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빨간 원피스와 재킷이었습니다. 180㎝를 넘는 키, 은발머리의 그가 기자회견장에 들어설 때말입니다. 트레이드마크인 스카프는 흰 바탕에 형형색색의 나비 무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의 스카프는 패션뿐 아니라 메시지를 전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죠. 그를 본 순간 ‘파워 드레싱(Power Dressing·부와 권력 등을 갖춘 이들이 자신의 지위와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입는 격식 있는 복장)’이란 말이 단박에 이해되더군요. IMF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 이야기입니다.
지난 1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라가르드 총재의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6박 7일의 한국 일정을 마무리하는 자리였습니다. 기자들이 질문을 하기 위해 손을 들자 그가 이런 제안을 합니다. “여성, 남성, 여성, 남성. 이렇게 질문하는 것에 동의해주시겠습니까.” ‘여성으로서 처음’의 역사를 써내려 간 그의 이력이 떠올랐습니다. 미국 로펌 베이커 앤 매킨지 첫 여성 회장 겸 CEO, 프랑스 첫 여성 재무부 장관을 거쳐 2011년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IMF 수장에 올랐지요.
라가르드 총재는 이번 방한 기간 동안 여러 차례 여성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발언을 내놓았습니다. 물론 단순히 그가 여성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지난 7일, IMF,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피터슨연구소(PIIE) 공동 주최로 열린 국제회의에서 그는 고령화로 경제 생산성이 떨어지는 데 대응해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효과가 있었던 방안은 여성노동력의 비율을 높이는 것”이라면서 “노동시장에서 성별 격차를 메우는 것으로 국내총생산(GDP)을 일본에서 9%, 한국에서 10%, 인도에서 27%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올해 한국경제를 낙관하면서도 육아 등 여성의 경제활동을 뒷받침할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라가르드 총재는 한국경제 성장률에 대해 “올해 3.0%, 내년 3.0%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경제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강한 회복력을 보였고 앞으로도 견고하게 성장할 것이다”면서 “육아, 노인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 이는 성장에 도움을 주고 사회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고 했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문재인 정부가 강조하는 소득 주도 성장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습니다. “프랑스 재무장관 시절을 생각해보면 균형과 신중을 기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수요를 창출하는 정책인데 그렇게 하려면 공급도 같이 맞춰져야 한다. 이런 조치들은 경제성장 속도에 맞춰 진행해야 한다. 그리스에 ‘천천히 그리고 빠르게’라는 말이 있다.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안정적 진행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회견장을 떠나는 그의 뒷모습에서 강렬하게 붉은 대지 위에 사뿐히 내려앉은 나비의 날갯짓이 떠오릅니다. 박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