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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프런티어 해양인 열전] <4> ‘깡깡이 아지매’ 강애순 씨

깡깡이질 40년 어머니의 삶이자 조선강국 태동의 역사

  • 김정하 한국해양대 글로벌해양인문학부 교수
  •  |   입력 : 2022-02-28 19:59:01
  •  |   본지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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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대부터 일터 나가 생계 책임
- 뱃전 매달려 위험천만한 망치질
- 능력 인정받으며 세 딸 키워내
- 고단했지만 보람·자부심 남달라

- 영도 어머니들이 쌓아온 세월
- 그 진정성 담아 예술마을 조성
- “후손들도 우릴 기억해 주기를”

세칭 ‘깡깡이마을’ - 부산광역시 영도구 대평동, 쇳내 나는 조선소와 부품상, 공구점이 밀집한 거리는 지금 ‘깡깡이예술마을’이라 불리는 산업관광의 ‘핫 플레이스(hot place)’다. 그렇게 마을을 변모시킨 도시재생사업의 원천이 ‘깡깡이아지매’의 삶이다. ‘청락(靑落)’이라고도 하는 ‘깡깡이’는 오래된 단어다. 개항 이후 일제강점기에 영도에는 일본인의 어업전진기지와 조선소가 속속 들어섰다. 그러자 피폐해진 전국 농어촌에 “부산에 가서 깡깡이질이나 하여보세”란 한탄이 울려 퍼졌다. 다시 1970년대, 원양어업 붐으로 조선소들이 들어서자 ‘깡깡이아지매’들 망치소리도 함께 되살아났다. 홀몸이거나 무작정 도시로 나온 젊은 여성에게 그만한 일거리도 드물었다. 오늘날 세계 굴지 조선 강국의 전사(前史), 혹은 태동기 모습들이다.
디딤틀에 걸터앉아 망치로 녹을 떨어내는 ‘깡깡이’ 일을 하고 있는 ‘깡깡이 아지매’ 모습. 국제신문 DB
■ 일찌감치 ‘본공(本工)’이 되다

근래 이 마을은 예술을 통한 도시재생의 성공모델이 되었다. 2015년부터 시작된 ‘깡깡이예술마을 조성사업’으로 마을 외관부터 달라졌다. 새로 지은 마을회관에 주민이 운영하는 다방과 ‘깡깡이’자료를 전시하는 박물관이 갖추어졌다. 하지만 오랜 세월 ‘깡깡이아지매’ 본인과 자식들, 이웃마저 자괴감에 사로잡혀 그 경력을 감춰왔다. 가난이 이유라면 그건 부당한 전가(轉嫁)였다. 실제로는 국가와 사회가 감당해야 할 부끄러움을 민간에 떠넘긴 것이다.

‘깡깡이 아지매’로 40년간 일해온 강애순 씨의 최근 모습.
도리어 ‘깡깡이아지매’로 40년을 일한 강애순(84) 노인의 삶은 당당하고 늠름했다. 서구 대신동에서 강재복과 정순이의 2남 5녀 중 장녀로 태어난 어린 시절은 남선전기 주임인 부친 덕에 유복했다. 6·25전쟁 통에 통영으로 피란을 갔다 부산으로 돌아와서도 전신전화국 직원이 된 부친은 순탄하게 가정을 꾸렸다. 1956년 강애순은 네 살 위 조선소 목공인 “참한 신랑감” 박대환과 결혼하면서 대평동으로 들어왔다.

문제는 조선기술의 변화였다. 남편의 목선 제작기술은 강선(鋼船) 건조가 대세인 시대에 점차 시들해졌다. 시댁식구 8남매 뒷바라지에 조카 셋까지 떠맡은 일곱 식구 살림살이가 갈수록 힘에 부쳤다. 강애순은 진작부터 눈여겨보던 ‘깡깡이’ 일에 마음이 끌렸다. 남보다 늦은 서른다섯 나이에 일을 시작한 그였지만, 이웃집 반장 덕분에 아침마다 조선소로 몰려드는 여인네들 중에도 앞줄에 설 수 있었다. 머잖아 강애순은 조선소마다 서로 데려가려 애쓰며 꾸준히 일감을 주는 ‘본공(本工)’이 되었다.

1956년 박대환 씨와 결혼할 당시 강애순 씨 모습. 강애순 제공
물론 ‘깡깡이’는 힘겨운 노동이었다. 줄에 매달려 덜렁대는 디딤틀(‘족장’ ‘아시바’)에 걸터앉아 뱃전의 녹을 긁고 떨어내는 일은 극도로 위험했다. 자칫 디딤틀에서 떨어졌다간 십중팔구 불구 아니면 식물인간이었다. 일터에서 망치로 쇠판을 칠 때의 ‘깡-,깡-’ 하는 공명음(共鳴音)은 밤의 잠결에도 환청으로 들렸다. 냄새에 시달리는 뱃전의 페인트칠이나 선박 구석구석을 청소하는 일도 힘들긴 매한가지였다.

몸집이 작은 강애순이 자주 투입된 탱크 내부에는 질식사 위험마저 도사리고 있었다. 먼지와 쇳가루를 막느라 비닐에 수건 마스크 물안경까지 여섯 겹이나 감싼 얼굴은 짓무르기 일쑤였다. 그런데도 1980년대까지 조선소는 방진마스크나 귀마개 안전장구 지급은 고사하고 보험 가입마저 외면했다. 그로 인해 ‘깡깡이아지매’ 상당수는 늘그막에 청력을 잃거나 관절염 심폐증에 시달리며 약에 의존해 살아가야 했다.

