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韓, 그룹 B로 강등 … 혜택 박탈
- “日, 국제사회 부정적 여론 의식”
- 백색국가 제외 규제기조는 여전
- 추후 추가 품목 지정 가능성도

- 정부, WTO 제소 등 체계적 준비
- 부산시, 수입국 다변화 지원 강화
- BNK금융지주 비상대책반 가동
- 피해기업 2000억 경영자금 편성

일본 경제산업성(경산성)이 7일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공포하면서도 애초 우리 측 예상과 달리 ‘개별 허가’ 품목을 추가로 지정하지 않은 것은 자국을 향한 국제사회의 부정적인 여론 확산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백색 국가(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한 일본의 결정이 바뀐 게 아닌 만큼 일본 정부가 ‘경제 도발’을 유보했다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지난달 취임한 후 첫 일본 방문에 나선 마크 에스퍼(왼쪽) 미국 국방장관이 7일 일본 도쿄 총리관저에서 아베 신조 총리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속도 조절로 보기 이르다”

애초 우리 정부는 경산성이 이날 개정안을 공포하는 동시에 개별 허가 대상 품목을 추가로 지정할 것으로 봤다. 백색 국가 제외로 영향을 받는 전략 물자 품목 외에 수출 절차를 까다롭게 하는 개별 허가 대상 품목을 더 정할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이를 통해 국내 기업이 어느 정도의 추가 피해를 입게 될지, 일본이 우리 경제의 약점 가운데 어디를 노리고 있는 지가 확인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경산성은 개정안을 공포하면서도 지난달 4일 반도체 관련 3개 핵심 품목에 이어 한국으로 수출할 때 개별 허가만 가능한 품목을 따로 추가하지는 않았다.

한국을 ‘백색 국가’에서 제외하도록 수출무역관리령을 개정한다는 사실이 7일 일본 정부 관보에 게시돼 있다. 연합뉴스

우리 정부와 통상 당국은 일본이 국제사회의 심상치 않은 여론 등을 의식해 추가 품목을 일단 지정하지 않았을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 분위기다. 최근 중국 등 주요국에서는 “일본의 대한국 수출 규제 조처가 글로벌 경제에 타격을 줄 것”이라는 언론 보도가 잇달아 나왔다. 산업부 관계자는 “최근 미국이 중재 기조를 보이는 데다 국제사회의 비우호적 여론도 커지는 상황”이라며 “일본이 이를 감안해 조심스럽게 접근한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정부는 일본이 한국을 겨냥한 ‘경제 전쟁’을 유보했다고 판단하지는 않는다. 현시점에서 개별 허가 품목을 추가로 지정하지 않은 것은 어쨌든 다행스러운 결과지만, 그렇다고 백색 국가 제외 기조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산업부 측은 “일본이 ‘속도 조절’에 나섰다고 볼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일본의 추후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며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을 예정대로 추진하고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 법적 대응도 체계적으로 준비한다는 계획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긴급 거시경제 금융회의’에서 “기업 지원과 경쟁력 강화 대책을 촘촘하고 과감하게 실행하겠다”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공포하면서 그간 사용해 온 수출 상대국 분류 체계도 변경했다. ‘백색 국가 또는 비백색 국가’에서 ‘그룹 A, B, C, D’로 바뀌는 게 골자다. 수출 신뢰도가 가장 높은 A그룹에는 기존 백색 국가 26개국이 배정됐다. 한국은 B그룹에 들어갔다. 일본은 이날 B그룹에 속한 국가 중 한국만 공개했다. 산업부는 B그룹 국가 수가 우리나라를 포함해 10~20개일 것으로 추정했다.

■부산 피해 최소화 총력전

한편 부산은 일본 수출 규제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총력전을 벌인다.

부산시는 7일 일본 수입대체시장을 확보하기 위한 비용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시는 수입국 다변화를 위한 지원 사업을 강화한다. 시제품 구매비나 물류비는 물론, 판매자 방문·초청 경비와 통·번역 비용까지 지원 대상에 포함했다. 시 김윤일 일자리경제실장은 “수출 주도의 통상정책에서 처음으로 수입 관련 사업을 개발했다”며 “일본과의 무역 분쟁이 장기화할 경우 별도의 예산을 만들어 글로벌 소재부품 구매사업 등 생산 구조 안정화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간에서도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BNK금융지주는 이날 일본 수출 규제에 따른 비상대책반을 가동한다고 밝혔다. 비상대책반은 일본 수출 규제 피해 기업에 대한 금융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금융시장 변화에 따른 대응책을 수립할 계획이다. BNK는 우선 일본 수출 규제로 피해를 보는 기업을 도우려고 2000억 원 규모의 경영안정 자금을 편성했다. 1000억 원 한도의 신규 자금을 마련해 직접적으로 피해를 본 기업에 5억 원 한도로 지원한다. 업체의 이자 비용 부담을 낮추기 위해 신규자금 대출 시 최대 2% 금리를 감면하고, 수출 규제 피해가 해소될 때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여신을 연장하고 분할상환도 유예하기로 했다. 수출입 관련 외화 수수료 우대 등의 대책도 담았다.

이석주 민건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