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창기 당대 산물 집대성 주력
- 1867년 ‘노동’ 주제 처음 등장
- 1933년 이후 미래주의로 전환
- 환경문제·4차혁명 등 공통과제
- 해결책 모색하는 플랫폼 진화
- 부산엑스포, 시대정신 구현할
- 공간 구성과 콘텐츠 창출 숙제
엑스포는 늘 앞서가는 시대정신으로 세계를 이끌어왔다. 그 시발점은 오늘날 국제질서의 근간이 된 ‘자유무역(free trade)’과 ‘세계화(globalization)’다. 영국이 1851년 첫 세계박람회를 개최하는 데 넘어야 했던 가장 큰 장벽은 다름 아닌 국제화였다. 영국은 온 나라가 참여하는 대규모 박람회 개최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당대 최고인 자국 기술 유출을 우려해 ‘국제’ 행사를 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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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엑스포의 효시인 1851년 런던박람회가 열린 수정궁 내부. |
■‘자유무역’ ‘세계화’ 깃발
실제로 세계박람회 태동 분위기는 프랑스에서 먼저 무르익었다. 사통팔달 교통이 발달한 파리에선 18세기 이후 농산물, 공예품 등 각종 상품 전시회가 자주 열렸다. 이들 행사는 점차 국경을 넘나드는 교역의 마당이 됐다. 국제 박람회를 열자는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왔고, 훗날 황제로 등극한 나폴레옹 3세가 개최 의지를 표명했다. 그러나 세계박람회 창시 공적은 영국에 돌아갔다. 국제 정세에 밝았던 한 지식인이 물꼬를 텄다. 자유무역 신봉자였던 영국 공공기록물보관소 관리관 헨리 콜은 상품교역 제한을 철폐해야 인류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열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온 나라가 참여하는 세계박람회야말로 그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라는 신념을 갖게 됐다.
프랑스의 박람회 추진 움직임에 주목한 그는 빅토리아 여왕의 부군 앨버트 공을 찾아가 영국이 박람회를 선점해 세계 무역·경제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의 주장에 공감한 앨버트 공은 당시로선 넘기 힘든 벽이던 국제 박람회 실현의 견인차가 됐다. 앨버트 공은 우려와 저항을 물리치고 세계를 놀라게 한 대박람회를 성사시켰다.
그는 런던박람회 개회사에서 “박람회는 인간활동의 전 영역을 진보시키고 지구상 모든 나라의 평화와 유대를 강화하게 될 것”이라고 천명했다. 진보와 평화와 유대, 이들 키워드는 엑스포 역사를 관통하는 정신적 지주로 남았다. 엑스포는 교류·협력 정신을 바탕에 둔 문명의 결집체이자 기술·정보 소통의 장, 인터넷이 나오기 한 세기 전부터 세계를 연결한 산업·문화 네트워크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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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하노버엑스포 상징 조형물. 21세기 엑스포는 인류 공통과제를 논의하는 장으로 기능과 성격이 확장됐다. |
■백과사전에서 심화 주제로
초기 세계박람회는 특정한 주제 없이 당대 산물을 집대성하는 데 주력했다. ‘문명의 백과사전’이란 표현에 걸맞았다. 세계박람회에 주제가 처음 등장한 것은 1867년 파리박람회였다. 당시 주제는 프랑스의 철학적 사유가 담긴 ‘노동의 역사’였다. 인간의 모든 생산활동을 대변하는 ‘전 인류적’ 박람회를 표방한 것이다. 주제는 박람회장 중앙 정원에 파노라마 형태로 구현됐다. 석기시대부터 19세기까지 노동의 형태와 생산물의 역사를 펼쳐 보인 사상 첫 주제 기획 전시였다.
프랑스는 거대한 기계물산 전시장이던 세계박람회를 첨단산업과 예술, 오락을 망라한 종합 이벤트로 격상시켰다. 세계박람회는 이후에도 산업생산물과 신개발품 소개가 주류를 이뤘다. 주제보다 미국독립 100주년, 프랑스혁명 100주년, 미대륙 발견 400주년, 파나마운하 개통 같은 역사적 사건을 계기로 삼는 방식이 많았다.
