7월 체코 정부가 자국 신규원전 건설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당시 한수원에 밀려 탈락한 프랑스 공기업이다. EDF가 ‘한수원 선정’에 반발해 체코 측에 제기한 소송과 관련해 현지 법원이 일단 프랑스 측에 유리한 판단을 한 것이다.

법원은 “계약이 체결되면 EDF가 법원에서 유리한 판결을 받아도 공공 계약을 따낼 기회를 잃게 된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계약 체결식이 열리기로 돼 있던 체코 프라하에 안덕근 산업부 장관과 황주호 한수원 사장이 포함된 범정부 대표단을 파견했지만 이들이 체코로 향하는 비행기에 있을 때 법원 결정이 나와 당혹스러운 상황에 처했다.

특히 대표단은 원전 계약 체결을 계기로 인프라·첨단산업 등과 관련해 양국이 전략적이고 포괄적인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경제협력 방안까지 논의할 계획이었다.

다만 정부는 최종 계약 무산된 것이 아니라 연기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 장관은 지난 6일(현지시간) 프라하에서 동행 기자단과 간담회를 갖고 “계약 연기가 불가피하게 됐지만 과도하게 지연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체코 정부도 엄청난 기회비용 때문에 지연되지 않기를 희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프랑스 측 반발에 따른 법률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채 ‘잠복’ 상태에서 지속돼 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정부가 계약 체결을 앞두고 리스크 분석에 소홀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하지만 안 장관은 “저희가 특별히 안일한 대응을 한 것은 아니다”며 “체코 정부 측에서 ‘그것(EDF의 행정소송을 체코 법원이 인용하는 것)이 되겠느냐’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현지 정부가 (한국 정부를 계약 체결식에) 초청해서 (우리도) 일정을 잡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장관에 따르면 CEZ 등 체코 당국은 자국 법원의 ‘계약 서명 중지’ 결정과 관련해 항소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가처분 결정에 대한 CEZ 등의 항소와 함께 EDF가 제기한 본안 소송이 ‘투 트랙’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