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말라카에 있는 옛 포르투갈 파모사 요새. 세월이 흘러 중앙 부분과 대포 몇 문만 남아 있다.

- 외벽만 남고 허물어진 교회 등
- 곳곳 외세침입 수난 상처 간직

- 中 정화함대 대항해 흔적 오롯이
- 지금 생각해도 엄청난 프로젝트

말라카의 도시 역사가 바로 말레이시아의 역사라고 할 정도로 유서 깊은 항구다. 해양실크로드에서도 동서교역의 한 획을 그었지만 지금은 당시의 외세 흔적을 간직한 채 외국 관광객을 맞이하는 작은 포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실습선 한바다호는 지난 5일 한때 범선이 도자기, 향료, 비단 같은 무역품을 가득 싣고 드나들었던 말라카강 하구에 닻을 내리고 탐험대와 학생은 통선으로 상륙했다. 탐험대는 이곳에 내려 쿠알라룸푸르를 거쳐 항공편으로 인도 콜카타로 들어가 혜초의 길을 따라 인도 중부를 횡단한 뒤 뭄바이에서 다시 만나기로 돼 있다. 필자는 한국에서 시간이 촉박해 인도 비자를 받지 못했다. 선박으로 인도에 입항하면 비자 발급이 불가하다는 대리점의 연락을 받고 어쩔 수 없이 항공편으로 인도에 들어가기 위해 말라카에서 하선했다. 탐험대도 떠나고 실습선도 이틀 후 다음 기항지인 인도 뭄바이로 떠나고 홀로 호텔에 남았으니 국제미아가 된 기분이었다.

홀리데이인 호텔에 여장을 푼 다음 지도 한 장을 얻어 첫날은 해양박물관, 해군박물관, 범선 그리고 세관박물관을 둘러봤다. 이들 박물관은 인근에 붙어 있어 입장권 한 장으로 다 볼 수 있고 세관박물관은 무료였다. 옛날 말라카 왕국에서 약탈한 보물과 함께 바다에 침몰한 포르투갈 범선 플로라 데 라 마르(Flora de la Mar)호를 복원해 내부를 전시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폭슬 캐빈에는 당시의 지도와 깃발을 전시해 놓았고 중앙 선실 아래쪽에는 범선시대의 각종 모형선과 주요 교역품 및 당시의 모습을 마네킹으로 전시하고 있었다. 휴일이어서 어린아이를 데리고 견학하러 나온 사람이 많았다.

이튿날에는 정화문화관으로 향했다. 역사박물관은 내부수리 중이어서 보지 못해 아쉬웠다. 주요 볼거리는 타운 스퀘어 인근에 몰려 있어 호텔에서 20분 정도면 걸어갈 수 있다. 호텔에서 조금 나가면 네덜란드식 집이 늘어선 동네를 지나고 그다음 블록에서는 시가지를 내려다볼 수 있는 타밍사리 탑을 지나게 된다. 고목이 우거진 공원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면 옛날 포르투갈 파모사 요새가 눈에 들어온다. 전화와 세월의 풍우에 벽은 다 허물어진 채 중앙 부분에 뼈대만 앙상하게 조금 남았다. 뜰에는 당시에 불을 뿜었던 대포 몇 문만 관광객을 위해 전시돼 있어 어린이의 놀이터가 되다시피 했다.

말라카강이 시가지를 관통하고 있어 유람선이 관광객을 태우고 강을 따라 오르내리고 있었다. 정화문화원은 사설박물관으로 정화에 관한 여러 가지 사료를 전시해 놓고 있었다. 당시 모형선과 명나라 정화함대가 갔던 항로와 곳곳에 세웠던 비석을 탁본해 비문도 전시해 놓고 있었다. 당시 각국이 중국황제에게 진상한 선물을 운반하기 위한 보선에는 각종 보물과 아프리카에서 보내는 기린과 얼룩말도 그림으로 전시되고 있었다. 동남아 여러 나라와 아랍 그리고 아프리카 동해안에 이르기까지 명나라의 조공무역을 위해 수많은 함선과 이를 운용할 2만8000명의 대인력을 이끌고 7차례에 걸쳐 진행된 하서양 프로젝트는 지금 생각해 봐도 엄청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정화를 설명한 책 한 권을 사서 나왔다. 존켈러 거리를 따라 내려가면 힌두교 사원과 이슬람 사원이 있고 거리가 거의 끝나는 지점에 중국식 절인 쳉훈텡 사원이 있었다. 내부 부처가 모셔져 있고 실내장식이 화려했다. 현지주민이 찾아와 향불을 피워놓고 절을 하며 소원을 비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한국인 관광객도 눈에 띄었다.

사흘째에는 1650년 네덜란드 정복자가 관청으로 사용했던 고딕양식의 스타듀이스와 뒤편 언덕 위에 세워졌던 세인트 폴 교회를 둘러봤다. 포르투갈 식민시대인 1521년 두아르테 코엘료에 의해 지어진 교회로 기도원으로 사용되면서 포르투갈의 포교 거점으로 유명했으나 가톨릭을 박해했던 네덜란드군과 영국군의 공격으로 거의 다 파괴되고 외벽만 덩그렇게 남아 있는데 내부에는 각종 문양이 그려진 직사각형의 돌비석이 벽면에 기대어 서 있었다. 어느 비석 모서리 위에는 이름 모를 노란 꽃 한 송이가 외롭게 피었고 인근 언덕 위에는 네덜란드인들의 묘석 몇 기가 허물어진 채 말라카 시내를 굽어보고 있었다.

남청도·한국해양대 기관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