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납품업체 많아 투자 인색
- 기술력 늘 수도권에 밀리고
- 고급 두뇌 유출 '악순환'

- 아이디어·기술 갖고도
- 활용법 몰라 불이익 일쑤
- 고부가가치 창출 발판으로

글로벌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R&D(연구개발) 투자에 대한 필요성은 더욱 증대되고 있다. 특히 대기업에 부품과 소재를 공급하는 벤더(협력업체)가 많은 지역 기업이 이 같은 저성장 추세를 이겨내려면 R&D 투자 및 R&D 서비스에 대한 획기적인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부산연구개발서비스협동조합 출범은 지역의 척박한 R&D에 대한 인식 전환은 물론 장기적으로 지역 산업의 생태계까지 탈바꿈 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R&D 토양 척박한 부산

지역 기업들의 R&D 투자는 인색하다. 원청업체의 요구대로 납품만 하면 되는 벤더 위주의 제조업 구조가 R&D 투자를 외면하게 만들고 있다. 월드클래스 300 선정기업 중 기계와 자동차, 화학업종으로 분야를 좁혀보면 동남권(부산 울산 경남)은 신청자격을 만족하는 220개 기업 중 단 8개사가 선정돼 선정비율은 3.6%에 불과하다. 496개사 중 36개사가 선정된 수도권(7.3%)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인근 대경권은 132개사 중 17개사 선정돼 12.9%의 선정비율을 보이고 있다.

2013년 기준 정부연구비 수주 현황에서도 부산지역은 5172억 원으로 전체의 3.06%에 불과하다. ▷서울 3조8577억 원(22.81%) ▷경기 2조6003억 원(15.37%) ▷대전 4조7122억 원(27.86%)에 비하면 초라한 모습이다. 그 결과 정부의 R&D 과제 유치에서는 늘 서울 등 수도권 기업에 밀리고 있다. 역량 부족은 불법 브로커 동원으로 이어지거나 아이템이 사장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또 연구개발 전문인력이 수도권으로 유출되는 등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부산테크노파크나 부산경제진흥원 등 공공기관도 민간기업의 R&D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직접 지원이 아닌 서비스 연계 지원 형태가 많은 데다 기업이 공공부문에 지속적으로 의존하면서 자체적인 R&D 투자 동력을 상실하는 부작용도 발생하고 있다.

■부산 산업 생태계 바꾼다

지역 산업계의 R&D 투자 환경이 척박한 것은 벤더 위주의 산업구조 외에 R&D 투자에 대한 접근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도 한 원인이다. 아이디어와 기술은 있지만 이를 제대로 상품화하는 제반 역량이 부족하다. 지역에 R&D 서비스 산업 활성화가 필요한 이유다. 부산경제진흥원 관계자는 "정부 R&D 사업의 경우 심사위원들이 사업화 로드맵 등 제안서 위주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은데 지역 기업들은 이에 대한 대처가 안되다 보니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며 "수도권은 R&D 서비스가 활성화되고, 프로젝트 경험이 많은 대기업 출신이 많아 수혜 기업으로 선정되는 데 훨씬 유리하다"고 말했다.

부산지역에서 R&D 서비스가 활성화되면 벤더 중심의 산업 구조는 기술 중심으로 재편된다. 특히 조선기자재와 자동차부품, 신발 등 기존의 부품·소재 벤더 기업도 R&D에 더 많은 투자를 하게 돼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과 함께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R&D 서비스협동조합 김성현 이사(아이피텍코리아 대표)는 "최근 경기불황으로 벤더 기업도 기술개발에 많은 투자를 해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추세다. 현대자동차의 부품업체 한 곳은 자체적인 R&D를 통해 생산단가를 낮추고 품질을 올려 납품 물량을 극대화한 경우도 있다"고 소개했다.

기존 제조업 외에도 그동안 취약했던 ICT(정보통신기술)나 바이오·헬스 분야에서도 기술로 무장한 스타트업 기업이 육성될 길이 열린다. 지금까지 창업기업은 틈새시장을 노리거나 단순한 제조업, 전자상거래 등에 집중되면서 기업으로서의 생명력이 짧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R&D 서비스 분야의 양질 인력 창출도 빼놓을 수 없는 기대효과다. 이공계 전문인력이 활동하는 시험·분석평가 분야에서는 지금까지 지역의 일자리가 부족해 고급 인력이 수도권으로 유출되거나 전공을 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부산시 연구개발과 김병진 연구개발기획팀장은 "민간주도의 R&D 서비스 시장 활성화로 지역 내 전문인력 양성은 물론 경력이 단절된 이공계 여성도 파트타임 형태로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월드클래스 300

중소기업청이 2011~2017년 전국 중소·중견기업 300개사를 선정해 세계적 기업으로 육성하는 정책. 신청자격은 연 매출액이 400억 원 이상 1조 원 미만의 제조업 부문 기업이다. 최근 3년간 매출액 대비 R&D 투자액 비율이 평균 2% 이상이거나 최근 5년간 연평균 매출액 성장률이 15% 이상이어야 한다. 현재 156개사가 선정됐으며 동남권에는 13개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