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경제 관련 기관들이 최근 국제 유가 하락 추세 등을 이유로 한국의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잇달아 하향 조정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상승률이 0%대로 떨어질 수 있다는 추측도 내놨다. 이에 따라 경기 침체 국면 속에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이 올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8일 금융권 등에 따르면 삼성증권은 최근 발표한 경제전망 수정보고서를 통해 올해 소비자 물가 상승률을 당초 1.4%에서 0.9%로 내렸다. 올해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9%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던 글로벌 투자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도 0.9%로 수정했다. 이런 전망이 현실화된다면 우리나라는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인 1999년(0.8%) 이후 16년 만에 소비자물가 상승률 0%대를 맞게 된다.

앞서 프랑스 최대 은행그룹인 BNP파리바는 담뱃값 인상이 가져올 효과를 고려하더라도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5%에 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씨티은행은 1.6%, HSBC는 1.7%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들 금융기관 측은 국제 유가 하락과 내수 부진 등이 겹쳐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한국은행의 목표치에 훨씬 미치지 못할 것이라 단언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10월 말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2.4%로 예측한 바 있다.

경제계에서는 최근 우리나라 경제가 저성장 기조로 돌아선 상황에서 소비마저 억제된다면 디플레이션 도래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 유가 하락이 우리 경제에 상당부분 호재로 작용할 것은 분명하지만 소비와 투자심리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기대만큼 효과가 발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장기적으로 이런 기조가 계속 유지되면 우리나라 경제가 불황형 흑자(수출이 부진한 가운데 소비 심리 악화로 수입이 수출 감소량 보다 더 많이 줄면서 무역흑자가 생기는 현상)에 직면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부가 유가 하락을 소비자들이 곧바로 체험할 수 있도록 물가구조개혁 대책을 내놓는 한편 한국은행의 기준 금리 추가 인하와 같은 적극적인 통화정책 실시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