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기장군 일광면 동백리에 있는 동백해녀복지회관의 모습. 이승륜 기자

- 60대 이상이 90% 고령화 심각
- 갈수록 인원 줄어 현재 900명
- 실제 종사자 수는 훨씬 못 미쳐
- 젊은층 유입 끊겨 40대 3명뿐
- 해녀복지회관 등 시설도 빈약

부산은 작가 오영수의 소설 '갯마을'(1953년 발표)의 배경 무대가 될 정도로 여성 나잠어업(해녀 어획물 채취업)의 역사가 깊다. 작품의 주인공 해순이는 부산 기장에 원정 물질을 왔다가 눌러앉은 제주 해녀의 후예다. 말똥성게 채취가 한창인 부산 앞바다에 해순 후예들의 숨비소리(물질 뒤 가쁘게 내쉬는 숨소리)가 가득해야 하지만 이 소리를 이어갈 해녀가 매년 줄고 있다.

이런 와중에 고령화와 해녀 부족에 시달려온 지역 나잠어업계에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25년 동안 묶여있던 부산 나잠어업 신규 허가가 기장군을 중심으로 재개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부산 기장군이 이르면 다음 달부터 신규 나잠어업 신규 허가 접수를 재개할 예정이라고 12일 밝혔다. 현재 부산 내 해녀가 있는 7개 구·군은 나잠어업 신규 필증 발급을 하지 않고 있다. 1990년대 초 부산시가 지역 개발 관련 보상을 둘러싼 혼선을 막고 어장을 보호할 목적으로 신규 허가 불허 지침을 각 구·군에 내려 현재까지 지켜져 왔기 때문이다. 그러다 지난해 기장지역 일부 어민들이 신규 허가를 요청하는 내용의 행정심판 소송을 기장군을 상대로 제기했고, 부산고등법원은 같은해 8월 1심과 이번달 진행된 2심에서 잇따라 원고 승소 결정을 내렸다.

그 여파가 부산 전역에 미칠 것으로 기대되면서 사라질 위기에 처한 부산 해녀문화의 명맥을 이어가야 한다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이에 본지는 현 부산 내 나잠어업 문화(해녀문화)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될 인프라를 점검하고, 활용 방안을 모색한다.

■있어도 쓸모 잃은 해녀문화 공간

12일 부산 기장군 일광면 동백리 동백 해녀복지회관 2층. 열린 공간에 들어가니 덩그러니 칠판 한 개뿐이다. 주방 싱크대도 사용한 지 오래된 듯 물이 말라 있었다. 어디를 봐도 인기척이 없었다. 기장군이 2010년 해녀 여가와 어획물 손질, 휴식을 위해 마련했지만, 현재는 어촌계 사무실 사용이 고작이다. 그나마 탈의실 활용이 기대됐으나 대다수 해녀가 채취물을 갖고 집에서 옷을 갈아입는다고 한다.

인근 작업장은 말똥성게 껍질 벗기기가 한창이다. 한 해녀는 "말똥성게 조업 철이라 바쁘다"며 "바다 물질이 없는 날은 육지 일을 해야 하니까 회의 때를 제외하고 대부분 비어 있다"고 말했다. 기장군은 이런 해녀복지회관 6개를 3~5년 전 구·시비 3억~4억 원을 들여 마련했다. 이달 추가로 1곳이 지어진다.

해녀 역사가 깊은 영도구 동삼·남항어촌계에는 152명의 해녀가 있지만, 복지관 등 명맥을 이어갈 시설이 전혀 없다. 구 차원에서 동삼동 중리 연안정비사업의 하나로 해녀 문화·역사관 판매장을 갖춘 체험관을 구상했지만, 예산 확보를 못해 수년째 표류하고 있다. 반면 기장군은 올해 5~9월 부산시와 해녀문화 체험 프로그램 사업(예산 2500만 원)을 공동 추진한다.

■제주 원정 해녀 후예 발굴 관건

동삼어촌계 한만자 해녀회장은 "영도는 제주 해녀의 명맥이 있지만, 구전뿐"이라고 푸념한다. 해녀복지회관 등 문화 인프라가 있으면 좋지만, 해녀 대부분이 나이가 많아 실질적인 참여가 어렵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2011년 998명이던 부산 해녀 수는 현재 900명까지 줄었다. 40대(3명), 50대(77명), 60대(384명)에 이어 70대 이상(436명)이 가장 많다. 해녀가 가장 많은 기장군(553명)이 60대(253명), 70대(240명) 수가 압도적이다. 고리원전 등 보상 여지가 있다 보니 상당수가 고령으로 허가만 유지하고 있다는 게 부산시 설명이다. 실제 나잠 어업자 수가 허가 건수보다 훨씬 못 미치는 이유다.

이처럼 지역 개발로 인한 보상문제가 얽혀 부산은 공식적으로 신규 어업 신고를 받지 않는다. 젊은 해녀 유입 중단은 결국 해녀 문화의 빈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오늘날 오영순의 '갯마을' 속 제주 해녀의 3세대 후예는 50대다. 이들 상당수가 바다 대신 도시를 택했다. 그나마 이들을 볼 수 있는 곳이 태종대 끝자락의 자갈마당이다.

이곳에서 두 딸 내외와 식당을 운영하는 홍금옥(91) 씨는 "제주에서 남편을 따라 나와 76세까지 물질을 했다"며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갈 때 '이어도사나'를 불렀는데, 50대 딸들에게 가르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