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일 수입액 비중 68% 차지
- 자체 조달률 60% 중반 그쳐
- 일본 ‘경제 도발’ 빌미 제공

- 대기업-중기 4개 협력 모델 구축
- 자금·입지·세제 등 패키지 지원
- 창원·진주·대구 등 4개 연구소에
- 기업 맞춤형 ‘테스트 베드’ 구축

- 민관 공동 대규모 투자펀드 조성
- 지역 거점대학에 ‘혁신 랩’ 설치
- 산업부 장관 “취약한 소재산업
- 가마우지서 펠리컨으로 키운다”

정부가 5일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해당 분야의 ‘탈일본’을 선언한 배경에는 외풍에 취약한 산업 체질을 개선해 한국 제조업의 혁신 기회로 삼겠다는 전략이 있다. ‘백색 국가서 한국 제외’를 단행한 일본 정부가 국내 산업의 취약한 분야를 집중적으로 공격한 만큼 지금이라도 대외 의존도를 낮춰 경쟁력을 키우면 국내 산업 생태계의 구조적인 취약점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대외 의존형 산업 구조 탈피를 위한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성 장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연합뉴스

■낮은 조달률, 日 ‘경제 보복’ 빌미

산업통상자원부가 이날 발표한 자료를 보면 국내 소재·부품·장비 산업 생산량(금액 기준)은 2001년 240조 원에서 2017년 786조 원으로 3.3배 증가했다. 해당 산업의 수출액도 2001년 646억 달러에서 지난해 3409억 달러(약 414조1500억 원)로 5.3배 늘었다.

하지만 외형적인 성장 이면에는 낮은 수준의 기술 자립도가 자리 잡고 있다. 소재·부품·장비 자체 조달률은 2001년부터 2017년까지 60%대 중반에 머물러 있다. 특히 일본이 ‘타깃’으로 삼은 반도체 산업의 자체 조달률은 지난해 27%밖에 되지 않았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일본 전체 수입액 546억 달러 가운데 소재·부품·장비가 차지한 비중은 68.0%에 달했다.

외적으로는 시장 규모가 눈에 띄게 커졌지만 만성적인 대일 의존도와 낮은 수준의 자체 조달률을 극복하지 못해 일본 정부가 ‘경제 도발’에 나서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게 정부의 냉정한 평가다. 따라서 이번 대책에는 예산·세제·금융·규제 완화 등 사실상 현시점에서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이 담겼다.

정부가 지정한 100대 핵심 전략 품목은 향후 5년에 걸쳐 단기(1년 내, 20개 품목)와 중·장기(5년 내, 80개 품목)로 나뉘어 ‘공급 안정화’가 추진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관계장관 대책 회의에서 “국내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항구적인 경쟁력을 반드시 제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협력 모델 구축 방안도 추진된다. ‘수요 기업과 공급 기업 간’ 또는 ‘수요 기업 간’ 협력 시스템을 만드는 방식이다. 이는 국내 중소기업이 소재·부품·장비를 개발해도 ‘수요자’인 대기업이 기술력 우려 등의 이유로 활용하지 않는 폐해를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협동 연구·개발형 ▷공급망 연계형 ▷공동 투자형 ▷공동 재고 확보형 등 4가지 협력 모델에 자금·세제·규제 완화 등을 패키지로 지원한다.

또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분업적 협력을 위해 경제부총리 산하에 상생협의회를 설치한다. 대기업은 수요 측면에서 중소기업은 생산과 개발 등에서 상생 품목을 만들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성윤모 산업부 장관은 “지금까지는 수요 기업과 공급 기업 간 이해가 달라 연구·개발(R&D)을 시작해 양산까지 연결되기가 쉽지 않았다”며 “설비투자 등을 지원해주는 방식으로 협력 체계 구축을 돕겠다”고 설명했다.

■경남지역 연구소, 실증 장소로 구축

아울러 정부는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기업 맞춤형 실증(테스트)을 지원하고자 ▷재료연구소(본원 기준 경남 창원 소재) ▷한국세라믹기술원(경남 진주) ▷한국화학연구원(대전) ▷다이텍연구원(대구) 등 4개 연구소를 ‘테스트 베드(시험장)’로 구축한다.

민관 공동 투자펀드도 조성된다. 연기금(국민연금 등)과 민간 투자자 등이 참여해 소재·부품·장비 산업에 투자하는 대규모 펀드를 조성하되, 일반 국민도 참여가 가능하도록 해 ‘국민투자 플랫폼’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이들 3개 산업에서 글로벌 전문 기업, 강소기업(규모는 작지만 기술 경쟁력이 우수한 기업),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100개씩 육성한다. 기술 혁신 및 인력 양성을 지원하고자 전국 5개 권역 내 거점 대학에 ‘혁신 Lab(연구소)’을 설치한다. 구체적인 권역은 추후 지정한다.

성 장관은 “국내 소재·부품·장비 산업은 그동안 자기가 잡은 고기를 먹지 못한 채 일본 배만 불리는 ‘가마우지’로 불렸지만, 앞으로는 먹이를 부리 주머니에 넣어와 자기 새끼에게 먹이는 ‘펠리컨’으로 바꿔 국내 전후방 산업을 살찌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석주 기자 sereno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