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몸집키우기’ 세계적 추세
- 日·대만은 실천, 한국은 외면
- 글로벌 대형화 흐름에 역행
- 경쟁력 강화 ‘공허한 외침’
- 국적선사 선복 늘려야 생존
국적선사 한진해운은 지난해 8월 31일 법정관리에 들어간 후 이듬해 2월 최종 파산 처리됐다.40여 년간 글로벌 선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우리나라 해운산업을 떠받쳐 온 세계 7위 국적선사가 해운 특성을 모르고 금융논리만 고집해온 금융당국자와 채권단의 오판과 해양수산부 관료들의 무대책 속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당시 해운산업 구조조정을 총괄했던 금융위원회는 한진해운 법정관리 신청 직후 컨테이너 선박과 물류 네트워크, 인력 등 핵심자산을 또 다른 국적선사인 현대상선에 넘겨주고 경쟁력을 최대한 보전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글로벌 물류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왜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갔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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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1월 부산항만공사 회의실에서 열린 한진해운 사태 관련 세미나에서 세계적인 해운물류분석관인 덴마크 씨인텔의 CEO 앨런 머피 씨가 한진해운 사태가 주는 교훈에 설명하고 있다. 이흥곤 기자 |
■한진해운 법정관리는 최악의 선택
실제 두 달 뒤인 11월 부산에서 열린 ‘부산국제항만콘퍼런스’에 참석한 세계적인 해운물류분석기관인 덴마크 씨인텔의 최고경영자 앨런 머피 씨는 “누가 잘못했는지는 모르지만 채권자로선 최악의 선택을 했다”며 “정기 원양선사를 이렇게 파산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한진해운 사태가 주는 교훈”이라고 말했다. 머피 씨는 이어 “현재 선복량을 고려할 때 앞으로 세계 해운시장을 주도할 선사는 8개 정도가 적정 수준이 될 것”이라고 제시했다.
영국의 해운물류분석기관인 영국 드류어리의 팀 파워 이사도 같은 날 “현재 상위 15위권 선사들이 합병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는데, 왜 한국의 한진해운과 현대상선만 그런 기회를 놓쳤냐”고 오히려 되물었다.
한진해운 사태 1년이 지난 지금, 한국 해운업은 글로벌 해운시장에서 변방으로 밀려났다. 한 물류전문가는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글로벌 전문가들이 M&A(인수합병)로 인한 몸집 불리기가 정답이라는 쪽집게 과외를 했는데도 정부는 이 점을 간과해 결과적으로 1년간 표류를 계속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국내 한 해운물류 전문가는 한진해운 파산은 선사의 대형화라는 글로벌 흐름에 역행한 것으로 분석했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해외 선사들은 정부 지원에 힘입어 대형화를 가속화했다. 규모가 크고 정기노선이 많을수록 화주들을 상대로 한 운임협상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전문가들의 쪽집게 과외는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라이벌이자 선복량(적재용량)이 비슷한 선사를 보유한 일본과 대만이 먼저 실천했다.
한진해운 사태를 반면교사 삼아 일본정부는 한진의 법정관리 신청 두 달 만인 지난해 10월 말 3대 원양선사인 NYK(60만7000TEU·1TEU는 6m짜리 컨테이너 1개) MOL(51만2999TEU) K-라인(36만8000TEU)을 합병하기로 결정했다. 이어 8개월여 만인 지난달 초 합병을 마무리하고 단숨에 세계 6위권 선사로 발돋움하며 중복 노선들의 재편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 합병으로 선복량이 43만6000TEU 수준인 현대상선의 3.4배로 커졌다.법정관리 신청 전 한진해운 선복량은 61만7000TEU였다.
대만정부도 지난해 11월 원양선사 양밍(58만5000TEU)이 적자가 누적돼 붕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해운업에 2조2000억 원을 투입하는 것을 골자로 한 해운업 지원 종합대책을 발표해 양밍을 살렸다. 하지만 실적이 기대치에 못 미치자 최근 또 다른 선사인 에버그린(104만5000TEU)과의 합병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복 안 늘리면 해운 회복 공염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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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항만공사 사옥 로비에는 한진해운의 모형 컨테이너선은 사라지고 현대상선(사진 ①)과 머스크의 모형 컨선(사진 ②)만 전시돼 있다. 한진해운 모형 컨선(사진 ③)은 현재 부산신항 3부두 한진터미널(HJNC) 건물 1층 로비에 남아 있다. 국제신문DB |
글로벌 선사들의 몸집 불리기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세계 1위 덴마크의 머스크는 현재 함부르크쉬드를 인수하기 위해 작업 중에 있고, 중국의 국영기업인 코스코도 또 다른 국영기업인 CSCL과 합병 이후 ‘빅4’에 이름을 올렸다.
앞으로 글로벌 해운시장은 선복량이 100만TEU 이상인 7개 선사가 시장을 주도하는 새 체제가 자리잡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국적선사인 현대상선과 SM상선이 최근 부산항에서 처리하는 물량을 꾸준히 늘리고 있지만 선복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한진해운의 공백을 메우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반면 한국은 한진해운 사태 이후 지난해 10월 정부가 내놓은 ‘해운업 경쟁력 강화 방안’과 최근 발표한 한국해양진흥공사 설립 방안 그 어느 곳에도 국적선사들의 M&A에 대한 언급조차 없다. 이동현 평택대(국제물류학과) 교수는 “ 해운산업이 앞으로 회복하려면 한진해운을 대체할, 외국선사들이 부산항에서 눈치를 볼 정도의 강력한 국적 원양선사가 필요하다”며 “정부가 지금부터라도 인수합병을 유도하는 정책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흥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