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맥주는 미각을 알차게 채우는 한 잔의 음식 같아서 어떤 음식과 함께 먹느냐에 따라 풍미를 더하기도, 해치기도 한다. 수제맥주 각각이 지닌 개성에 따라 어울리는 음식 장르를 좀 더 세분화할 수 있겠지만 보통 ‘치맥(치킨+피자)’과 ‘피맥(피자+맥주)’은 실패 확률이 낮다. 그중 지극히 평범한 나의 피맥 역사에서 대부분의 지분을 차지하는 피맥 성지 두 곳이 있다. 강원도 강릉 홍제동 ‘버드나무 브루어리’와 경남 김해 봉황동 ‘안인 정미소’이다. 짭조름한 피자 토핑과 쫄깃한 도우 사이에 부드럽게 스며드는 맥주의 그 차진 맛이란! 피맥 순례를 떠날 가치는 충분하다.
①즈므블랑+김치피자의 환상 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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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강릉 홍제동 ‘버드나무브루어리’에서의 피맥. 김미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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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나무브루어리(이하 버드나무)는 막걸리 양조장(강릉탁주)을 개조해 2015년 문을 열었다. 맥주와 음식에 강릉만의 특색을 듬뿍 묻혀 단숨에 강릉 힙플레이스로 떠올랏다. 강릉 사천면 미노리 마을에서 재배한 쌀로 만든 쌀맥주 ‘미노리 세션’, 저무는 마을이란 뜻의 사투리 즈므마을에서 따온 ‘즈므블랑’ 등 이름과 맛 모두 주옥같은 맥주가 즐비하다. TV프로그램 ‘알쓸신잡’ 출연진들이 맥주를 마시는 모습이 방송에 나오며 전국적인 인기를 끌었다.
특히 국화와 산초 등을 넣고 양조한 즈므블랑은 입안에 머금으면 아늑한 꽃 향과 알싸한 맛이 새콤한 탄산과 어우러져 마시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 주옥같은 맥주의 파트너로 ‘홍제피자’를 골랐다. 김치 토마토 베이컨이 주재료다. 토마토와 베이컨의 궁합이 ‘아는 맛’이라면 김치와 피자의 조합은 색달랐다. 그러나 피자를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나와 일행은 예감했다. 이곳은 피맥 성지가 될 거라고. 김치가 피자치즈의 느끼한 맛을 완벽하게 잡아줬을 뿐만 아니라 고유의 한국적 풍미를 가감 없이 드러내며 피자의 신세계를 열어줬다. 위장이 허락했다면 한 판을 다 먹어 치웠을지도 모른다.
아쉽게도 다음 방문을 기약한 사이 홍제피자는 메뉴판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서 지금은 더 아련하다. 대신 얼마 전 강릉을 다녀온 지인이 강력 추천한 ‘강릉 송고버섯 피자’를 영접할 계획이다.
②김수로왕도 반할 걸 ‘킹수로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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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김해 봉황동 ‘안인 정미소’에서의 피맥. 김미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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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인 정미소는 옛 정미소를 개조한 퓨전 레스토랑이다. 직접 맥주를 양조하는 브루어리는 아니고, 파스타 피자 필래프 등이 메인이다. 봉황동이 ‘봉리단길’로 명성을 떨쳤을 때 안인 정미소는 인기의 중심에 있었다. 옛 정미소 건물을 최대한 보존해 레트로 감성을 살린 것도 독특하다.
이곳에서는 14인치 피자를 먹을 경우 한 판에 두 가지 맛을 선택할 수 있다. 이른바 ‘반반피자’다. 페퍼로니 피자, 치즈피자 등 메뉴 자체는 평범하지만 피자 도우의 찰기가 범상치 않다. 두께가 너무 두껍지도 얇지도 않고 쫀득해 피자를 먹는다는 느낌보다는 제대로 된 식사 한 끼를 먹는 듯한 만족감이 들었다.
이때 곁들인 ‘킹수로페일에일’이 화룡점정이었다. 김해 특산물인 진영 단감을 넣어 페일에일 특유의 쓴맛을 줄이고 단맛을 높였다고 했다. 김해 김씨의 시조인 김수로왕에서 착안한 이름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부드러운 단맛이 메인인 피자 맛을 해치지 않고 입맛을 계속 돋웠다.
두 번째 방문했을 때 킹수로페일에일이 메뉴에서 사라져 피맥 맛이 반감된 기분이 들었는데, 최근 부활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해 기회를 노리는 중이다. 글·사진=김미주 기자 mjki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