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충제 계란’ 농장 대부분이 친환경 농장인 것으로 조사되면서 이를 믿고 비싼 값에 계란을 사먹었던 소비자들이 분노와 배신감을 쏟아내고 있다.

17일 부산 연제구 이마트 계란 코너를 찾은 한 고객은 한참을 서서 제품을 이리저리 살폈다. 특허청 동물복지 무항생제 HACCP 등 각종 인증 마크를 훈장처럼 붙여놓은 제품을 집어 든 고객은 포장을 벗기고 계란 껍데기에 찍힌 생산지 표시도 살피기 시작했다. 그는 “이번에 살충제 계란이 검출된 이후 제품마다 붙은 인증 마크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며 “집에 아이들이 있어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친환경’ 제품을 샀는데, 이제는 내가 직접 여러 정보를 찾아보고 꼼꼼하게 따져볼 수밖에 없다”며 불평했다.

이날 정부 조사에 따르면 현재까지 살충제 계란이 검출된 농가 66곳 중 63곳이 친환경 인증을 받은 농가인 것으로 나타났고, 기준치 초과로 판매 부적합 판정을 받은 32곳 중 90%에 가까운 28곳이 친환경 인증 농가다. 현재 전국에 있는 산란계 농가 총 1456곳 가운데 53%가 친환경 인증 농가라는 점을 고려해도 검출 농가 비중이 훨씬 크다.

경남 양산에서 산란계 농장을 운영하는 A 씨는 “원래 노계가 도태되면 케이지를 비우고 강도 높은 살충제를 뿌려야 하는데, 친환경 계란이 인기가 많고 산란계 사이에 진드기 등이 생기면 산란에 문제가 생기다 보니 약을 써왔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의 부실한 친환경 인증제도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 친환경 인증은 정부의 위탁을 받은 민간업체 62곳에서 대행하고 있으며,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국립농산물관리원은 인증 업무를 제대로 처리했는지 사후관리만 한다. 이렇게 친환경 인증을 받은 제품은 배 이상의 값으로 팔리고, 농가는 정부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친환경 인증제도가 부실하게 남발돼 온 이유다. 실제 한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계란 제품 10여 종 가운데 대부분은 무항생제, HACCP 등 인증 마크가 붙어 있었다. 인증 마크가 없는 제품을 찾기가 힘든 가운데 가장 싼 일판란과 유기농 방사 유정란은 같은 30구인데도 가격이 각각 7080원, 2만1500원으로 3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농가는 친환경 인증을 받으면 3~5년 동안 한 알에 1~10원까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살충제 계란 사태의 근본적 원인은 밀식 사육이라 볼 수 있지만 친환경 농가에서 생산된 계란에서도 살충제가 검출된 데 대한 소비자들의 배신감이 크다”며 “정부가 근본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승희 기자 shchoi@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