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들 “건설계획 수립 과정
- 적합한 땅 선택 못 해 사고 발생”
- 단층조사 등 사전준비 소홀 등
- 정부·관련 기관 책임 확인된 셈
- 피해보상 관련 줄소송 예고
- 현재 1300여 명 소송에 참여
역대 두 번째로 규모가 컸던 2017년 경북 포항 지진(규모 5.4)이 정부의 ‘지열 발전’ 사업으로 인한 사실상의 인재로 드러나면서, 관련 부처의 후속 대책과는 별개로 정부 책임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해당 사업이 사전 준비 없이 조급하게 추진된 정황도 있어 손해배상 소송이 줄을 이을 전망이다.
 |
| 정승일 산업부 차관이 20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에서 2017년 11월 발생한 포항지진은 인근 지열발전소가 촉발했다는 정부연구단의 결론에 따라 ‘포항 지열발전 영구 중단’ 등 정부 입장을 발표한 뒤 굳은 표정으로 자리를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
‘포항지진 정부 조사연구단’(이하 연구단)이 20일 내놓은 최종 조사 결과의 핵심은 2년 전 인적·물적 피해를 낸 포항 지진이 자연현상으로 발생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포항 지열 발전소 내 미세 지진이 본진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사실상 ‘인재’로 규정했다. 지열 발전소 건설 사업은 2010년 ‘MW(메가와트)급 지열 발전 상용화 기술 개발’이라는 이름의 정부 지원 연구·개발(R&D) 사업으로 추진됐다. 당시 정부는 총 473억 원(정부 195억, 민간 278억 원)을 투입해 2015년까지 포항에 지열 발전소를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산업부 산하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이 사업 진행 상황을 총괄했고 2012년 9월 25일 포항 북구 흥해읍 남송리에서 기공식이 열렸다.
포항 지진이 발생한 2017년 11월 15일 당시 지열 발전소는 90% 완공된 상태였다. 하지만 정부는 포항 지진 직후 시민단체와 학계를 중심으로 “지열 발전소가 지진의 원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자 사업을 일시 중단했다. 지난해 4월에는 부산대 김광희 지질환경과학과 교수 등이 “포항 지진은 지열 발전을 위한 물 주입으로 생긴 유발 지진일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하기도 했다.
결국 연구단이 이날 발표한 조사 결과를 볼 때 시민단체와 학계의 주장은 사실로 드러난 셈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지열 발전소 건설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철저한 지질 조사로 적합한 용지를 선정했다면 지진 발생을 막는 게 가능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구단장을 맡은 서울대 이강근 교수는 “지열 발전에 적합한 지역은 지질 활동이 활발한 지진·화산대와 일치하거나 가깝다”고 설명했다.
포항 지진이 사실상 인재로 결론나면서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도 지진 및 환경 관련 단체를 중심으로 잇따를 전망이다. ‘포항지진범시민대책본부’는 지난해 10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주택 파손 등 물적 피해를 제외하고 1인당 1일 위자료로 5000∼1만 원을 청구했다. 1300여 명이 소송에 참여했으며 포항시민 전체가 소송에 참여하면 총소송 금액은 5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주무 부처인 산업부에도 비상이 걸렸다. 산업부는 이날 조사 결과 발표 직후 후속 대책을 발표하며 “포항 지열 발전소 완전 폐쇄와 이 사업에 대한 감사원 감사, 정부 조사, 피해 지역의 신속한 복구 등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정승일 산업부 차관은 “포항시와 협조해 현재 중지된 ‘지열 발전 상용화 기술 개발’ 사업을 영구 중단하고, 해당 부지는 전문가와 협의해 안전성이 확보되는 방식으로 조속히 원상 복구하겠다”며 “올해부터 향후 5년간 총 2257억 원을 투입하는 ‘포항 흥해 특별재생 사업’을 통해 주택 및 기반 시설 정비, 공동시설 설치 등을 신속하고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석주 기자 sereno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