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서귀포 연안 수심 20m 아래 지점에 대형 수지맨드라미 옆으로 열대 어종인 쏠배감펭이 지나고 있다.

- 연안 수온 86년간 1.94도 상승
- 터줏대감 온대 생물 밀려나고
- 쏠배감펭 파랑돔 등 '컬러생선'
- 전체 어종 80~90% 차지 토착화
- 아열대성 산호도 바닷속 점령

미국의 지리학자 글렌 트레와다의 구분법에 의하면 아열대는 월평균 10도 이상인 기온이 8개월 넘게 이어지는 기후 조건을 말한다. 이 구분법을 적용하면 제주도 연안은 물론이거니와 부산을 비롯한 남해안의 육상 기후는 이미 아열대권에 속해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육상 기후조건뿐 아니라 해수면 온도의 지속적인 상승.

	제주도 연안에서 발견되는 어류 80~90% 정도가 열대와 아열대 종이다. 사진은 무리지어 유영하고 있는 주걱치.

우리나라 아열대 바다 생물종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제주도의 표층 해수 수온은 지난 30년간 연간 0.024도의 상승률을 보였다. 특히 겨울철(12월)의 수온은 연간 0.047도로 상대적으로 상승률이 높을 뿐 아니라 1980년대 후반부터는 뚜렷한 아열대화 경향을 보이고 있다.

2011년 국토해양부의 해양생태계 기본조사 보고서를 보면 제주도 연안 수온은 지난 86년간 약 1.94도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수온 상승은 전 세계 수온 평균 상승치인 0.67도보다 상당히 높은 수치이다.

수온 상승은 바다 생태계를 아열대화로 바꿔 놓는 물리적 조건이 된다. 구로시오 난류에 실려 온 열대와 아열대 바다 생물은 망망대해를 지나 제주도 해역에 도착해 풍부한 먹잇감, 청정해역, 따뜻한 수온에 만족하며 성공적으로 정착하게 된다. 그리고 이곳을 기점으로 우리나라 서해, 남해, 동해로 진출할 준비를 한다.

최근 몇 년간 스쿠버 다이빙을 통해 관찰한 결과 제주도 해역에서는 온대성 생물종보다는 열대나 아열대 생물종이 더 많이 발견됐다. 2010년 해양환경관리공단의 제주 해역 해중경관 모니터링 보고서를 보면 제주도 연안에서 발견되는 어종 중 열대어종이 64.2%, 아열대어종이 25.4% 온대 어종이 10.4%로 나타났다. 단기간에 이루어진 조사였지만 그 이전에 축적된 자료 등을 종합해보면 제주 연안에서 발견되는 열대와 아열대 어종이 전체 어종의 80~90%를 차지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제주 해역은 모자반, 감태 등으로 이루어진 해중림과 연산호 군락이 공존하는 독특한 수중환경이다. 비교적 얕은 수심대에 형성되어 있는 해중림 지대를 지나 아래로 내려가면 연산호가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다. 온대 바다를 대표하는 해중림과 아열대 바다 환경을 대표하는 연산호의 공존은 제주도 바다만이 전해주는 흥미로운 특징 중 하나다. 해중림 지대에는 자리돔, 줄도화돔, 주걱치 등이 무리를 이루고 있다면, 수심이 깊어지는 연산호 서식지에는 쏠배감펭, 파랑돔, 씬벵이 같은 열대와 아열대 어종이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 있다. 구로시오 해류를 따라온 전갱이떼나 방어떼를 만나는 것은 제주도 바다가 전해주는 작은 행복 중 하나이다.

제주도 서귀포 연안을 대표하는 것은 수지맨드라미, 해송, 부채뿔산호 같은 연산호의 존재다. 이곳에 출현하는 32종의 산호 중 12종이 국내뿐 아니라 국제법으로 보호되는 종이다. 산호류의 다양성이나 화려함, 밀집도 측면에서 단연 세계 최고다. 2002년 해양생태계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문화재청은 이들 해역과 남제주군 송악산 해역을 묶어 천연기념물 제442호로 지정했다. 제주도에서 발견되는 아열대 생물종 가운데 고착성 생물인 산호류가 서해 가거도, 흑산도와 남해안, 부산연안, 울릉도 독도 해역에서도 발견되는 것은 이곳이 우리나라 연안으로 퍼져나간 아열대 생물종의 출발점이란 얘기다.

이러한 인과관계를 되짚으면 우리 연안의 아열대화 또는 열대 생물종의 분포 한계, 서식 범위 등에 관한 모니터링이 가능하다. 결국, 아열대화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제주도 해역의 생물종 다양성 보전과 해양 생태계 관리를 위한 방안부터 수립할 필요가 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