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이 진열된 대형마트 신선식품 판매대. (출처 : 연합뉴스. 해당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마트에서 물건을 사거나 음식점에서 ‘혼밥’을 할 때 매번 허탈감을 느낍니다. ‘월급 빼고 모두 올랐다’는 얘기는 괜히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더 화가 나는 말이 있습니다. ‘물가가 곧 안정될 것이다’는 정부의 설명입니다.”

부산 수영구에서 자취 생활을 하는 20대 후반 직장인 조모 씨. 그는 ‘퇴근 후’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중소 유통업체에서 하루 일과를 마친 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울 법도 한데 최근 물가가 너무 많이 오른 탓에 ‘저녁식사를 어떻게 해결할지’가 큰 고민으로 다가온다.

귀갓길에 마트를 방문해 반찬거리나 채소를 사려고 해도 하루가 멀다 하고 숫자가 바뀌는 가격 탭을 보면 ‘천정부지 물가 상승’이라는 뉴스의 헤드라인이 어느 정도 실감이 난다. 밖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것도 쉽지 않다. 원자재와 농·축·수산물 가격이 급등하면서 외식 물가도 같은 흐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조 씨는 “추석을 앞두고 경남에 있는 부모님께 선물을 하거나, 음식 준비를 위해 농·축·수산물을 사야 하지만 선뜻 지갑을 열기 힘든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곡물 7개 품목 중 6개 가격 상승

부산지역 물가가 농·축·수산물과 외식 분야를 중심으로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이들 품목은 사실상 매일 구매하거나 일상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분야다. 이 때문에 장바구니 물가가 오르면 조 씨의 경우처럼 대다수 서민의 시름이 고소득층보다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11일 국제신문이 통계청 자료를 토대로 부산지역의 지난달 소비자물가를 품목·분야별로 분석한 결과, 추석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도 일상 생활과 밀접한 품목의 가격 오름세가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농산물 중 곡물 가격은 통계청이 분류한 7개 품목 가운데 땅콩(-3.1%)을 제외한 6개 품목의 가격이 지난해 8월보다 상승했다. 콩의 상승률이 18.4%로 가장 높았고 ▷쌀(14.2%) ▷현미(10.2%) ▷찹쌀(7.6%) ▷혼식곡(7.6%) ▷보리쌀(5.5%)이 뒤를 이었다. 이들 곡물 가격의 상승은 컵밥 등 시중에서 판매되는 인스턴트 제품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농산물 중 채소 가격을 보면 배추(45.5%) 상추(40.1%) 시금치(22.4%) 양배추(11.3%)가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다. 미나리(8.1%) 깻잎(8.1%) 부추(6.8%) 무(5.9%)도 비교적 많이 올랐다. 물론 가격 하락 품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생강은 55.3% 떨어졌고 파프리카와 고사리의 가격도 각각 34.9%와 30.2% 내려갔다.



과일은 더 심하다. 사과(86.6%)를 비롯해 배(65.3%)와 복숭아(59.5%), 포도(38.6%)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아몬드(-20.8%)와 블루베리(-14.9%) 정도만 가격이 내려갔다. 이들 과일은 통상적으로 사과·배·복숭아 만큼 소비자들이 자주 구입하지는 않는다.

축산물의 경우 달걀(36.6%) 닭고기(11.6%) 수입쇠고기(9.8%) 돼지고기(8.3%) 등 대부분의 품목이 올랐다. 수산물은 갈치(13.9%) 명태(11.9%) 조기(5.8%) 등의 가격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통계청은 “작황 부진과 조류 인플루엔자(AI) 여파가 올해 상반기 내내 이어지면서 농·축·수산물 가격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올랐다”고 설명했다.

●39개 외식 품목 중 2개 가격만 하락

부산의 외식 물가도 마찬가지다. 통계청이 분류한 39개 외식 품목 중 무려 28개의 가격이 지난해 8월보다 올랐다. 1년 전과 비교해 가격 변동이 없었던 9개 품목을 포함하면 39개 중 불과 2개 품목(구내식당 식사비, 도시락)의 가격만 떨어진 셈이다.

김치찌개 백반의 가격이 지난해 8월보다 15.6% 오르며 39개 품목 중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된장찌개 백반도 9.2% 올랐다. 이어 비빕밥(7.6%) 설렁탕(6.2%) 갈비탕(4.6%) 삼계탕(4.5%) 해물찜(4.0%) 해장국(3.9%) 불고기(3.6%) 등의 순이었다.

일상 생활과 밀접한 품목의 가격이 꺾이지 않으면서 정부를 향한 불만도 커지고 있다. 정부가 올해 상반기부터 “하반기에는 물가가 안정세에 접어들 것”이라고 공언해 왔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이억원 1차관은 지난 2일 제25차 물가관계차관회의에서 “올 여름 폭염으로 시금치·상추 등의 가격이 급등하고, 더운 날씨에 수박·포도 등 과일의 소비도 늘어 농·축·수산물 가격의 상승 폭이 커졌다”며 “추석명절 수요와 가을 장마 등으로 물가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정부는 농·축·수산물 가격 및 수급 동향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필요 시 추가 대응 방안을 강구하기로 했다. 달걀은 9월 중 1억 개를 추가로 수입해 공급하고, 농·축·수산물 할인쿠폰(최고 30%) 지원 규모를 1인당 1만 원에서 2만 원으로 늘린다. 이 쿠폰은 대형마트와 전통시장 등 전국 2만여 개 유통업체에서 사용할 수 있다. 이석주 기자 sereno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