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 네가 살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애플이 지난 9일(현지 시각) 모바일 전자결제시스템 '애플 페이'를 공개하며 자사 웹사이트에 올린 글이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아이폰6 공개행사에서 낡은 지갑 그림을 화면에 보여주며 애플페이가 지갑을 대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애플 페이의 결제 방식은 매우 편리하다. 매장의 카드 결제기에 스마트폰을 갖다 대고 화면을 손가락으로 누르면 결제가 끝난다. 맥도날드, 스타벅스, 미국 대형 백화점 등 22만 개 업체에서 사용할 수 있다.

3700만 명이 쓰는 '카카오톡'의 다음카카오도 간편결제 서비스 '카카오 페이'를 지난 5일 내놓았다. 출시 열흘 만에 가입자 수 5만 명을 돌파했다. 카카오페이는 카카오톡 앱에 신용·체크카드와 결제 비밀번호를 등록하면 스마트폰에서 비밀번호 입력만으로 간단히 결제할 수 있다. 현재는 카카오 자체 서비스인 '카카오 선물하기'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다음 달부터 연간 1600만 명이 이용하는 홈쇼핑 시장과 일부 앱에도 서비스를 확대할 방침이다. 송금 기능이 포함된 '카카오월렛'도 조만간 나온다.

모바일 간편 결제 시대가 개막하면서 IT 기업들이 전통적인 금융산업을 위협하고 있다. 애플 카카오뿐 아니라 미국 전자 상거래업체 이베이의 '페이팔', 중국 알리바바의 '알리페이' 등 내로라 하는 글로벌 IT기업들이 시장의 강자로 떠올랐다. 미국에선 2020년 모바일 결제가 플라스틱 신용카드를 완전 대체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문제는 국내 금융회사의 인식이다. 그동안 모바일뱅킹 스마트뱅킹 강화에 주력해 온 은행권은 지금도 '밥그릇 지키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속도 편의성 등을 무기로 한 IT와 금융의 융합은 더이상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데도. 영국의 HSBC와 퍼스트 다이렉트 등의 은행들이 앞다퉈 IT 기업인 잽(Zapp)과 제휴, 비밀번호 입력만으로 모바일 결제가 가능한 서비스를 제공 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IT기업에 금융이 새로운 미래 먹거리라면, 금융회사의 미래 역시 IT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