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엑스포는 부산과도 인연의 끈을 이었다. 관부연락선 재개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일제 강점기 유력 해운로였던 관부연락선은 미군의 공습이 심해진 1945년 3월 운항이 중단됐다.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양국은 부관(관부) 페리 운항 재개 협상에 나섰으나 타결이 쉽지 않았다. 대일 수교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남아 한국 정부의 운신의 폭이 좁았던 탓이다. 협상은 한일 각료회담에서 3년간 난항을 겪었다. 그러다 오사카엑스포를 앞둔 일본이 강력히 밀어붙이면서 타결됐다. 1970년 6월 재개된 이 항로엔 지금도 1만6000t급 페리가 매일 운항하고 있다.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속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이 바로 관부연락선이다. 도항지인 시모노세키(下關)와 부산(釜山)에서 한 자씩 따 ‘관부’가 붙었다. 경부선 철도가 완공된 1905년 9월 일본 산요기선주식회사가 개설, 부산잔교역과 시모노세키역을 직통으로 연결했다.
관부연락선은 물산 침탈, 징용자 수송로이자 만주로 이어지는 대륙 침략 중계항로였다. 유학, 사업, 노동, 온갖 돈벌이를 하러 현해탄을 건너는 조선인의 숱한 애환을 싣고 오갔다. 1940년대엔 연간 수송 인원이 200만 명에 달했다. 여류성악가 윤심덕이 기혼자 연인과 쓰시마섬 앞바다에 몸을 던진 게 관부연락선 ‘도쿠주마루’였다. 이병주 소설 ‘관부연락선’을 비롯해 많은 예술작품의 소재이자 무대가 됐다. 해방 후 폐역된 부산잔교역은 부산역 남쪽 제1부두 연안여객터미널 자리에 있었다. 부산엑스포 예정지에 포함된 부산항 북항 재개발 1단계 구역 남단이다. 경부선 종착역이었지만 일제 강점기엔 도쿄역이 시발역이어서 부산잔교역에 경성역 방향이 ‘하행’으로 표시돼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