주제의식이 본격화한 것은 1933년 시카고박람회였다. 시카고는 40년 만에 다시 세계박람회를 열면서 ‘한 세기의 진보’를 주제로 설정했다. 도시 성립 이래 100년간 눈부신 과학기술 발전을 ‘극적으로 연출’해 과학을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게 했다. 명료한 주제를 제시하고 전시 내용과 방식을 일치시킨 ‘테마 박람회’ 개념은 향후 엑스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후 엑스포의 흐름은 미래주의로 기울었다. 1939년 뉴욕박람회가 대표적인 예다. ‘지상 최대의 쇼’로 불린 뉴욕박람회는 ‘미래세계 건설’을 주제로 내걸고 100년 후 세계를 내다봤다. 이전 박람회가 과거의 성취를 모았다면 뉴욕박람회는 동시대와 미래 문명의 실체에 초점을 맞췄다.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으로 오랜 침체기를 보낸 엑스포는 1958년 브뤼셀과 1967년 몬트리올에서 휴머니즘을 외쳤다. 고도로 발달한 과학기술이 인류에게 총부리를 겨눴다는 반성에서 세계박람회 초심인 평화정신을 되새겼다. 브뤼셀박람회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상징하는 조형물 ‘아토미움’을 세웠고, 몬트리올박람회는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가 제시한 인간성 회복과 공동체 의식이 기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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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가 처음 등장한 1867년 파리박람회 전경. |
■인간·기술·자연 패러다임 대전환
엑스포는 개최지가 다변화하면서 문화교류 마당이자 개최국 브랜드가치를 높이는 이벤트로 성격이 확장됐다. 특히 2000년 하노버엑스포를 기점으로 환경문제와 4차 산업혁명 등 인류 공통과제를 논의하고 해결책을 모색해나가는 플랫폼이 됐다. ‘인류-자연-기술-떠오르는 새 세상’이 주제였던 하노버엑스포 이후 월드엑스포 주제를 보면 ▷2005년 아이치엑스포 ‘자연의 예지’ ▷2010년 상하이엑스포 ‘더 나은 도시-더 나은 삶’ ▷2015년 밀라노엑스포 ‘지구에 식량과 생명 에너지를’ ▷2020년 두바이엑스포 ‘마음의 연결, 미래 창조’ ▷2025년 오사카·간사이엑스포 ‘우리의 삶을 위한 미래사회 설계’ 등이다.
부산이 개최 추진 중인 2030년 엑스포 주제는 ‘대전환’이 키워드다. 팬데믹, 기후변화, 기술·자본 양극화, 인구 고령화, 생물다양성 손실 같은 인류가 직면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간과 자연과 기술 상호관계에 점진적 변화가 아닌 근본적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다. 이런 인식에서 ‘세계의 대전환,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항해’라는 주제가 도출됐다. 지구적 현안 해결의 길은 패러다임 전환에 있음을 제안하면서, 뒷부분에 항구도시 특성을 살려 더 나은 미래로의 ‘항해’란 표현을 담았다.
대전환은 위기 극복을 위한 글로벌 거버넌스 변환, 산업질서 재편, 모든 분야의 기반 변화를 포괄한다. 이를 통해 구현할 미래상은 개인 역량과 글로벌 연대가 강화되고, 환경·물리·세대적 한계를 넘어 전 지구적 균형을 이루는 협력과 조화, 지속가능한 공존의 삶이다.
21세기 엑스포는 포괄적 주제, 하위 세부적 부제에 맞춰 전시영역을 설정하는 추세다. 지난달 막을 내린 2020년 두바이엑스포가 바로 그랬다. 기회, 이동성, 지속가능성 등 3개 부제 키워드에 따라 전시구역을 배치했다. 2025년 오사카·간사이엑스포는 탈중앙 분산화라는 미래사회 콘셉트를 반영한 무정형 전시관 배치를 계획 중이다.
부산엑스포도 부제를 통해 ‘대전환’이란 포괄적 주제를 구체화해 나가게 된다. 부제는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구조에 맞춰 자연(Planet) 기술(Prosperity) 인간(People) 등 ‘3P축’으로 구성돼 있다. 대전환의 시대정신을 얼마나 창의적인 공간 구성과 소구력 높은 전시 콘텐츠 창출로 구현하냐가 숙제다.
※공동기획=국제신문·부산은행·㈔2030부산월드엑스포 범시민유치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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