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부울경에 있는 그룹의 주요 사업장을 한단계 업그레이드해 국내 ‘첨단 부품소재 거점’으로 특화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이 비수도권 지역 산업 육성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삼성의 이번 투자 계획 발표는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오전 주재한 비상민생경제회의에서 수도권에 300조 원을 투자 유치해 시스템 반도체 중심의 메가 산단을 조성한다는 발표에 발맞춘 것으로 풀이된다. 시스템 반도체란 정보를 처리하는 CPU, GPU 등의 핵심 부품이다. 한국의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은 정보를 저장하는 메모리 반도체에는 강하지만 시스템 반도체 설계·제조에서는 미국 유럽 업체들에 뒤져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20년 삼성전기 부산사업장을 방문한 모습. 삼성전자 제공

초소형 MLCC를 손가락 위에 올려놓은 모습. 삼성전기 제공

삼성의 전자 부품 계열사인 삼성전기는 부산사업장에서 MLCC(적층 세라믹 콘덴서)용 핵심 소재 내재화를 위한 연구에 집중 투자한다고 15일 밝혔다. 부산사업장에서 생산하는 MLCC는 전자 회로가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일정하게 조절하고 부품 간 전자파 간섭을 막아주는 핵심 부품으로 ‘전자산업의 쌀’로 불린다. 삼성전기 부산사업장은 원래 고 이건희 회장이 삼성자동차 부품공장으로 설립할 정도로 ‘이건희의 꿈’이 서려 있는 사업장이다.

스마트폰 등의 제품이 얇아지고 초소형 MLCC 수요가 확대됨에 따라 기기 내 노이즈 제거와 고성능 IC에 대응하기 위한 초소형·고용량 MLCC 등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자동차의 전장화로 고온·고압 제품 수요도 증가 추세라는 게 삼성전기 판단이다.

삼성전기 부산사업장은 약 8만 평 규모로 약 4000명이 근무하는 부산 최대 고용 사업장이며 첨단 반도체 패키지 기판인 플립칩-볼그리드어레이(FC-BGA)를 생산한다. 이 기판은 생산능력 기준으로 국내 1위, 세계 3, 4위 수준이다. FC-BGA는 반도체와 메인보드를 연결하는 혈관 역할을 하는 부품이고 부산사업장에서는 패키지 기판에서 코어(기판의 뼈대 역할)를 제거해 얇지만 빠른 정보 전달을 할 수 있다. 삼성은 “일본 업체들이 글로벌 MLCC 시장의 60%를 장악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부산을 글로벌 MLCC 생산의 거점으로 끌어올림으로써 삼성과 부산의 ‘MLCC 글로벌 명가’ 도약이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2021년 문승욱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왼쪽)이 삼성SDI 울산사업장을 방문해 전영현 삼성SDI 당시 사장의 안내로 이차전지 생산 시설을 둘러보는 모습. 산업부 제공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해상구조물 모습. 삼성중공업 제공

삼성SDI는 울산에서 배터리 성능을 결정짓는 ‘양극활 물질’ 등 배터리 핵심 소재에 대한 연구를 지속 강화할 계획이다. 또한 글로벌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전기차용 부품 기술 개발을 위해 울산지역 국내 완성차 업계와 협력을 확대할 방침이다.

삼성SDI 울산사업장은 1970년 TV 브라운관 제조에서 출발해 2009년부터 전기차 및 ESS(에너지저장 장치) 배터리 양산거점으로 탈바꿈했다. 현재 반도체 제조공정 수준의 클린제조시설을 가동 중이며 대형 배터리의 안전 테스트가 가능한 첨단실험 시설을 갖고 있다. 삼성SDI는 울산의 전지산업 발전과 이차전지 글로벌 선도도시 도약에 기여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울산 전지산업 재도약 연합체’에 참여한 바 있다.

삼성중공업은 LNG 운반선 등 고부가 제품 중심으로 수주를 확대해 회사 수익성을 개선하는 한편 양질의 일자리 창출 등을 통해 경남 거제지역 활성화에도 기여하겠다고 이날 밝혔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는 125만 평 면적에 9000여 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1974년 설립 이후 초대형 선박, 드릴십, 해양플랜트 등 건조 중이다.

삼성은 이번 대규모 지역 투자 계획은 국내적으로는 지역 풀뿌리 기업과 산업 생태계의 경쟁력을 높이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지역 산업을 진흥함으로써 지역 균형 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삼성의 투자 계획은 지역과의 상생, 수도권과 비교한 지역 균형 발전 차원을 넘는다”며 “대한민국의 다양한 지역별 특화 산업의 ‘글로벌 생산 거점’ 도약을 통해 궁극적으로 제조강국 대한민국에 기여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고 평가했다. 삼성은 그동안 사회공헌 활동도 지속해 부울경에서 중소기업 330여 곳의 스마트 공장 구축(2016~2022년 부산 101개사, 울산 45개사, 경남 190개사)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