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하기 0.4.’ 지난 주말 이사할 집을 알아보러 다니며 되뇌인 말입니다.
‘8·2부동산대책’에서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서울은 집을 살 때 대출 한도라고 할 수 있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 40%가 적용됩니다. 3억 원짜리 주택을 담보로 돈을 빌릴 수 있는 최대금액은 1억2000만 원(3억 원×0.4)이 되는 셈입니다.
부산은 해운대·연제구 등 일부 청약조정대상지역에 한해 60%, 나머지 지역은 70% 가 적용됩니다.
출퇴근 시간을 줄여보려고 출입처 근처에 집을 알아보니 대출 없이 사는 것은 불가능하더군요. 발품 팔며 돌아다니는 내내 ‘몇 억 곱하기 0.4’ 계산기를 두드리다 한숨 쉬고 ‘곱하기 0.4’하다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살고 싶은 곳의 집값과 제가 받을 수 있는 대출금액 사이에 마치 태평양이 놓여 있는 것 같았습니다.
얼마 전 금융위원회가 있는 서울정부청사 앞에서 현수막 들고 시위하던 분들이 떠올랐습니다. 정부의 부동산대책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분들이었습니다.
저 역시 부동산투기는커녕 아이가 생기면서 변두리 12평 빌라에서 시내 조금 더 큰 집으로 옮겨보려는 실수요자라고 생각하는데, 돈줄이 막히니 답답한 심정이었습니다.
실제로 주택담보대출을 옥죄자 신용대출, 개인사업자대출 등에서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전체 은행권의 가계 주택담보대출 증가액(3조1000억 원)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절반 수준으로 줄었지만, 신용대출(3조4000억 원)은 사상 최대 폭으로 늘었습니다. 사업자대출(2조9000억 원)도 최근 폭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에 금융감독당국은 강화된 대출 규제를 우회한 편법대출이 있는지 점검에 나설 예정입니다.
지난 18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대출규제와 관련된 지적이 나왔습니다. 이진복 정무위원장이 최종구 금융위원장에게 “실수요자인 젊은 부부의 아파트 구매 시기가 LTV 때문에 최소 5년 이상 늦어지게 됐다고 한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최 위원장은 “그런 사례보다 더 중요한 게 집값 급등을 막는 것”이라고 답변했습니다. 그는 “예전보다 대출받기 어려워진 게 사실”이라면서도 “일단 집값이 뛰지 않도록 하는 게 장기적으로 이분들한테…(이익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문제는 대출한도가 아니라 ‘미친 집값’일 겁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서울 시내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올해 3월 6억 원을 넘긴 뒤 지난달 6억3600만 원을 기록했다고 하니까요. 당장 집값이 잡혀 제가 혜택을 보기는 어렵겠지요. 그러나 조만간 태어날 제 아이는 저처럼 집값, 대출한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박지현 기자 anyway@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