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엔지니어링토건 직원들이 남극 장보고기지 인근 암반 활주로 부지를 측량하고 있다.

2014년 2월 12일, 장보고기지가 남극의 동부, 북 빅토리아랜드에 있는 테라노바만 연안에 세워졌다. 처음 세종기지를 지은 지 26년 만이다. 우리나라는 세계를 통틀어 10번째로 상설 제2기지를 건설한 국가가 됐다. 연구원들은 컨테이너형이 아닌 제법 인테리어가 된 건물에서 연구하게 됐다.

　남극점을 기준으로 보면 세종기지가 '남극의 대문'이 되고, 제2기지인 장보고기지는 '남극의 현관문'이 된다. 우리는 이 기지를 기준 삼아 더 많은 과학 데이터를 얻기 위해 제3기지 건설에 나서야 한다. 장보고 기지에서 남극점을 잇는 육상루트인 '코리안 루트' 1700㎞도 개척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인력과 물류의 원활한 수송을 위해선 활주로 건설이 급선무다.

　장보고기지 옆에는 암반층이 있다. 길이 1.8㎞에 폭은 100m 정도다. 기지를 지을 구상할 때는 몰랐는데 뒤늦게 발견됐다. 극지연구소 정호성 박사는 이곳에 활주로를 지으면 어떻겠느냐고 내게 의논을 했다. 나는 무릎을 탁 쳤다. 천운이다. 이건 하늘이 우리에게 내려준 축복이다.

　남극에는 여름에만 쓸 수 있는 빙원(氷原) 활주로나 해빙(海氷) 활주로만 있는 상태다. 암반에 활주로를 지으면 사시사철 이용이 가능하다. 만일 우리가 이런 암반활주로를 건설한다면 한꺼번에 도약하게 된다. 우리보다 100년 먼저 남극에 진출한 선진국을 단번에 뛰어넘는 쾌거가 될 수 있다. 이른바 남극 이니셔티브를 쥘 수 있다. 그게 암반 활주로다.

　암반 활주로를 만들면 당장에 우리나라의 하계 연구기간이 130일 늘어난다. 빅토리아랜드, 로스해 연안에 있는 각국 기지의 남극 허브공항이 됨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들이 우리 활주로를 이용하려면 우리의 허락을 얻어야 한다. 이것은 남극의 주도권을 의미한다. 언젠가 남극의 분할이 이루어질 때 큰 이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현재 우리는 뉴질랜드에서 비행기로 미국 맥머도기지를 향하다가 남극의 일기가 나쁘면 터닝 포인트에서 되돌아가야 한다. 겨울철 기지에서 위급한 환자가 발생해도 옮길 방법이 없다. 새 활주로가 생기면 이런 모든 문제는 말끔히 해결된다.

　이런 나의 주장을 일각에서 부담스럽게 여기는 모양이다. 혹자는 활주로 토목공사를 맡기 위해 벌이는 일이라고 말한다. 나는 순수의 땅 남극에서 활주로 공사로 이익을 취할 만큼 뻔뻔스럽지 못하다.

　내가 활주로 건설 주장을 처음 제기했을 때만 해도 모두가 긍정적이었다. 한데 어찌 된 일인지 최근엔 이탈리아 기지와 공동으로 활주로를 만들자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탈리아 기지 부근의 지정학적 위치는 산을 밀고 골을 메워야 해 우리보다 조건이 훨씬 나쁘다. 그런데도 이탈리아가 60억 원 정도의 적은 예산을 가지고 빙태석 활주로 건설을 밀어붙이는 까닭은 남극 선점 효과와 주도권 때문이다.

　만에 하나, 이탈리아가 우리보다 먼저 남극조약협의당사국회의(ATCM)에서 활주로 공사를 허가받으면 인접기지인 우리는 활주로 건설 허가를 받을 수 없게 된다. 우리는 그들의 활주로를 이용하기 위해 이탈리아 기지까지 가파른 산을 깎아 15㎞의 도로를 건설해야 한다. 이 비용만 해도 활주로를 지을 수 있다. 게다가 이탈리아 기지는 하계 기지다. 정작 우리가 필요한 겨울에는 이용이 불가능하다.

　그런 상황에서 이탈리아에 활주로 건설 주도권을 내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활주로를 짓는 데 약 500억 원의 비용이 든다. 이 가운데 남극까지의 장비 및 물자 수송비가 150억 원이니, 정작 건설비는 350억 원 정도이다. 우리의 국력으로 볼 때 그리 큰돈이 아니다. 아라온호 한 척 건조비의 반값이다. 국내 몇 ㎞ 도로공사에도 그 정도의 비용은 든다. 그걸 아끼려다 좋은 기회를 날려버려야 하는가.

　장보고기지 활주로는 경제성이 탁월하다. 짓기만 하면 수년 내 공항 이용료만으로도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 길게 보면 상당한 수익도 예상된다. 극지연구소가 조사한 바로는 활주로의 경제 효과는 연간 1000억 원으로 추정된다. 10년이면 1조 원이다. 남극은 10∼20년 길게 봐야 하기 때문에 그 경제 효과는 더 크다.

　참고로 이번 장보고기지 준공식에 가기 위해 국회의장단이 미국 맥머도기지에 지불한 왕복 항공료는 13억7000만 원이었다. 미국은 고작 5000만 원 정도의 기름값으로 큰소리치며 그 많은 돈을 챙긴 것이다. 극지연구소가 남극을 오가기 위해 쓰는 연간 항공망 사용료도 대략 80억~100억 원에 이른다. 이중 상당액은 남극 진입 비용이다.

　일부에선 활주로를 세워도 운용·유지·보수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지적한다. 운용비란 인건비와 비행기 이착륙에 필요한 통신장비, 열선을 묻어 눈과 얼음을 녹이는 전력소모비용이 거의 전부다. 인천공항처럼 많은 비행기가 오르내리는 비행장이 아닌데 무슨 보수비용이 그리 들겠는가. 또 관제사와 통신장비는 군 인력을 활용하면 줄일 수 있다.

　'우리 활주로를 지어야 한다'는 나의 주장이 정말 무리인지, 행여 내가 실수하는 것인지 곰곰이 되짚어 보곤 한다. 하지만 결론은 한결같았다. '기회를 놓쳐 활주로를 짓지 못한다면 후손에게 못난 조상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런 생각뿐이다.

　부산 수영구에 안용복 장군 사당이 있다. 그는 병졸 신분으로 일본에 건너가 막부의 쇼군으로부터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문서를 받아온 인물이다. 하지만 조선에 돌아와선 허가 없이 외국에 간 죄, 신분을 속인 죄로 귀양을 가고 말았다. 지금 일본이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현실에서 뒤늦게 그의 사당에 제사를 지내는 후손은 당시 선조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당장 이익이 아니라 먼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 일신의 안위만 따지고 문책이 두려워 할 일을 못하면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다. 기회는 마냥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당장 활주로 건설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남경엔지니어링토건 대표