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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폐 하나로 일군 현대중공업…왕회장 無에서 有의 길 닦다

故 정주영 회장 탄생 100주년

  • 방종근 기자 jgbang@kookje.co.kr
  •  |   입력 : 2015-11-24 20:03:56
  •  |   본지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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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현대중공업 선박 건조 현장을 찾아 근로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현대중 제공
- "우린 수백 년 전에 철갑선 건조"
- 지폐 거북선 보이며 외국 돈 빌려
- 미포에 세계 최대 조선소 육성

- 트럭 고치던 시절 현대차 만들고
- 유조선 가라앉혀 서산 간척해
- 불굴의 도전, 산업수도 울산 키워

1971년 어느 날 세계적인 선박 컨설턴트사 A&P애플도어의 찰스 롱보텀 회장 앞에 한국에서 온 건장한 체격의 한 중년 남자가 앉아 있었다. 이 남자는 롱보텀 회장에게 조선소를 건설할 거액의 돈을 빌려 달라고 했다. 액수는 당시 우리나라 1년 예산의 절반인 4500만 달러.

옛 500원권
배를 만들어본 경험이 전무한 그에게 "뭘 믿고 당신에게 돈을 빌려주겠느냐"는 롱보텀 회장의 퉁명스러운 답변이 돌아왔다. 그러자 그는 울산 미포만이 그려진 5만 분의 1지도와 함께 주머니에서 500원짜리 지폐를 꺼내 보여주었다. 이미 수백 년 전 철갑선 거북선을 건조한 나라라는 의미였다. 오늘날 세계 최대 조선소가 된 현대중공업(당시 현대조선)은 이렇게 탄생했다. 이 기업인은 아산(峨山) 정주영(1915~ 2001)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다.

■불가능은 없다…신화의 연속

25일은 정 명예회장 탄생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는 지금의 대한민국과 산업수도 울산을 만든 기업인이다. 특히 경제가 침체되고 수출 여건마저 악화되고 있는 요즘 그가 보여준 불굴의 도전 정신은 많은 이에게 다시 회자되고 있다. 그는 무에서 유를 창조했고, 불가능을 가능케 했다. 아무도 가려 하지 않는 길을 갔고, 목표를 달성하면 또 다른 목표를 찾아 나섰다.

자동차라고는 미군 트럭을 개조한 게 고작이던 시절(1967년) 그는 과감하게 울산에 현대자동차를 만들었다. 현대차는 현재 세계 자동차업계의 '빅5'로 성장했다. 1976년 수주 당시 '20세기 최대 역사'로 일컬어지는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공사는 정주영 도전 정신의 백미다. 공사비 절감을 위해 항만 공사에 쓸 철제 구조물(재킷)을 울산에서 만든 뒤 바지선에 싣고 예인선으로 끌어 태평양과 인도양을 가로질러 실어 날라 경쟁했던 각국 건설사를 경악게 했다.

1984년 충남 서산간척지 물막이 공사는 신화의 완결판. 거센 물살로 10t이 넘는 바위가 바다로 쓸려가 버리자 그는 해체를 앞둔 유조선을 가라앉혀 물살을 잠재우는 기발한 공법을 생각해냈다. 이 공법은 '정주영 공법'으로 불리며 실제 토목학 교재에도 소개돼 있다.

그는 초등학교밖에 마치지 않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출발해 중단 없는 노력으로 세계 굴지의 기업들을 일궈냈다. 하지만 그는 항상 검소한 생활로 주위의 귀감이 됐다. 현대중공업 내 홍보관에는 정 명예회장이 생전에 수십 번 굽을 갈아 신었다는 낡은 구두와 자전거 등이 전시돼 있다. 서울 청운동 자택은 물론 그가 울산에 오면 머물던 동구 서부동 사택도 대기업 총수의 집이라고 보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비좁고 낡았다.

■대기업 총수답지 않은 검소함

1980년대 초 아산이 코엑스 내 현대그룹 전시관을 둘러보고 있는 모습. 현대차 제공
김란동 전 현대건설 상무의 회고담이다. "왕회장(정 명예회장의 별명)은 불시에 현장을 자주 방문했어요. 그래서 항상 안전모와 안전화를 준비해놓고 있었는데 치수가 매우 커 일반인이 착용하기 어려울 정도였죠. 현장소장들이 일반 침대를 쓰는 것을 보면 불벼락이 떨어졌습니다. 회장 자신부터 항상 군용 야전침대를 사용했지요. 검소함이 체질화돼 있는 분이었어요."

정 명예회장과 울산은 떼려야 뗄 수 없다. 그로 인해 오늘의 울산이 있고, 울산은 그가 만든 현대그룹의 메카 역할을 했다. 그가 울산에서 주로 활동한 시기는 1970년부터 1990년 말까지다. 이 기간 그는 현대차와 현대중공업 외에도 10여 개가 넘는 회사와 공장을 울산에 세웠다. 이뿐만 아니라 중·고교와 대학교를 설립해 지역 교육 기반을 탄탄하게 다졌다.

울산과 현대의 연결고리 중심에 그가 있었다. 또 울산이 대한민국 산업수도로, 현대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것도 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 명예회장의 업적을 기려 울산시는 1996년 개통된 현대자동차 해안도로를 이후 '아산로'로 개명했다. 2012년에는 울산대에 아산리더십연구원이 문을 열었고, 이 대학 경영학부 전공수업에는 '정주영 경영학'과 '정주영과 기업 정신'이라는 과목이 개설됐다.

울산에서는 25일 현대예술관에서 '정주영 탄생 100주년 기념 KBS 교향악단 초청연주회'를 개최하고 울산박물관에서 아산의 생전 활동상을 담은 사진전이 이날부터 내년 1월까지 열린다. 또 울산대 아산리더십연구원에서 심포지엄과 특강, 논문 발표회 등 기념사업을 진행한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 주요 연보

1915년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 출생

1938년 쌀가게 경일상회(서울 신당동) 개업

1950년 현대건설 주식회사 설립

1967년 현대자동차 주식회사 설립

1972년 울산 미포만 조선소(현대중) 기공

1976년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항만 건설 수주

1984년 서산 간척사업 물막이 공사

1992년 통일국민당 창당. 대선 출마

1998년 소 떼 몰고 방북

2001년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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