■ 자부심 어린 나의 직업

독일작가 핸드릭 바이키르히가 대평동 아파트 벽면에 그린 공공미술작품 ‘우리 모두의 어머니’. 김정하 제공
하지만 ‘깡깡이’는 강애순에게 근로자라는 자부심을 안겨준 어엿한 직업이었다. “목의 쇠 찌꺼기를 씻어준다”며 두어 달에 한 번씩 회사가 마련해준 돼지고기 회식은 흥감했다. 봄가을에 한 번씩 산성마을 등지로 떠나던 관광여행도 즐거운 기억이었다. 1970년대 1000원에 불과한 일당은 식비와 아이들 학비, 학용품 값 마련에 적잖은 도움이 됐다. 동료들과 ‘반지 계’로 남편 손에 금반지도 끼워줄 수 있었다. 하루 8시간 작업 도중 틈틈이 집으로 달려가 막내딸 젖을 먹이고 다시 일터로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강애순 노인은 사리 판단과 주장이 분명했다. 남편이 작업을 하다 사고를 당했을 때는 직접 회사를 찾아가 “산재에 올려라(적용해라)”는 요구를 관철시켰다. 다른 ‘깡깡이아지매’들 태도 역시 똑 부러지긴 마찬가지였다. 일요일 특근에는 “두 대가리(두 배)” 일당을 야무지게 받아냈다. 앞바다에 나가 작업하고도 수당을 못 받았을 때는 통선에서 해상시위도 벌였다. 여러 이유로 와해되긴 했지만 1970년대 중반에는 ‘청락부’란 이름으로 노조에 가입해 권익을 보장받았다. 흔히 듣던 ‘깡깡이질이 자식 혼사 길 막는다’는 말은 허언이었다. 반듯하게 자란 세 딸은 대학과 교정기관, 건설회사에 다니는 ‘참한 신랑감’들과 짝을 이뤘다. “어렵고 힘들었지만 사는가 싶게 살았다.” 뒤늦은 강애순 노인의 소회는 자부에 가깝다.

■ “깡깡이박물관이 최고지!”

7,8년 전부터 그 삶에 인문학이 주목했다. “곱사등이에게서 혹을 떼어내면 그에겐 남는 것이 없다”고 니체가 갈파했듯 고생을 자산(資産)으로 삼는 ‘깡깡이아지매’의 삶에서 ‘실존적 운명애’를 읽어냈다. 이어 2015년부터 5년여 ‘깡깡이예술마을 조성사업’ 등에서는 예술·문화가 ‘깡깡이아지매’의 기존통념을 뒤엎었다. 대동대교맨션 벽면에 그려진 핸드릭 바이키르히의 ‘우리 모두의 어머니’를 비롯한 80여점 공공미술작품이 ‘깡깡이마을’ 이미지를 새롭게 재해석해냈다. 그들 작품의 제작과정과 사업을 주관한 이승욱 플랜비 대표는 이렇게 설명한다. “작가마다 6개월을 들여 주민과 소통하며 그들 삶을 성찰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로써 예술·문화·삶을 민주주의적으로 결합해 평범한 삶의 진정성을 담은 작품으로 마을 역사와 전통을 해석하고 표현했습니다.”

‘깡깡이아지매’를 비롯한 주민의 삶이 영상물로 제작되고 책으로 출판되면서 점차 주민이 사업 주체로 나섰다. ‘문화사랑방’에 모인 주민은 마을신문을 내거나 정원을 꾸미고, 바리스타로 마을다방을 운영하거나 마을해설사가 돼 내방객을 안내하는 활동을 펼쳤다. 각자 기억과 몸짓을 예술가의 지도로 다듬어 시와 춤을 만들고 그것으로 ‘공공예술페스티벌’을 개최했다. 우여곡절 끝에 마을과 자갈치를 오가던 도선(導船)을 복원해 옛 정취도 되살렸다. “사업명칭의 ‘깡깡이’란 말이 지닌 상징성처럼 주민 참여와 주도야말로 대평동 도시재생의 성공비결입니다.” 당시 영도문화원 사무국장으로 사업을 지원한 김두진의 말이다.

드디어 2019년 부산상공회의소는 ‘깡깡이아지매’ 38년 경력의 허재혜 노인에게 ‘근로부문 공로상’을 수여했다. 같은 해 방송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에서 풀어낸 강애순 노인의 체험담은 시청자의 애정 어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강애순 노인도 마을 유명인사가 되었다. 지난 1월 말의 강애순 노인 인터뷰는 모 방송국 촬영이 끝난 후에야 가능했다. 인터뷰에서 강애순 노인은 그동안 전개된 여러 사업성과 중에서도 ‘깡깡이박물관’ 건립을 으뜸으로 꼽았다. 박물관이 생겼으니 오랜 세월이 지나도 후손들이 자신들의 고난에 찬 삶을 기억해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라 했다.


▶ 도움말씀 주신 분들 = 이승욱 플랜비 문화예술협동조합 대표이사, 김두진 부산문화재단 예술진흥본부장, 박기영 대평동마을회장, 하은지 호밀밭출판사 기획팀장

※ 공동 기획=국제신문·한국해양수산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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