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7년 대우실업으로 시작해
- 41개 계열사·600여개 해외법인
- 1998년 당시 매출 91조 원 달해
- 저서 ‘세계는…’ 100만 부 팔려
- 부도 후 분식회계 혐의 2년 복역
- 환수 추징금만 18조 원 육박
- 사면 뒤 해외서 청년사업가 양성
지난 9일 밤 별세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을 비롯한 1세대 창업가와는 달리 샐러리맨으로 출발한 ‘1.5세대’ 창업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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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빈소에서 조문객들이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
1936년 대구 출생인 김 전 회장은 경기중·고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만 30세인 1967년 대우실업을 설립한 후 1999년 대우그룹 해체 직전까지 자산 규모 기준으로 현대에 이어 국내 2위의 기업을 일궜다.
김 전 회장은 섬유 수출업체인 한성실업에 근무하던 중 트리코트 원단 생산업체인 대도섬유의 도재환 씨와 손잡고 대우실업을 창업했다. 대우(大宇)는 대도섬유의 대(大)와 김우중의 우(宇)를 따서 만든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자본금 500만 원으로 출범한 대우실업은 첫해부터 싱가포르에 트리코트 원단과 제품을 수출해 58만 달러 규모의 수출실적을 올렸고 인도네시아, 미국 등지로 시장을 넓혔다. 1969년 한국 기업 최초로 해외 지사(호주 시드니)도 세웠다. 1975년 한국의 종합상사 시대를 연 대우는 국내 중소기업의 수출창구로 자리잡았다. 고인은 1973년 영진토건을 인수해 대우개발로 간판을 바꿔 달고 무역부문인 대우실업과 합쳐 그룹의 모기업 격인 ㈜대우를 출범시켰다.
1976년 한국기계(대우중공업)와 1978년 새한자동차(대우자동차), 대한조선공사(대우조선해양) 등 부실기업을 인수해 단기간 내에 경영정상화를 이뤄 한국의 중화학 산업을 선도했다. 같은 시기에 에콰도르(1976년)에 이어 수단(1977년), 리비아(1978년) 등 아프리카 시장 진출을 통해 해외사업의 터를 닦았다. 1982년 무역·건설부문을 통합해 ㈜대우를 설립하고 그룹화의 길에 들어선 후 자동차·중공업·조선·전자·통신·정보시스템·금융·호텔·서비스 등을 갖춰 세계 진출을 본격화했다.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에세이집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1989년)’를 펴내 6개월 만에 100만 부를 판매해 최단기 밀리언셀러 기네스 기록을 달성했다.
1999년 해체 직전, 대우그룹은 41개 계열사와 600여 개의 해외법인·지사망, 국내 10만 명, 해외 25만 명의 고용인력을 토대로 해외 21개 전략국가에서 현지화 기반을 닦고 있었다. 1998년 기준으로 자산총액은 76조7000억 원, 매출은 91조 원가량이었다.
하지만 1997년 11월 닥친 외환위기는 ‘대우 신화’의 몰락을 불러왔다. 1998년 3월 전경련 회장이었던 고인은 ‘수출론’을 집중적으로 부각했지만 김대중 정부의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 등 금융 관료 그룹과 갈등을 일으켰고 1998년 당시 그룹 구조조정의 최우선 핵심 사안으로 꼽혔던 대우차-제너럴모터스(GM) 합작 추진이 흔들리자 몰락했다. 고인은 대우그룹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로 2006년 징역 8년 6월과 벌금 1000만 원, 추징금 17조9253억 원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2008년 1월 특별 사면됐다.
고인은 2010년부터 마지막 봉사라 여기며 GYBM(Global Young Business Manager) 양성사업에 매진해 베트남 미얀마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 4개국에 1000여 명의 청년사업가를 배출했다.
정옥재 기자 littleprinc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