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그룹 자산매각 등 4조 마련
- 한전채 한도 확대 시장교란 우려
- 이마트·KT는 채권 발행 서둘러

- 2금융권 부동산PF대출 109조
- 정부 “올 정책금융 540조 공급”
- 리스크 확산 차단 전방위 대응

새해 최악의 경기 침체가 예상되면서 기업이 생존을 위한 유동성 확보에 사활을 걸었다. 정부와 당국도 부실의 전이를 막기 위한 전방위 대응에 돌입했다.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3고(고물가·고금리·고환율) 파도’를 극복하고 25년 전 대한민국을 나락에 빠뜨렸던 경제 위기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다.

4일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관계자가 달러를 살펴보고 있다. 우리나라 외환 보유액은 두 달 연속 증가해 지난달 말 기준 4231억6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전달 말(4161억 달러)보다 70억6000만 달러 증가했다. 연합뉴스

■기업들 현금 확보 총력전

기업들은 현금 확보에 총력전을 펴는 중이다. 특히 부산도시가스 사옥을 매각하는 등 SK그룹이 가장 적극적이다. 4일 재계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최근 SK그룹 각 계열사가 마련한 유동성만 4조2000억 원이 넘는다.

롯데그룹도 긴장한 분위기다. 롯데호텔은 보유 중인 롯데칠성음료 주식 27만3450주(2.72%)를 전량 매각했다. 롯데건설은 국내 은행 2곳에서 3500억 원을 차입했고, 롯데 계열사로부터 1조 원가량을 빌렸다. 현대백화점그룹도 현대홈쇼핑이 100% 보유 중이던 현대렌탈케어 지분 80%를 사모펀드 운용사인 시에라인베스트먼트에 매각했다.

코오롱그룹 계열사인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인천 공장 토지를 부동산 개발 업체에 550억 원에 팔았다. 한진그룹 계열사 칼(KAL)호텔네트워크는 제주KAL호텔을 950억 원에 매각한다.

기업들은 연초 회사채 발행도 서두른다. 이마트를 비롯해 KT 포스코 LG화학 등이 이달 중 공모 회사채 발행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채와 공사채의 발행 물량도 늘어날 수 있다. 한전채 발행액 한도를 공사의 자본금·적립금 합계의 최대 6배까지 늘리고, 한국가스공사 회사채 발행 한도도 5배로 확대하는 개정안이 각각 지난달 국회를 통과했다. ‘무위험 채권’으로 인식된 공사채가 대규모로 발행되면, 다른 회사채의 입지를 뺏는 ‘구축효과’가 나타날 우려도 있다.

■증권·저축은행 부동산 PF ‘뇌관’

새해 우리 경제의 최대 뇌관은 건설사 자금난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화로 이어져 금융사가 위기에 빠지는 악순환 가능성이다. 부동산 PF는 개발 사업의 기대 수익을 보고 담보 없이 사업비를 빌려주는 투자 기법이다. PF 대출을 내준 금융사는 사업이 좌초하면 뭉칫돈을 떼이게 돼 건전성이 급격하게 악화된다.

주택 경기 침체로 건설사 자금난은 심화되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지난해 롯데건설과 태영건설의 신용등급을 각각 ‘A+ 안정적’에서 ‘A+ 부정적’으로, ‘A 안정적’에서 ‘A 부정적’으로 내렸다. 한국신용평가사도 지난달 한신공영과 동부건설 전망을 ‘BBB 긍정적’에서 ‘BBB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해 초 산업 현장 사고 이슈가 있었던 HDC현대산업개발의 신용등급을 ‘A+’에서 ‘A’로 낮추고 부정적 전망을 검토 중이다.

건설사 위기가 확산하는 가운데 100조 원을 넘어선 저축은행 증권사 등 2금융권의 부동산 PF 대출이 금융 시장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경고음도 커진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3분기 기준 금융권의 PF 대출 규모가 140조6000억 원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은행 대출이 30조8000억 원이고, 보험 증권 저축은행 등 2금융권이 빌려준 금액이 3배가 넘는 109조8000억 원에 달했다. 2금융권의 PF 대출 규모가 100조 원을 넘긴 것은 처음이다. 한은 관계자는 “은행들이 비교적 안전한 아파트 사업 PF에 대출하는 것과 달리 2금융권은 주상복합이나 상업용 건물에 돈을 빌려준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PF 대출 중 아파트 사업장 비율이 은행은 66.6%에 달하지만 증권사는 21.6%, 저축은행은 15.1%에 그친다. 이미 2금융권에서는 PF 대출 연체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PF 대출의 부실채권(3개월 이상 연체) 비율은 증권사 11.4%, 저축은행 2.4%, 여신전문회사(캐피털사) 0.9%, 보험사 0.5%였다. 은행권 PF 대출의 부실채권 비율이 0.1%에 불과한 것과 비교하면 이미 적신호가 켜진 셈이다.

■정부 부실 차단 총력전

정부는 부실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전방위 대응에 돌입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유동성 위기를 겪는 건설업계 지원을 위해 올해 총 15조 원 규모의 보증을 공급할 계획이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도 지난 3일부터 중소기업 정책자금 온라인 상담 신청·접수를 시작했다. 정책자금 지원 규모는 5조 원이다. 부산은 오는 6일 접수한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날 열린 ‘범금융 신년 인사회’에서 “올해 역대 최대인 540조 원 규모의 정책금융 공급 등을 통해 위기 극복을 위한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동산 PF 부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부동산 금융 문제는 금융권 스스로가 주도적으로 해결해 나간다는 자세로 부동산발 금융 리스크가 확산하지 않도록 힘을 모아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