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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프런티어 해양인 열전] <7> 한국조선업계 레전드 장창근

300m 독에서 325m 컨선 만든 역발상…한국조선의 신화

  • 김정하 한국해양대 글로벌해양인문학부 교수
  •  |   입력 : 2022-04-11 19:51:22
  •  |   본지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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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동 부산항 바라보며 자라
- 대학 전공도 조선공학과 택해
- 1980년 조선업 불황기에 첫발

- 상식 깬 세계 최초의 ‘댐 공법’
- 업계 첨단기술 개발에 영감 줘
- 조선4사 생산관리위 만들기도
- 수빅조선소 생산총괄에도 온힘

- 60세 넘어 아시아조선소 인수
- 친환경선박 건조로 제 2인생

선사시대로부터 신의 영역인 바다를 무대로 한국 조선업은 현대판 신화를 써왔다. 1960년까지도 침몰된 배를 인양해 쓰던 나라가 1974년 대형 유조선을 만들고 1970년대 말에는 세계 2위의 조선 대국이 됐다. 다시 30여 년이 흐른 2006년엔 세계 조선회사 랭킹 1위부터 7위까지 한국 업체가 싹쓸이했다. 그런데도 경남 거제시 아시아조선소 장창근(66) 사장은 ‘신화의 주역’이란 호칭을 극구 사양했다. “배를 모으는(짓는) 일은 협력의 결과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도 자신을 주인공으로 삼았던 KBS 다큐멘터리 제목이 ‘신화창조의 비밀’이었음은 부인하지 않았다.
경남 거제시 아시아조선소 작업 현장에서 장창근 사장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장 사장은 지난해 이 조선소를 인수했다. 김정하 교수 제공
비밀은 조선업계의 상식을 깬 공법이었다. 독(dock) 길이가 300m에 불과한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가 2004년 길이 325m의 8100TEU(1TEU는 6m짜리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을 만들었다. 이를 위해 생산기획과 생산기술을 담당한 장창근 상무를 비롯해 사원 전체가 연구와 테스트에 6개월간 불면의 밤을 보냈다. 그러고도 대형 블록을 해상에서 탑재한 뒤 고무 패킹을 부착해 수중용접을 하는 순간에는 모두 가슴을 졸였다. 그렇게 성공을 거둔 ‘댐(Dam) 공법’은 앞서 창안한 ‘대형선행탑재공법(GPE)’과 더불어 세계 최초를 기록했고 뒤이어 다른 조선업체의 ‘스키드 런칭 시스템’과 ‘메가블록 공법’ 개발에 영감을 주었다.

■ 대우조선공업→대한조선공사로

2008년 8월 30일 한진중공업 필리핀 수빅조선소에서 4300TEU급 컨테이너선을 건조한 뒤 장창근 생산본부장이 현장 근로자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장창근 제공
장창근은 부산시 동구 수정동에서 건축업을 하는 장잠득과 박귀덕의 5남 중 3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부산항을 드나드는 배들을 바라보며 자란 그는 대학에 갈 때 당연한 것처럼 부산대 조선공학과를 택했다. 어린 시절엔 골목대장이었고 대학에서는 학과 총대를 맡아 ‘사람 모으기’를 즐기던 그는 ‘배를 모은다’고 표현하는 것부터 마음에 들었다. 1980년 조선업 불황기에 대학을 졸업한 장창근이 첫발을 디딘 직장은 거제도 옥포만의 대우조선공업이었다. 온통 진흙밭이었던 현장은 한편에서 배를 짓고 다른 편에선 독을 만드느라 어수선했지만 임직원의 의욕만은 차고 넘쳤다. 이후 결혼과 함께 ‘대한민국 조선 1번지’라 불리는 부산 영도구 대한조선공사로 직장을 옮겨 꿈을 키워갔다.

■조선4사 생산관리위 꾸려 정보 교류

2011년 5월 20일 필리핀 수빅조선소에서 건조한 175K 벌크선 명명식에서 첫 기적을 울리는 장창근 생산본부장. 장창근 제공
드디어 1987년 장창근을 비롯한 현대중공업의 장정호, 삼성중공업의 김춘길, 대우조선공업의 소준기 등 실무자들이 모여 의기투합했다. 그들은 “한국조선업을 살려보자”며 ‘조선 4사 생산관리위원회’를 만들어 분기별 모임을 갖기로 했다. 먼저 생산성 파악에 절대적인 환산 총톤수(CGT) 통계를 작성하기로 하고 각 회사의 선종(船種)과 시수(時數·근로자 1인이 8시간 근무하는 단위) 등 자료를 수집했다. 내친김에 서로의 회사를 방문해 1박 2일을 함께 보내며 허심탄회하게 공법과 공정을 논의했고 주말에는 부부동반으로 야유회도 갔다. 차차 그들의 취지에 공감한 임원들도 모임을 갖기 시작하고 조선공업협회가 동참했으며 ‘공법위원회’, ‘예산관리위원회’ 등 유사 모임이 속출한 데다 일본 조선공업협회와 국제 교류도 성사됐다. 그로부터 불과 6년이 지나 조선업이 활황기를 맞이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회사마다 각자의 정보를 감추기 시작한 점을 감안하면 실로 놀라운 만남이었다.

