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동생인 신선호 일본 식품회사 산사스 사장이 31일 오후 선친의 제사를 마치고 서울 성북동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의 집을 나서며 기다리고 있던 취재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 어제 오너일가 한자리…反 신동빈 연대?
- 가족회의 없었지만 신격호 뜻 공유 추정
- 장남측, '차남 해임' 아버지 육성녹음 공개
- 신 사장 "차남이 회사 경영권 탈취로 여겨"

- 후계자 진흙탕 싸움에 국내경제 악영향
- 신성장 사업 등 차질 "재벌민낯" 비난도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에서 절대 우위가 예상된 신동빈(60) 롯데그룹 회장이 점차 수세에 몰리고 있다. 차남 신 회장을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직에서 해임했다는 신격호(94)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육성 녹음파일이 공개됐다. 신동주(61)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을 한국 롯데그룹 회장으로 임명한다는 내용의 신격호 총괄회장의 직인이 찍힌 임명장이 공개됐다. 선친의 제사 참석을 위해 이날 귀국한 신 총괄회장의 동생인 신선호(82) 일본 산사스 사장도 신 총괄회장은 장남인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을 후계자로 생각해왔다고 밝히는 등 신 회장을 제외한 롯데그룹 오너 일가가 '반(反)신동빈' 전선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롯데그룹의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왕자의 난'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가족회의 안 열려…"신격호, 동주가 후계자"

31일 재계에 따르면 롯데그룹 오너 일가는 신 총괄회장의 부친 신진수 씨의 제삿날인 이날(음력 6월 16일) 저녁 신 전 부회장의 성북구 성북동 자택에서 그룹 일가가 한자리에 모였다. 당초 이날 제삿날 모인 롯데일가가 가족회의를 열 것으로 예상됐으나 별도의 가족회의 없이 제사만 지낸 것으로 확인됐다. 제사에는 신 총괄회장은 물론 신 전 부회장, 장녀인 신영자 롯데복지재단 이사장, 신동인 롯데자이언츠 구단주 직무대행도 참석하지 않았다.

이날 제삿날에는 신정희 동화면세점 사장의 남편인 김기병 롯데관광 회장이 도착해 신 전 부회장의 자택안으로 들어갔고 신 총괄회장의 동생인 신준호(74) 푸르밀 회장도 부인 한일랑 여사와 함께 찾았다.

신선호 일본 산사스 식품회사 사장은 이날 오후 9시20분께 제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아무 말 없이 제사만 지냈다. 회의도 안 했다"면서 "(신 총괄회장이 신 회장에게 격노하고 있느냐는 물음에) 그렇다. 보통이 아니다"고 말했다. 신선호 사장은 이어 "신영자·신동인은 물론 신동주 전 부회장도 오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신 총괄회장의 부인 시게미츠 하츠고 여사도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롯데그룹 안팎에선 이날 제사에 참석하지 않은 반신동빈 핵심 인사들은 신 총괄회장이 머무는 롯데호텔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롯데그룹 후계 분쟁에서의 핵심 당사자인 이들은 신 총괄회장 곁에 모인 걸 계기로 자연스럽게 의견을 나눴을 것으로 보인다. 정식으로 가족회의는 열리지 않았을지라도 신 총괄회장의 뜻을 공유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날 KBS를 통해 공개된 "신동빈을 그만두게 하라"는 신 총괄회장의 육성 녹음과 신 전 부회장을 한국 롯데 회장으로 임명한다는 지시서가 공개된 점으로 미뤄 신 회장의 퇴진 문제가 심도있게 거론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실제로 신선호 사장은 이날 오후 7시께 선친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신 전 부회장 자택을 찾았다 기자들과 만나 "신 총괄회장은 오래전부터 장남인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을 후계자로 생각해왔다"고 말했다. 신 사장은 "신 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에 취임한 것 역시 신 총괄회장의 뜻이 아니다"면서 "신 총괄회장이 아들 신 회장에게 경영권을 탈취당한 것으로 여긴다"고 덧붙였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자신을 한국 롯데그룹 회장으로 임명한 문서를 공개했다. 이 문서는 지난 15일 신동빈 회장이 롯데홀딩스 대표이사로 취임한 지 이틀만에 만들어진 문서다. 신 전 부회장은 지난 27일 롯데홀딩스 이사직에서 신 회장 등을 해임한 것이 아버지의 뜻이라는 녹음파일도 공개했다.

■롯데 혼돈 속으로…분쟁해결 장기화 가능성

재계 일각에서는 신선호 사장의 말처럼 신 총괄회장의 판단 능력이 신뢰할 만한 수준이고 그가 장남인 신 전 부회장을 그룹의 후계자로 여기고 있다면 이번 싸움에서 승기를 잡은 것으로 여겨졌던 신 회장이 수세에 몰릴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한국 롯데그룹은 물론 일본 롯데홀딩스마저 신 회장이 장악하고 있는 모양새인 데다 동주·동빈 형제의 감정의 골이 깊어진 것으로 보여 이번 분쟁을 해결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날 가족회의를 통해 논의 결과가 나오더라도 후계 구도 다툼은 장기화 수순에 들어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 때문에 롯데그룹의 경영권을 둘러싼 골육상쟁이 장기화하면서 한국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지적도 만만찮다.

실제로 재계 순위 5위인 롯데그룹은 현재 부진을 겪고 있는 유통업을 포함해 면세점 사업과 신성장동력 사업, 잠실 제2롯데월드 완공 등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한 상황이다. 이 같은 현안만 처리해도 빠듯한 상황에서 후계자 자리를 놓고 형제간 분쟁이 민낯을 드러내 국내 경제에 미치는 타격이 작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