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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프런티어 해양인 열전] <17> 남해안별신굿 예능보유자 정영만

대를 이어 바다 섬긴 무속업, 무형문화재로 빛나다

  • 김정하 한국해양대 글로벌해양인문학부 교수
  •  |   입력 : 2022-08-29 18:59:24
  •  |   본지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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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통영출생, 집안이 무업 종사
- 풍어 빌고 개인의 안녕 빌어주며
- 충무공 향사 제례음악도 지키는
- 품 넓은 남해안별신굿 세습무들

- 새마을운동으로 무속 탄압 극심
- “너 아니면 남해안별신굿 끝난다”
- 대모 정모연 선생 설득에 맘 굳혀

- 중병으로 식물인간 상태 되는 등
- 계속된 고난 기적처럼 이겨내고
- 별신굿 전승 위한 발판 만들어

바다를 섬겨왔다. 어선에 풍어기를 세우고 어선 ‘감실’에는 배서낭을 모셨다. ‘개를 미기는(용왕에게 바치는)’ 개인별 용왕굿 말고도 어촌의 마을 사람이 합심해 2, 3년에 한 번씩 별신굿(‘배선굿’, ‘배신굿’, ‘벨손’)을 개최했다. 별신굿은 바다에서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고 망자를 위로하는 굿판의 노래와 춤에 온 마을이 ‘신(神)이 나서’ 들썩이는 축제였다. 굿을 주재하는 무당은 당대의 문화계 리더이자 시쳇말로 ‘셀럽(celeb)’이었다.

현실은 사뭇 다르다. “요즘은 굿을 신앙 의례보다 전통 기예 정도로 여긴다. 그것도 나쁘진 않지만 현장 굿이 아쉬운 게 사실이다.” 경남 통영시 통영예능전수관에서 만난 정영만(66) 남해안별신굿 예능 보유자의 토로였다. 그 말처럼 남해안에서 별신굿이 뜸해진 지 오래다. 2000년대 들어와선 거제시, 통영시에서도 죽림마을과 죽도마을이 고작이다. 올해 추석 다음 날 거제시 양화마을에서 열리는 굿판은 무려 33년 만이다. 35년 전 남해안별신굿을 물려받은 11대 ‘대사산이’(굿 총괄자)의 심경이 착잡할 만했다.

■무업(巫業) 가계

남해안별신굿 예능보유자 정영만 선생의 최근 모습. 남해안별신굿보존회제공
정영만은 경남 통영시 산양면에서 정덕재와 박옥기의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증조부와 증조모에 외가 어른들 상당수가 무업(巫業)에 종사하니 정해진 운명이었다. 정영만은 세 살부터 조부모를 따라 예인, 악사, 무업인의 조합 격인 ‘신청’을 드나들며 집안 어른들로부터 굿의 사설과 춤, 연주를 배웠다. 학습 과정은 어렵고 힘들었지만 그는 차차 소년 악사로 이름이 났다. 여섯 살엔 지화(紙花) 만드는 법을 배웠고 일곱 살 되던 해에는 피리로 ‘거상악’(연회 음악)을 배워 충무공 향사에 참여했다. 도처에서 열리는 굿판에 악사로 참여하느라 학교 수업일수 채우기가 어려웠다. 대신 누구나 배를 곯던 시절 그의 주변은 여유롭고 풍족했다.

■풍어와 안녕 빌며 집단과 개인·삶과 죽음 아울러

남해안별신굿 세습무들은 무조(巫祖) 바리공주의 업을 이었다는 자부심이 크다. 이훈상 동아대 명예교수에 의하면 그들은 충렬사 충무공 향사 제례 음악을 지키고 오늘날의 한산대첩축제 초석을 다진 정악연구회를 이끌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굿하는 마을에 가면 동태부(洞胎父)를 비롯한 당산 할매·할배와 제석, 골멕이 신령까지 섬겼다. 특히 어촌에서 모시는 최영 장군과 서릉 장군, 적덕·적귀 등을 ‘장군’으로 떠받들며 어민의 풍어와 안녕을 빌었다. 마을 중요 기록문서를 담은 ‘지동궤’를 굿판에 옮겨놓고 굿을 해 마을 정체성을 확인하며 마을 사람의 단합을 유도했다.

별신굿은 마을 단위의 굿이지만 마을 사람 개개인을 품어주는 포용력도 발휘했다. ‘오귀새남굿’으로 망자의 죽음을 달래주고 천도를 빌어주는가 하면 ‘도신굿’으로 집집마다 조상을 위해준 다음 ‘거리굿’으로 잡귀, 잡신까지 넉넉하게 풀어먹였다. “집단과 개인, 삶과 죽음을 아우르는 별신굿의 ‘큰 굿 원리’는 개별 가정의 망자와 조상을 위한 굿에도 병용된다. 그게 남해안별신굿의 미덕이다.” 별신굿을 비롯한 ‘남해안 굿’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김형근 전북대 무형유산정보연구소 연구교수의 설명이다.

■새마을운동 ‘미신 타파’로 된서리

어촌에서 남해안별신굿이 열리고 있다. 남해안별신굿보존회 제공
1970년 ‘미신 타파’ 슬로건을 내걸고 시작한 새마을운동으로 무업은 된서리를 맞았다. 게다가 기독교도들의 비난까지 가세하면서 무업인의 집으로 날아드는 돌덩이에 지붕이 뚫리고 세간이 부서졌다. 춤사위를 연습하던 정영만의 다리는 굿을 싫어하던 부친이 내던진 도끼에 상처를 입었다. 또래들의 놀림과 핍박도 견디기 어려웠다. 마침내 집을 나선 정영만은 낮에는 택시 조수와 기사, 선반공, 선원으로 일하고 밤이면 요릿집에 나가 피리를 불었다. 신산스러운 세월을 16년 넘게 보내는 동안 악사였던 큰외삼촌 박복개 등 집안 어른들이 줄줄이 타계했다.

