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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중심시대 부울경 기업을 응원하다! <8-상> 경성산업

‘불리’에서 시작해 ‘편견’과 맞서 일궈낸 부산 제조업 맏언니

  • 배길남·소설가
  •  |   입력 : 2021-06-01 19:11:05
  •  |   본지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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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마재 업계 1위 김경조 대표
- IMF 시절 직원 단 한 명과 창업
- “여자가 무슨” 잣대 속 이 악물고
- 남성중심 분야서 실력으로 승부

- 대학생 방학기간 실습 기회 제공
- 딱딱한 제조업 이미지 탈피 노력
- “서부산 미래지향적 투자 등 변화
- 내실 다진 강소기업들 많이 늘어”
   
경성산업 김경조(오른쪽) 대표가 연구개발부서 연구원에게 스테인리스 와이어로 연마재 제품을 만드는 공정을 설명하고 있다.
■제조업 분야 선입관 깨다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 사전에 새겨진 편견의 뜻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했다. 편견이 바로잡히지 못하면 그것은 곧 현실이 된다고. 그런 현실은 더더욱 비뚤어질 것이라고. 사실 우리는 그런 사실을 잘 알면서도 편견을 잘 고치지 못한다. 도리어 온갖 편견으로 가득 찬 현실을 인정하는 쪽일지도….

   
경성산업은 업무를 배우도록 일에 동참을 시켜 지역 대학생들의 실습 장소로 인기가 높다.
하지만 편견은 잘못된 것이다. 그것과 올곧게 맞서 싸울 때 세상은 바뀌고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법이다. 지금 연재 중인 이 시리즈 기사 또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뿐만 아니라 심지어 기업조차도 수도권 중심으로 치우친 편견이라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출발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만나볼 연마재 제조기업인 ‘경성산업’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김경조 대표를 만난 곳은 부산 제조업의 메카라 할 수 있는 강서구 녹산공단 내 여성기업산업단지에 위치한 경성산업 본사였다. 여성기업산단 지정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한 김 대표는 이곳에 처음으로 입주했다.

본사 건물에 들어서며 처음 눈에 띈 것은 입구에 위치한 조각상들이었다. 척 봐도 예술작품으로서 품격이 엿보인다. 평소 제조업 공장이라면 찌든 기름때와 흩어진 부품들, 회색벽의 사무실 등을 떠올리기 일쑤다. 경성산업은 입구부터 소설가의 수준 낮은 선입관을 깨트리며 강렬한 첫인상을 남겼다.

“커피를 드시고 오셨다니 다른 차도 같이 준비했습니다.”

앞에 놓인 찻잔이 무려 세 개. 찬찬히 두루 살피는 배려와 정성이 느껴졌다. 부산지역 제조업 분야 여성 CEO의 맏언니라는 별명을 가진 김 대표의 첫인상 또한 세고 강할 것이란 선입관을 여지없이 깨는 것이었다. 입구부터 느꼈던 첫인상에 대해 말하자 강단 있는 목소리가 그 이유를 설명한다.

“경성산업은 청년친화강소기업, 가족친화기업, 여가친화기업 등의 인증을 받은 기업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주제가 흔히 생각하는 제조업과는 좀 어울리지 않죠. 저는 경성산업을 운영하면서 그런 고정관념부터 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곧 있으면 다가올 여름방학 실습 때가 되면 우리 회사에는 부산지역 학생들이 몰립니다. 그런 지가 꽤 됐어요. 학생들이 중소기업하면 먼저 떠올리던 기름때를 닦아내고 회사에 문화적 분위기를 조성했죠. 회사 3층에는 갤러리까지 만들었어요. 나무도 많이 심었죠. 거기에다 학생들에게 잡일을 시키지 않고, 회사의 업무를 배우도록 일에 동참시켰어요. 중소벤처기업에 인력이 없다 탓하기보다 사람들이 오게 만들어야죠. 이제는 기업이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부산은 어느 순간 지역이 양분된 것으로 인식돼오고 있다. 동부산은 IT와 벤처, 서부산은 제조업과 공단이라는 일반적 인식이 그것이다. 뒤에 나올 질문이었지만 김 대표의 거침없는 기업변화론에 힘입어 의견을 물어보았다.

