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가 고착화되면서 자산을 불리기 위해서는 리스크를 안고 도전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됐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능숙하게 투자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투자 지식을 끌어 올리기 위해 교육을 지속적으로 실시하더라도 크게 나아지지 않는 사람도 꽤 많다. 스스로 투자 결정하는 것을 포기한 사람들을 위한 차선책으로, 미리 지정해 놓은 금융상품에 자동으로 가입하게 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것이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사전지정운용 제도’의 골자다. 이 제도는 지금과 같이 저금리 시대에 노후자금을 예금으로만 묶어 놓아 노후가 궁핍해지는 것을 막고 조금 더 풍족한 미래를 만들어 주고자 하는 선한 취지를 갖고 있다. 최근 사전지정운용 제도를 퇴직연금에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고 있다.
취지는 좋지만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본인 의사에 관계없이 특정 상품에 가입시켰을 경우 최종 성과가 좋다면 다행이지만 만약 이자율보다 수익률이 낮거나, 심지어 손실마저 발생한다면 가입자가 반발할 것이 뻔하다. 대개 사전지정운용의 방법은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투자 리스크를 어느 정도 지게 된다.
적극적으로 의사를 밝히지 않은 가입자에게 적어도 이런 점을 충분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투자 교육은 자산운용 방법을 알려주는 게 전부가 아니다. 투자 전 계약 내용을 이해하는 능력을 키우고 투자 결정 후 발생하는 결과에 대해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가입자에게 이 같은 투자 교육을 꾸준히 해야 할지 모른다. 선진국 국민이라고 모두 자산운용을 잘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사전지정운용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은 대단히 큰 배짱이 필요한 부분이다. 정책 입안자는 큰 부담을 안고 결정해야 한다. 가입자가 의도치 않게 책임을 떠안게 되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가 이런 위험 부담을 안고서라도 정책을 펴는 배경에는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열악한 현실에 처한 우리 국민 노후를 가련하게 여기는 심정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비판을 감수하면서도 사전지정운용 제도를 도입하려는 용기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사전지정운용제도가 도입된다면 생애주기를 고려한 펀드나 글로벌자산배분 펀드 등 장기적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꾸준히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균형 잡힌 상품이 선정돼야 한다. 어쩌면 한 가지 금융상품이 아니라 다양한 몇 개의 상품을 조합해 포트폴리오를 꾸리는 것이 더 적절 할 수도 있다. 어쨌든 여러 상황을 고려한 합리적인 방법이 나오고 서로 경쟁해 좋은 취지의 정책이 원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좋겠다.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지철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