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조업 등 1600개 대부분 중기
- 도보 1분거리에 은행 10곳 경쟁
- 부실 우려 적은 우량기업 잡아야
- 주거래은행 충성도 높던 기업들
- 금리 0.1%P 차에도 은행 갈아타

부산 최대의 산업단지인 강서구 녹산산단은 금융권이 벌이는 이른바 기업금융 경쟁의 최고 격전지이기도 하다. 산단 내에 들어선 각 은행의 지점은 기업금융 경쟁의 첨병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유례 없는 경기 침체를 겪고 있는 지역 산단의 기업금융 경쟁은 역설적이게도 더 치열해지고 있다. 부실 발생 가능성이 있는 기업들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부실 가능성이 적은 우량 업체를 선점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와 중소기업 지원정책 강화도 은행 간 이런 경쟁이 더 독해지게 하는 요인이다.

	녹산산단이 금융권 중소기업 대출 시장의 최대 격전지로 다시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31일 부산 강서구 녹산산단 내 은행 지점들이 모여 있는 전경 모습. 서순용 선임기자

31일 부산 강서구 녹산산단 내 부산지방중소벤처기업청을 중심으로 도보 1분 거리에 은행 지점들이 한꺼번에 모여 있다. 부산은행 경남은행 산업은행 기업은행 국민은행 하나은행 등 10여 곳에 달한다. 녹산산단에는 1600여 개 업체가 입주해 있으며, 대부분 중소기업이다. 조선업 및 자동차, 공장 기계 등의 납품업체가 많다. 영업 현장 최일선에 있는 녹산산단 내 은행 지점장들은 지역 경기를 몸소 체감한다.

“녹산산단이 생기고 나서 가장 어려운 시기에 은행 지점장으로 와서 많이 힘들겠소.” 부산은행 우봉우 녹산중앙지점장이 지난해 초 이곳으로 발령받은 뒤 기업 대표들에게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었다. 우 지점장은 “주력업종인 제조업 등의 불황으로 2013년 이후 지역 경기가 점점 안 좋아져 올해 저점을 찍은 것 같다. 예전에는 적극적으로 권유하지 않더라도 기업 대표님들이 스스로 예·적금을 하고 신규 투자를 위해 대출 문의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현재는 정 반대”라고 설명했다.

중소기업지원이 강점인 기업은행의 김도진 행장은 신년사에서 “가계대출 규제와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정책 강화로 경쟁은행 모두가 중소기업대출 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다”고 위기감을 드러낼 정도였다. 경기가 호황일 때는 기업들의 주거래은행에 대한 충성도가 높았다. 하지만 현재 녹산산단 기업들은 대부분 여러 은행과 복수거래를 하는 추세다. 우 지점장은 “기업 자금 사정이 어렵다 보니 대출 금리가 0.1%포인트라도 낮은 은행으로 갈아타는 분위기”라며 “고객이 필요한 시기에 자금을 지원해주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영업점장 전결이 가능한 경우에는 최대한 빨리 처리해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국민은행 한 관계자는 “녹산산단의 경우 경기 하락으로 기업의 재투자가 일어나지 않고 있어 은행 간 경쟁도 심화된 상태”라며 “우량기업에 대한 지원과 기술력이 우수한 기업들의 시설 확장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업은행 이원기 녹산중앙기업금융지점장은 “경기가 좋은 때와 비교하면 영업 환경이 팍팍해졌다”며 “경기 악화로 기업의 신용등급이 몇 단계씩 떨어진 사례가 많아 먼저 신용등급부터 올리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고 말했다.

김미희 기자 maha@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