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인이 최초로 쌓고 네덜란드와 영국인들이 확장시켜 성채도시가 된 갈레의 방어시설. 요새에 설치된 시계탑도 보인다.

-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 근세 돌아가며 식민통치 겪어
- 유럽풍 성채·건축물 곳곳에

한국해양대 실습선 한바다호가 이란의 반다르압바스에서 해양실크로드 탐험대 일부를 상륙시킨 다음 아랍 에미리트 후자이라 외항에서 기름을 넣은 뒤 인도 서해안을 따라 내려와 스리랑카의 콜롬보에 입항한 것은 지난달 31일. 국토의 생긴 모양이 눈물방울을 닮았다고 해서 '인도양의 눈물'이라고도 불리는 스리랑카는 기원전 6세기께 북인도의 싱할리족이 이주해 처음으로 왕조를 세웠다고 한다. 국토 면적은 한반도 3분의 1 정도이고, 인구는 약 2200만 명이며 일부 이슬람교와 힌두교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불교를 신봉해 2000여 년 전의 초기불교 유적이 지금도 열대림 곳곳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남아 있다.

필자가 콜롬보에 도착한 것은 오만의 무스커트에서 압바스로 떠나는 한바다호를 배웅한 다음 날이었다. 콜롬보는 7세기 전까지만 해도 작은 어촌에 불과했으나 그 이후 향료와 보석에 눈독을 들인 아랍 상인이 건너오기 시작하면서 지리적으로 유럽과 아시아를 이어주는 해양실크로드의 거점항구로 거듭났다. 본격적인 개발은 16세기 포르투갈 사람이 섬으로 들어오면서부터 성채를 쌓고 '콜롬보'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시작됐다.

콜롬보 국립박물관에 있는 불교유적 벽화.

17세기에 들어서자 이번에는 네덜란드 사람이 들어왔고, 1796년에는 네덜란드를 격파한 영국이 새로운 지배자로 등장하면서 콜롬보는 홍차 무역항으로 발전했다. 공항 근처 풀문 호텔에 짐을 푼 다음 첫날에는 시내버스를 타고 국립박물관으로 향했다. 버스로 한 시간 이상 걸렸으며 버스에는 우리나라 1960년대처럼 남자 차장이 정류소마다 내려서 행선지를 외치고 버스가 출발하면 승객에게 행선지를 물어 차비를 받았다.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내려 다시 '오토릭샤'를 바꿔 타고 콜롬보 국립박물관으로 갔다.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얀 고딕 양식의 건물이 아름다웠다. 박물관 앞 정원에는 1877년 이 박물관을 세운 영국의 실론 총독 윌리엄 그레고리경 동상이 서 있었다. 박물관은 1~3층 전시실로 구분돼 있는데 1층에는 아누라다푸라 시대의 불상, 폴론나루와 시대의 브론즈 불상, 캔디왕조 시대의 옥좌 등 불교 조각품이 주종을 이루었다. 필자의 관심을 끈 것은 중국의 정화함대가 갈레에 세웠던 비석. 1층 입구 오른쪽에 전시되고 있었다.

다음 날에는 시외버스를 타고 남단에 있는 갈레로 갔다. 에어컨이 없는 완행 만원버스를 타고 갔더니 사람 특유의 땀 냄새와 더위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다행히 버스가 달릴 때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 때문에 참고 견딜 수가 있었다. 도심 곳곳에 식민지 시대의 유럽식 건축이 보이고 신축 고층아파트 공사를 하는 곳도 눈에 띄었다. 버스가 정류소에 설 때마다 장사치들이 올라와 사라고 소리를 지르고, 차장은 내려서 "갈레! 갈레! 갈레!"하고 외쳐댔다. 버스가 교외로 빠지자 야자수 나무 아래로 푸른 바다가 펼쳐졌다. 불어오는 바람이 한결 시원했다. 도로가 집은 키가 나지막한 '하꼬방'으로 할렘가처럼 보였다. 10시 30분에 출발한 버스가 오후 2시 55분에 갈레터미널에 도착했다.

갈레는 스리랑카 남부의 최대 항구도시로 14세기에는 아랍 상인의 동방무역항으로 번영했으며 1589년에는 포르투갈인이 들어와 최초로 성채를 세웠다고 한다. 1640년에는 네덜란드인이 성채를 확장하면서 그 안에 마을이 형성되고 그 후 영국 식민지 시대에 견고한 성채도시로 발전했다.

시계탑이 있는 요새 위로 올라서니 시원한 바닷바람과 함께 하얀 파도가 밀려 오는 인도양이 눈앞에 전개돼 가슴이 탁 트였다. 뒤돌아 보면 구시가와 신시가가 한눈에 들어왔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성채 위에 바닷가로 난 길을 따라 한참 걸었다. 길이 끝나는 곳에는 높이가 18m나 되는 등대가 우뚝 서 있었다. 쉴 새 없이 밀려 들어와 하얗게 부서지는 초록빛 파도 너머로 인도양의 수평선이 펼쳐져 있고 그 수평선을 따라 거대한 컨테이너선 한 척이 지나가고 있었다. -끝-

남청도 한국해양대 기관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