■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로

나이 서른을 앞두고 처자식까지 딸린 정영만을 고모할머니이자 사설, 소리, 춤 모두 탁월했던 ‘대모’(큰무당) 정모연 선생이 끈질기게 설득했다. “우리 굿하자. 나라 지정 문화재가 되면 돈도 주고 명예도 회복시켜준단다. 지금 네가 이어받지 않으면 남해안별신굿은 사라진다.” 정영만은 고뇌하고 번민했다. 세인들의 서럽지만 애써 외운 사설과 귓전에 남은 가락, 몸에 밴 춤이 너무도 아까웠다. 집안에 300년 넘도록 전해지는 ‘큰머리’(화관)와 부채 등 무구(巫具)가 사라질 것도 마음에 걸렸다. 그는 어렵사리 결정을 내렸고 남해안별신굿은 1987년 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82-라호가 됐다. 그의 마음에 와닿은 왕고모의 말이 있었다. “한이 있으면 피리 소리로 풀어내라.” 정영만 선생은 한을 삭힌 연주와 장단, 정제된 사설, 부드럽고 섬세한 춤으로 남의 삶과 영혼을 달래기 시작했다.

■식물인간 극복… 전승 위해 공연

정영만 선생의 공연 모습.
하지만 고난은 끝난 게 아니었다. 문화재 지정 이듬해엔 정모연 선생이 “절대 굿을 놓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떴고 2년 후엔 예능보유자 고주옥 선생마저 타계했다. 남해안별신굿의 대가 끊어졌다는 소문이 돌자 문화재 지정 해제 심사가 벌어졌다. 다시 심사자들 앞에 선 정영만 선생은 자신이 가르친 전수자들과 혼신의 힘을 기울여 별신굿이 살아 있음을 입증해냈다. 1996년 정식으로 예능보유자가 된 그는 ‘신청’을 복원하고 남해안별신굿 외에 영남대풍류, 통영삼현육각 등을 보급하며 활동 영역을 넓혔다.

그런데 3년 후 정 선생은 난데없는 중증근무력증 판정을 받고 식물인간 상태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의사마저 치료를 포기한 상황에서 그는 퇴원한 뒤 병굿을 올리던 자리에서 기적처럼 힘을 되찾았다. 그는 “조상님이 돌보셨다”고 믿지만 그것은 옛이야기 속 심청이처럼 바다로부터 재생(再生)의 힘을 받은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다시 일어선 정 선생은 남해안별신굿 보존회를 이끌어 프랑스와 일본으로 원정 공연에 나섰고 내로라하는 가인(歌人)들이 초청된 ‘명인명무전’ 무대에 섰다. 동아대 학술조사팀과 함께 지동궤의 발굴과 조사에 참여했고 경상대 무용학과와 단국대 음악대학원 등에서 특강도 했다. 경남민속예술제에서 통영삼현육각으로 최우수상을 받았고 핀란드 등에서 ‘북유럽 아시아 페스티벌’과 인도네시아에서 ‘굿 보러 가자’ 공연에 참가했다. 그러는 사이 젊은이 수십 명이 그에게 춤과 소리를 배워 대학에 진학하거나 대학에서 국악, 무용을 전공한 뒤 별신굿을 배우겠다고 그를 찾아왔다. 마침내 그는 2007년 통영향토문화상, 2021년 통영문화상을 받았으며 통영시 이순신공원 내에 보금자리도 마련했다.

아쉬운 건 역시 어촌에 나가 어민들과 눈을 맞추며 그들의 삶을 보듬어주며 바다 신과 영혼을 위로하는 별신굿이다. 그래야 전수자들의 기량도 가다듬고 보존회 살림도 꾸려갈 수 있다. 이에 정영만 선생은 문화재청 지원으로 굿을 하고 마을에선 상을 차리는 협업으로 굿판을 열었다. 과연 이를 계기로 마을 사람들이 소통하고 단합하는 일도 벌어졌다. 그 밖에도 별신굿을 문화로 소개해 전승 실마리를 찾고자 2020년 아동극 ‘바리가 들려주는 별신굿 이야기’와 올해 ‘통제영 생생문화제-GOOD이로구나’를 공연하기도 했다. 정은주 통영삼현육각보존회 대표는 ‘길 안(아는) 어른’이라 불리던 세습무가 마을 사람들에게 천문을 일러주고 가내 대소사를 상담해주며 산파 역할도 하던 ‘영등’을 되살릴 계획이다.

어촌은 황폐해지고 배 타려는 사람은 줄어든다. 마을 사람들이 별신굿 굿판에 둘러앉아 풍어와 안전을 기원하며 죽음도 이겨낼 용기와 지혜를 나누던 기원과 위로를 새삼 떠올려 본다.


▶도움 말씀 주신 분 = 이훈상 동아대 명예교수, 김형근 전북대 무형유산정보연구소 연구교수, 전영근 화가·전혁림미술관 관장, 정은주 통영삼현육각보존회 대표

※ 공동 기획=국제신문·한국해양수산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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