“그런 선입관으로 인해 서부산의 인력 부족이 문제가 됐었죠. 동부산은 아메리카노 들고 출근하고, 서부산은 자판기 커피나 뽑아먹는다는 거죠. 우스갯소리로 ‘구포대교만 보면 학생들이 안 넘어오려 한다’는 말까지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몇몇 성공사례 빼고는 수많은 IT 벤처기업이 실속 없이 무너지거나 서울로 떠나간 경우가 많았죠. 물론 서부산도 많은 위기가 있었고 변화를 겪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정통산업단지에서 보람을 찾을 수 있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제조업에서도 내실을 다진 강소(强小)기업이 늘어나고 있어요. 미래지향적 투자와 함께 직원들의 처우와 복지를 우선하려는 노력도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죠. 변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곳 녹산의 여성기업산업단지에 자리한 여성CEO 제조기업만 해도 21개로 늘어났어요.”

■편견과 싸워 연마재 선두주자로

   
본사 건물 입구에 늘어선 조각작품들.
이제 경성산업이 주력분야인 연마재가 무엇인지 알아본다.

“연마재 산업이 생소하게 느껴질 건데요. 쉽게 설명하자면 자동차나 전자제품 등 부품이나 겉면을 매끄럽게 만드는 것이 연마재입니다. 보통 경도가 높은 물질을 사용해서 마찰을 가해 표면에 튀어나온 부분을 제거하는 방식이지요. 들여온 스테인리스 와이어를 가장 작게는 0.1㎜까지 분해해내는 겁니다. 0.1㎜면 파우더에 가깝죠. 머리카락 두께가 0.3㎜이니까. 연마재의 세세하고 통일된 규격을 위해 많은 기술 개발과 공정이 필요합니다. 바로 저희 경성산업의 주된 사업 분야입니다.”

주물로 찍어내는 자동차 부품 수십만 개의 거친 표면을 사람 손으로 다 밀고 닦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여러 부품의 재질에 따라 규격이 다른 연마재를 넣고 기계로 투사해 겉면을 매끈히 정리하는 것이다. 이런 연마재 시장은 자동차를 넘어 항공 철도 원자력 반도체 전자 분야까지 그 영역이 확대돼 오는 2023년에는 513억6000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마재를 설명하는 김 대표의 말투와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설명은 귀에 쏙 들어오고, 회사의 기술과 제품에 대한 자신감은 신뢰를 불러오는 듯하다. 수많은 세월이 만들어낸 전문가 또는 달인의 모습이다.

회사 연혁과 예전의 인터뷰를 살펴보면 경성산업은 IMF 시절인 1997년 단 한 사람의 직원과 함께 창업했다. 어려운 시절임은 물론이고 여성에 대한 편견이 가득 차 있던 시기가 아닌가. 게다가 서비스업도 요식업도 아닌 제조업 분야에서.

“여성으로서 어려웠던 점, 없다면 거짓말이겠지요. 사실 지독한 편견과 맞서 싸웠죠.”

보험아줌마, 잡상인 취급 받는 것은 기본이었다. 제품에 대한 설명을 하는 중 “사장님은 패션업이 어울린다” “입술이 아주 이쁘다” 등 지금 잣대를 들이대면 도저히 꺼낼 수 없는 얘기까지 들었다. 여자가 엔지니어도 아니면서 까분다는 소리도 들었다.

질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이를 악물었다. 실력으로 맞불을 놓을 밖에. 먼저 회사의 모든 제품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했다. 저명한 연구기관에 의뢰해 제품에 대한 신뢰도 높은 데이터를 준비했다. 절대 공개하지 않는 다른 회사 공장 설비도 ‘비전문가 여성 오너’임을 내세워 공식적으로 염탐(?)하는 수완도 발휘했다.

대외적인 간판도 영업에 도움이 될 것 같아 학업도 병행했다. 경제학 박사학위까지 받은 그는 최근까지 대학 강의도 했다. 아이템이 당시로선 새로웠던 그의 박사논문 ‘한국의 여성기업’은 출판사의 제의로 책으로도 나왔다.

남성중심의 제조업 분야에서 편견을 깨기 위해 쉬지 않고 달린 김 대표는 마침내 한 분야의 전문가로 우뚝 섰다.

“남성이 도전적이고 수직적 운영을 잘 한다면, 여성은 내실을 기하고 수평적 운영을 잘하는 편이죠. 각자의 장점이 있는 겁니다. 열정이라면 누구 못지않았어요. 한 번은 연마재에 대한 한 연구 결과가 우리 회사 실험과 맞지 않는 거예요. 저자를 만나기 위해 홀로 경기도의 한 대학까지 찾아가 자문을 구했었죠. 헤어질 때 돌아온 대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사장님 같은 경영자는 처음 봅니다. 아마 크게 성공하실 것 같습니다” 하며 놀리는 거 있죠. 하하하!”

불리에서 시작해서 편견과 맞선 경성산업 김경조 대표의 제2의 무용담은 다음회로 이어진다.

배길남·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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