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마케팅·시장분석 회사 다니다
- 비누 만들던 부친 부름 받고 부산행

- 안전성 최우선 유아용품에 도전장
- 이동국 아들이 기저귀 사용해 유명
- 성분·소재 비교하는 앱 개발 의욕도

29일 부산 한 커피숍에서 비누·유아용품을 제조해 판매하는 ‘동서씨앤지’ 여건수(39) 이사를 만났다. 여 이사는 ‘1998년 6월 24일’ 설립된 동서씨앤지를 소개했다. 날짜까지 똑 부러지게 소개하는 그의 모습에서 꼼꼼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기 때문에 안전해야 하는 비누나 유아용품을 만들다 보니 꼼꼼함이 자연스레 몸에 밴 것 같았다. 여 이사는 “사람이 쓰는 제품이라 우선 안전해야 한다. 그렇다 보니 제품을 만들 때 신경을 아주 많이 쓰고 있다”고 말했다.

동서씨앤지는 여 이사의 아버지인 여인웅(75) 대표가 설립했다. 여 대표는 부산 동구 범일동에서 비누를 만들던 동산유지공업의 기술 임원이었다. 지금도 인기를 끌고 있는 오이 비누, 인삼 비누 등이 여 대표의 기술에서 탄생했다. 동산유지공업이 IMF 경제 위기로 휘청거리자 안타까움을 느낀 여 대표는 비누공장을 인수해 경남 양산에서 동서씨앤지를 설립했다. 동서씨앤지는 비누 외에도 유아용품인 기저귀, 천연비누, 물티슈 등을 생산해 판매하고 있다.

■ 경영 2세의 끊임 없는 고민

	동서씨앤지 여건수 이사가 29일 부산 한 커피숍에서 “유아가 쓰는 제품은 안전이 최우선이다”고 강조하고 있다. 전민철 기자

부산이 고향인 여 이사는 호주 퀸즐랜드대학교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국내로 돌아와 사회여론조사, 기업 마케팅, 시장분석 등을 하는 ‘리서치앤리서치’(서울 소재)에 입사해 기업 마케팅을 맡았다. LG 등 국내 대기업은 물론 외국 기업까지 다양한 제품의 마케팅을 경험했다. 5년 정도 경험을 쌓은 여 이사는 2011년 부친의 부름을 받아 부산으로 왔다. 나이가 많았던 여 대표는 여 이사에게 회사를 물려주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여 이사는 7년째 아버지로부터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여 이사는 수차례 고민에 빠졌다. 장인 정신으로 무장한 아버지는 45년째 비누 하나만 바라보고 살았다. 공장의 냄새를 맡거나 소리만 들어도 어떻게 돌아가는지 다 파악하는 게 가능했다. 비누 제조 기술에서 아버지를 따라올 사람이 없다. 여 이사는 이 정도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자신도 긴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지 의문을 품었다. 차라리 그 시간에 다른 아이디어를 내거나 영업을 뛰는 게 맞는 것 같아 딜레마에 빠지기도 했다. 또 비누 대신 핸드워시나 클렌징폼을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게 되자 제품 다각화에 대한 고민도 함께했다. 그래도 고집스럽게 고형 비누를 만드는 아버지를 보면 답답함을 느꼈다.

하지만 여 이사는 이제 아버지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20년 전 아버지와 비누로 경쟁하던 업체는 거의 사라지고 없었다. 비누에 대한 아버지만의 기술력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비누의 품질을 인정받아 15년째 롯데마트·슈퍼와 함께 PB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여 이사는 “다각화를 좇다가 오히려 사라진 회사가 많았다. 아버지의 기술력이 대단하다는 걸 깨닫고 이제는 장인 정신을 본받고 싶다”고 말했다.

■ ‘대박이 기저귀’로 대박

	중국의 한 프리미엄 매장에서 판매 중인 동서씨앤지의 비누. 동서씨앤지 제공

아버지와 함께 경영하던 여 이사는 아이 셋을 기르면서 유아용품에 눈을 떴다. 아이들을 위한 기저귀, 세제 등 유아용품을 사다 보니 국산 제품이 거의 없었다. 유럽 제품이 많았다. 여 이사는 해당 제품들이 정말 유럽에서도 인기가 많은 제품인지 의문을 느꼈다. 친환경적이고 안전하다는 독일산 세제에 대해 독일 친구에게 직접 물었다. 독일 친구의 답변은 예상 밖이었다. 아예 제품 자체를 몰랐다. 국내에서는 친환경 세제로 입소문이 나 있지만 독일 내에서는 인지도가 거의 없는 제품이었다.

이런 경험 속에서 여 이사는 국내 기술력으로 정말 좋은 유아용품을 만들고자 결심했다. 2016년 ‘르소메(LE SOMMET)’라는 프리미엄 유아 용품 브랜드를 만들었다. 첫 제품은 기저귀였다. 르소메 기저귀는 한 팩에 2만7000원 정도로 현재 시중에서 판매되는 기저귀 중 1, 2위에 오를 만큼 비싸다. 가격만큼 아이를 위해 안전하고 좋은 품질로 만들어졌다. 기저귀를 감싸고 있는 포장지도 유해물질을 차단하기 위해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안전한 비닐을 사용했다. 2016년 지상파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축구선수 이동국의 아들 ‘대박이(본명 시안 군)’가 르소메 기저귀를 입고 나오면서 유명해졌다. 일명 ‘대박이 기저귀’라 불리는 르소메 기저귀는 아기를 가진 엄마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여 이사는 앞으로 유아용품의 성분, 소재 등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비교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유아용품이다 보니 특히 안전성에 의문을 가지는 부모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여 이사는 “국내에는 아직 유아 관련 제품을 생산하는 세계적인 기업이 없다. 특히 부산 경남에는 전혀 없다. 르소메 브랜드를 평생 브랜드라 생각하고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브랜드를 만드는 게 앞으로 꿈이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진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