■ 배 공정순서 준수 철칙

이후 장창근 과장이 생산본부장에까지 오른 과정은 기록에 남을 신조선 건조와 함께한 드라마였다. 1995년 동양 최초의 멤브레인형 LNG선 건조는 그 하나의 예에 불과했다. 어떤 배를 짓든 ‘공정순서 준수’는 그의 철칙이었다. 일찍이 1983년 다목적화물선의 하자로 인도가 거부되면서 대한조선공사가 끝내 문을 닫는 걸 지켜봐서다. 배 한 척마다 8000개가 넘는 조각을 모으고 100여 개의 협력업체로부터 납품을 받는 공정에 그는 털끝만큼의 착오도 용납하지 않았다. 한편으로 현장에서의 ‘감(感)’을 특히 중요시하던 그는 ‘명장(名匠)’ 반열에 오른 직장, 기장을 “조선의 원동력”이라 부르며 깍듯이 예우했다. 그들이야말로 작업 진행뿐만 아니라 때로 회사의 명운이 걸린 공정 개선과 신기술 개발에 필수적인 ‘감’을 지니고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한진重 수박조선소 필리핀 진출

2000년대에 들어서자 세계적 선박 대형화 추세에 맞춰 한국 조선업계는 해외로 눈을 돌렸고 한진중공업도 2006년 필리핀에 진출했다. 그곳 수빅조선소의 조직과 인력 등 사업계획 일체를 떠맡은 장창근 상무는 필생의 도전에 나섰다. 8만 평에 불과한 영도조선소의 한계를 일거에 뛰어넘은 100만 평 부지에 초대형 독 2개, 골리앗크레인 4기, 4㎞의 안벽과 1㎞의 공장을 펼쳐 놓았다. 그중 길이 550m에 컨테이너선 6척의 동시 건조가 가능한 제6 독은 세계 최대 크기였다. 그와 함께 훈련소 10동을 지어 현지 기술자 1만8000명을 양성하고 외국과 국내로부터의 자재 조달 루트도 마련했다.

이어 2008년 가족과 떨어져 수빅조선소로 파견된 장창근 상무는 생산 총괄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조선소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주야 2교대 근무를 지휘하느라 매일 밤 두 시간씩 쪽잠을 자면서 현장을 순찰하고 작업을 독려했다. 필리핀 근로자의 의욕을 북돋기 위해 농구 경기와 포상 등 온갖 방안도 마련했다. 그렇게 4년 반을 이끈 수빅조선소는 그가 전무로 승진하며 본사로 복귀한 직후 ‘세계 10대 조선소’에 올랐다. 그러나 다시 해운시장에 불황이 닥쳐오고 수주가 악화하면서 구조조정에 이은 우수근로자 이탈과 품질 저하, 납기 지연 등 연쇄반응이 잇따랐다.

■덤핑 경쟁의 덫에서 벗어나야

조효제 한국해양대 교수는 그간 한국 조선업이 거둔 성과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비판과 제언을 덧붙였다. “한국조선업은 외국이 상상도 못한 기술로 발전을 이룩해왔다. 하지만 한국 조선회사들의 과잉 공급과 일부 회사의 가격 덤핑은 이제 지양돼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로 인한 최대 피해자가 바로 한국 조선회사 자신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격랑 속에서 선박생산에 매진한 장창근 사장의 일대기는 한계와 극복, 다시 성공과 좌절로 이어진 반전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결과가 좋지 않다고 하여 그가 쌓은 성과의 의미까지 퇴색되는 건 아닐 테다. “결과는 아쉽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는 장 사장의 소회와 “조선업 종사자의 피와 땀이 헛되지 않도록 정부가 과당경쟁 통제와 선수금환급보증(RG)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제언의 울림이 큰 까닭이다.

한국 조선업이 다시 세계를 제패하려면 또 다른 신화가 필요할지 모른다. 미국의 저명한 비교신화학자 죠셉 캠벨은 신화 속 영웅의 부활을 이렇게 설명했다. “길은 없다. 너 자신을 통해 나아가라.” 조진만 전 부산대학교 연구교수도 역시 그렇게 조언했다. “한국조선업은 LNG선과 컨테이너선 분야에서 기적을 일으켜왔다. 그렇다면 장래의 가능성 역시 지금까지 잘해온 그 분야에서 찾아야 한다.”

■아시아조선소 인수·경영자로

장창근 사장은 이순(耳順)을 넘긴 나이에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했던 거제시로 돌아왔다. 그리곤 2021년 기술평가우수기업 인증 등으로 강소(强小)기업 기반을 갖춘 아시아조선소를 인수했다. 특수선을 지어본 경험이 풍부한 그는 중소형 상선을 포함한 첨단 선박과 친환경선박 건조를 목표로 정했다. 그 구상은 “한국조선업은 ‘초(超)격차 기술’로 미래를 열어야 한다”는 조효제 교수의 주문과 일치한다. 그렇게 한국조선업계 레전드의 ‘제2의 조선 인생’이 시작됐다.

▶도움 말씀 주신 분 = 조효제 한국해양대 교수, 조진만 전 부산대 연구교수, 김춘길 전 삼성중공업 팀장, 김순태 전 한진중공업 상무

※ 공동 기획=국제신문·한국해양수산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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