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미손에 있는 참파왕국의 성지 유적지. 참파왕국은 4~14세기 베트남 중부에서 남부에 걸쳐 거대 왕국을 건설했다.

- 호이안, 옛 건축양식 건물 도열
- 구시가지 전체가 세계문화유산
- 잠시 들른 것만으로도 큰 행운

광저우를 출항해 채 이틀도 되기 전인 9월 25일 새벽 2시 다낭 외항에 닻을 내렸다. 부두가 공사 중이어서 접안이 불가능했다. 날이 새자마자 세관과 출입국 직원들이 통선을 타고 나와 입항 수속을 해 주었다. 오전 9시 첫 통선에는 탐험대와 실습학생 일부가 타고 시내로 나갔다. 통선은 탑승정원이 45명이어서 몇 차례 왕복해야만 했다. 나는 우선 대리점에서 추천해준 다낭호텔로 가서 짐을 풀어놓은 다음 시내부터 한 번 둘러보기로 했다. 호텔 로비에서 밖으로 나오니 택시와 인력거가 기다리고 있었다. 자전거 릭쇼(rickshow·인력거)를 타고 시내로 향했다. 통선부두가 변두리여서 시내로 나가는 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이곳 다낭시는 베트남에서 호찌민, 하노이, 하이퐁 다음으로 네 번째 큰 도시. 면적은 1256㎢이고 인구는 대략 90만 명 정도이며 중부 최대의 상업중심지라고 한다. 시 가운데로 한강이 흐르고 있어 동서로 양분되는데 도심은 서쪽에 있다. 강 하구에는 추안푸옥 브리지라고 현수교가 놓여 있고, 중간에는 한 브리지, 상류 쪽으로 드래라곤 브리지라고 해서 노란색의 커다란 용 모양의 구조물이 있다. 제일 안쪽에는 트란실리 브리지와 구옌 반트리 브리지가 놓여 있다. 다낭시 동해안 쪽에는 남지나해의 멋진 해수욕장이 끝이 보일 않을 정도의 모래사장이 이어지고 있다. 시내 중심가로 들어갈수록 오토바이 숫자가 늘어났다. 시내 가운데는 행정센터 건물과 인근에 고층빌딩이 쌍둥이 건물처럼 서 있고 그 외에는 그리 높은 건물들은 보이지 않았다. 인력거를 타고 가면 느린 속도로 이동하므로 사방을 구경할 수 있어서 좋다.

　참(Cham) 조각 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먼저 다낭 대성당을 둘러보았다. 연분홍색을 칠한 이 성당은 1923년 프랑스인이 세웠다고 하며 건축은 중세 유럽풍이 물씬 묻어났다.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 한강 변 용다리 옆에 있는 참(Cham) 박물관이 처음 문을 연 것은 1919년. 그 후 참 조각품을 프랑스 고고학자들이 수집했으며 일부 조각품은 파리나 하노이, 사이곤 박물관으로 보내졌다고 한다. 입장권을 사는데 베트남 화폐로 14만 동이나 주었다. 화폐 단위가 너무 커서 금방 감이 오지 않았다. 우리 돈으로는 약 7000원 정도다. 박물관에는 내부 전시품 400점을 포함해서 약 2000점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몇몇 청동 조각작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화강석 조각품인데 인도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았으며 10, 11세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춤추는 드루가(Durga) 여신상은 다리 부분이 잘리긴 했으나 잘록한 허리와 풍만한 가슴이 성적 매력을 풍겼으며 7, 8세기 작품으로 코끼리 두상의 가네사(Ganesha) 작품은 인자한 아저씨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10세기 작품으로 좌상 부처 모양의 바루나(Varuna) 신상과 바유(Vayu) 신상은 목 위의 머리 부분이 떨어져 나가고 없었다. 익살스러운 사자상도 다수 보이고 팔이 네 개 달린 춤추는 시바(Siva) 상도 눈길을 끌었다. 조각 작품에 흥미가 있는 사람은 디자인이나 섬세한 선의 굴곡 등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종일 보아도 시간이 모자랄 것 같았다.

　참 박물관을 나와서 '사랑채'라는 한국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다낭 인근의 지리 정보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유적지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다. 우선 다낭에서 남쪽으로 30여 ㎞ 떨어진 호이안(Hoi An)으로 가보기로 했다. 마침 식사를 하러 왔던 다낭에서 옷가게를 한다는 김 사장이 돌아가는 길에 다낭 가는 버스 정류소까지 태워다 줬다. 호이안 시내에 들어가서는 서양인 관광객이 몰려가는 곳으로 뒤따라 갔다. 지도나 다른 관광정보를 미처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호이안 구시가지는 호아이(Hoai) 강 북쪽 3블록에 이어져 있었고 서울의 인사동 건물처럼 옛 양식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프랑스 건축양식과 일본 건축양식을 조금씩 가미한 독특한 양식으로 지금도 가게를 열어놓고 있었다.

