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세관 감시정에서 바라본 2014년 구봉산 꼭대기에 건립된 부산항 도등과 1887년 점등된 도등 추정지(점선). 김성효 기자 kimsh@kookje.co.kr

우리나라 기존 등대사를 뒤집는 부산항의 등대 역사가 새롭게 조명됐다. 불을 밝히는 등명기를 갖춘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등대가 인천 팔미도등대(1903년)보다 먼저 1887년 부산항에 세워졌음을 뒷받침하는 국내외 사료가 발굴됐다. 앞서 1678년 부산 초량왜관 입구에 방파제등대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초량왜관 고지도(본지 지난 2월 15일 자 4면 보도)가 나왔다.

한국해양대 해양공간건축학과 안웅희 교수는 27일 "부산해관(세관)이 부산항의 항만시설을 관리하기 위해 1887년 4월 근대식 도등 2기(동구 초량동 구봉산)와 해관등대(해관청사 지붕), 초량항 방파제등대를 점등하고 부산항 입구 암초 2곳에 입표(등모다리암등대, 제뢰등대)를 설치했다"며 "이는 인천 팔미도등대보다 16년 앞선다"고 밝혔다. 도등(導燈)은 선박이 항만으로 들어올 때 정확한 항로를 유지하게 하려고 항로의 연장선상 육지에 높낮이가 다르게 설치하는 2기의 등화시설. 안 교수는 이런 내용을 한국항해항만학회지에 최근 발표했다.

안 교수는 6개로 이루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부산항 등대에 관한 근거로 대한제국 초기인 1897년 9월 16일 영국 출신의 헌트 3대 부산해관장이 맥리비 브라운 총세무사(관세청장)에게 보낸 '부산항 항해보조시설(Aids to Navigation in the Fusan District)-등대(Lights)' 공문을 제시했다. 이 공문을 보면 등대가 1887년 4월부터 점등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등대의 위도, 경도, 등명기의 고정·회전 여부, 청명일 가시거리, 색상, 해발고도, 등대 점화연도가 상세하게 적혀 있다. 안 교수는 또 1887년 점등한 부산항 등대에 관한 영국 정부 공식기록매체인 '런던 가제트(THE LONDON GAZETTE)'의 1887년 10월 22일 자 기사와 일본 해군 수로부에서 1894년 발간한 '조선수로지'를 근거 자료로 내놓았다.

특히 1887년 도등과 부산항대교 개통에 따라 입항선박의 시야가 가려지는 것을 없애기 위해 부산해양항만청이 20억 원을 들여 올해 구봉산에 설치한 부산항 도등이 높이와 등명기 색상만 다를 뿐 위치가 거의 일치했다. 이용득 부산세관박물관장은 "127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도등의 위치가 일치해 깜짝 놀랐다"며 "이번에 발굴된 부산항 등대는 우리 등대사가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굴복한 불빛이 아니라 조선의 과학적 항만기술로 자주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1897년 9월 16일 헌트 3대 부산해관장이 맥리비 브라운 총세무사(관세청장)에게 보낸 '부산항 항해보조시설(Aids to Navigation in the Fusan District)-등대(Lights)' 공문과 번역. 부산세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