　호이안은 인근에 도-본(Thu Bon)강이 범람하여 홍수로 집이 물에 잠긴 일도 허다해 홍수 때마다 집안에 수위가 올라간 표시를 해둔 곳도 있었다. 목조건물이 물에 잠기면 나무가 썩기도 하지만, 이곳에 사용한 나무는 질이 아주 단단한 특수목을 사용해서 물이 빠지고 난 뒤에도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호이안은 강이 옆에 있어 16, 17세기에는 남부 베트남에서는 국제무역 중심지였으며, 매년 4~6개월간 상업박람회가 열렸다고 한다. 이 도시 오른쪽에는 중국인, 일본인, 네덜란드인, 인도인 무역업자들이 자신들의 영구 거주지를 건설했다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호이안의 구시가지는 다양한 형식의 건축양식, 살림집, 의회당, 탑, 사원(절), 우물, 다리, 시장, 부두 등이 잘 보존돼 있었다. 도-본강 남쪽인 안호이(An Hoi)섬과는 안호이 다리가 놓여 있었고 결혼기념 사진을 찍기 위해 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정장 차림의 신랑이 사진사가 주문하는 포즈를 다리 위에서 연출하고 있었다. 그 뒤쪽 샛강에서 흘러나오는 곳에는 옛날 일본인이 살았던 마을로 지붕이 덮인 내원교(來遠橋)가 놓여 있었다. 내원교에서 동쪽 강하구 쪽 직선으로 찬푸(Tran Phu)거리이고, 그 오른쪽이 구엔타이호크(Nguyen Thai Hoc) 거리 그리고 강을 따라 바크당(Bach Dang) 거리가 옛 모습을 간직한 채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었다. 몇몇 건물에는 간판이 한문으로 돼 있어 베트남도 한자문명권에 속했음을 알 수 있었다.

　구시가에서 그림엽서 몇 장을 구입했다. 무역도자기 박물관에 들어가 보니 8, 9세기 주요 교역품이었던 도자기와 파편을 전시해 놓고 있었다. 당시 호이안은 베트남 남부의 최대 상업항으로 북으로는 하노이와 광조우, 남으로는 오케오와 자바섬 그리고 서쪽으로는 방콕과 인도 아라비아를 잇는 주요 거점 도시였다고 한다. 탐험대 스케줄에 정화박물관이 들어 있어 호이안에 사는 사람에게 물어봐도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아마 무역도자기 박물관을 누군가가 임의대로 그렇게 명명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이안은 1999년 12월 4일에 구시가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이튿날 다낭에서 북쪽으로 약 110㎞ 떨어진 후에(Hue)를 다녀왔다. 후에는 응우엔조(阮朝:1802~1945)가 왕도로 삼은 베트남 중부의 도시로 후에왕조의 성(城)과 역대왕의 묘(廟)가 남아 있는 역사유적지. 왕성은 자론황제가 19세기 초에 건설하였으므로 중국 자금성을 많이 모방한 양식으로, 오문(午門), 장생전(長生殿), 태화전(太和殿) 같은 여러 가지 건축들이 약 500㏊의 성 안에 질서정연하게 배치돼 있었다. 태화전 안에는 황제가 앉았던 의자가 하나 덩그렇게 놓여져 있는데 실내에서는 촬영이 금지돼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후에시에서 가장 큰 티엔무 사원을 둘러보고 비석에 새겨진 비문과 6층탑을 구경하였다. 또 시내에서 약 10㎞ 떨어진 차이구 구릉지구에 있는 카이딘 황제릉을 둘러보았다. 1920년부터 10년에 걸쳐 축조한 이 릉은 20세기 초 베트남 건축예술을 대표하는 곳으로 알려졌다. 입구 계단을 올라가니 하얀 대리석의 공덕비와 무덤을 지키는 문무백관, 기마, 코끼리가 양쪽에 서 있었다. 계단 양쪽에는 용이 여의주를 앞발로 움켜쥐고 있는 조각이 부조돼 있으며 눈에는 녹색의 유리구슬을 박아 놓아 마치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사후에까지 권력을 가지고 싶어 했던 진시황이나 카이딘황제도 살아서는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엄청난 권력을 누렸지만 천수를 다하고 나면 인간은 모두 다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보편적 진리를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

마지막 날 호이안에서 서남쪽으로 40여 ㎞ 떨어진 미손(My Son)을 다녀왔다. 미손은 4세기로부터 14세기에 이르기까지 베트남 중부로부터 남부에 걸쳐서 거대왕국을 건설한 참파(Champa) 왕국의 정신적인 성지였다. 유적지는 울창한 열대림의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분포돼 있으며 특히 서양 관광객들이 이른 아침부터 줄지어 몰려들었다. 이 유적지는 약 110년 전인 1898년에 프랑스 파리스(M.C Parice)라는 학자가 발견했는데 발견 당시에는 큰 계곡의 하상과 언덕에 사원탑을 쌓았던 수많은 벽돌 조각을 발견했었다고 한다. 출항시간에 쫓겨 무너진 탑 앞에서 사진 몇 장을 찍고, 건물 내부로 들어가서 전시해 놓은 당시의 조각품을 구경한 뒤 나왔다. 날씨가 더워 온몸에서는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다낭항에 입항해 2박 3일간의 일정으로 옛 참파 왕국의 해상실크로드 거점도시였던 호이안을 구경할 수 있어 퍽 다행이었다.

남청도 한국해양대 기관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